'워렌버핏'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11.06 버핏 효과(Buffett Effect)
  2. 2008.10.27 비전(vision)수립 (2)
  3. 2008.10.23 철학으로 일군 자본주의, 워렌 버핏
  4. 2008.10.23 진정한 자본가, 워렌 버핏

미국 선거에서는 "브래들리 효과"(Bradley Effect)라는 게 있습니다. 백인들이 다른 사람들한테는 인종차별 없이 투표하겠다고 해 놓고 실제 선거부스에서는 백인을 찍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백인들이 정치무대를 독차지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뉴욕타임즈의 컬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Thomas Friedman)이 "버핏 효과(Buffett Effect)"라고 이름 붙인 것인데, 백인 보수주의자들이 골프장에서는 자기들끼리 매케인에 투표하겠다고 말해놓고는 투표 당일 조용히 오바마에게 표를 찍어준 현상을 말합니다. <오바마>에게 투표하는 것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부시와 네오콘이라 불리는 일당들이 막강한 권력을 이용하여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백인 보수주의자들도 자기 자녀들이 오바마로부터 영감과 희망을 얻기를 바랬고, 그 희망이 꺾이지 않기를 원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도 속 마음으로는 그 희망에 동참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또 다른 백인들은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의 철학을 포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버핏은 늘 상속세를 낮추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왔습니다.

만약 당신이 오늘 부자로 성공적인 삶을 산다면, 지금 이 시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것이야말로 거저 얻은 크나큰 행운입니다. 이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백인 보수주의자들조차 허물어진 국가의 토대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했을 것이고 오바마에 표를 주었습니다.(끝)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삶의 기록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직관리  (0) 2008.11.14
오바마에게라도 기대하는 것  (0) 2008.11.10
버핏 효과(Buffett Effect)  (0) 2008.11.06
오바마가 알아야 할 것_권력의 사악한 유혹을 피하라  (4) 2008.11.06
비전(vision)수립  (2) 2008.10.27
조직이란 무엇인가  (0) 2008.10.2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경영 리더십과 비전, 그리고 자아


나는 <리더십>(leadership)이란 "비전(vision)을 향하여 시스템(system)을 정비하고 인재(talent)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런 정의를 한 마디로 말하면, 리더십이란 시스템을 정비하고 인재를 확보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반드시 비전을 전제로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비전이 없이는 시스템 정비도 인재확보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비전이야말로 리더십을 가능케 하는 출발점이 되는 셈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도자들이 뚜렷한 비전도, 합의된 방향도 없이 시스템을 설계하고 좋은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떱니다. 물론 비전이 없이도 시스템을 정비하고 인재를 확보할 수는 있지만, 조직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코 나아갈 수 없습니다. 비전은 인간사 모든 것의 전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비전(vision)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독특한 비전이란 내적 자아(intrinsic self), 즉 분석심리학에서 자기(self)라고 부른 것이 활성화된 상상력의 결과를 말합니다. 인간은 내적 자아가 강력하게 원하는 상상(vision)만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여기서 내적 자아(intrinsic self)의 실체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외적 자아(extrinsic self), 즉 분석심리학의 에고(ego)와 구분되는 내적 자아가 진정한 의미의 자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적 자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적 자아가 외적 자아의 통제를 받기 때문입니다. 외적 자아는 태어나서 사회화 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자아인데, 주로 경험과 교육적 배경에 의해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 사고를 당한 경험이 다시는 지하철을 타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외적 자아의 작용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인 것으로 보이기 위해 형성된 자아이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이렇게 외적 자아는 내적 자아를 통제하기 때문에 외적 자아가 강할수록 내적 자아가 원하는 것을 실현하지 못할 수도 있고, 내적 자아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외적 자아(ego)와 내적 자아(self)를 이해하라

운동을 할 때, 코치들이 힘을 빼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내가 테니스를 배울 때도 그랬고, 골프를 배울 때도 역시 그랬습니다.
 수영을 배울 때도 몸에 힘을 쭉 빼고 자연스럽게 스트로크를 하면 앞으로 잘 나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물 속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을 주게 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물 속에서 헤엄치다 물먹은 경험, 물속에 빠져서 혼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갓난 아기들은 물 속에서 헤엄을 아주 잘 칩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물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이 쌓여서 외적 자아를 형성합니다. 그 좋지 않은 경험으로 인해 외적 자아가 발동하여 더 이상 물을 먹지 않도록 온 몸에 힘을 주게 됩니다.

 

외적 자아는 내적 자아를 감싸는 깁스(Gibs)와 같아서 그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내적 자아의 발현이 힘들게 됩니다. 외적 자아가 아니라 내적 자아가 나를 콘트롤하게 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무시하면 되죠.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상사의 질책을 무시하라.
실수나 실패의 두려움을 무시하라.
평가에서의 불이익이나 승진 등에 대한 불안감을 무시하라.

이런 것들은 모두 외적 자아가 자신에게 주는 신호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호를 받으면, 본능적으로 몸과 마음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긴장하게 되고, 학습이나 작업에 있어 능률이 떨어지게 됩니다. 심지어 복통, 두통, 설사 등 신체적인 이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가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우 엉뚱한 짓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와 같은 천재뿐만 아니라 빌 게이츠, 워렌 버핏, 에이브러햄 링컨, 정주영, 백범 김구, 이순신 등과 같이 그 시대의 물결을 거슬러 거꾸로 살아간 위인들도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별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기꺼이 해낼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내적 자아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무시한 것이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았고, 그 길을 남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꾸준히 실천해 나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주위의 평가에는 민감하면서도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가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그래서 내적 자아가 활성화된 상상력의 결과를 곧 비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비전까지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영혼의 능력과 자기이미지(self-image)
 

이러한 비전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곧 영혼의 능력입니다. 모든 인간은 이러한 영혼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평등합니다. 영혼이 있는 실존적 존재라면 누구나 무한의 세계 또는 초월적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혼의 능력이 상상하고 관조하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모든 행위, 즉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의 결과는 예술가에게는 예술작품으로 나타나고, 정치가에게는 정치적 성과로 나타납니다. 나는 모짜르트, 베토벤, 바하의 음악을 들으면 때때로 전율합니다. 그 음악에는 작곡자의 영혼의 능력이 역동적으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이 내 영혼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모한다스 간디가 추구했던 무폭력의 저항적 정치 행위는 수백년간의 영국식민지로부터 인도를 독립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마하트마, 즉 위대한 영혼이라고 부릅니다. 기업가나 경영자에게는 회계적 이익의 양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성과로 나타납니다. 이런 기업들은 우리 주변에 잘 살펴보면 아주 많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성공이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즉 비전을 실현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나는 항상 비전작업을 중시합니다. 비전작업이란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곳 또는 바람직하다고 상상하는 상태를 사전에 정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버스를 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내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그 목적지를 모른 채 버스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공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비전에 도달하는 것이 됩니다. 성공이란 목적지를 정하고, 그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면 되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무시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영혼이 억압되었거나 아니면 왜곡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바라본 것을 자아상(自我像) 또는 자기이미지(self-image)라고 말합니다. 자기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의해 인생의 성공과 행복이 결정됩니다. 내적 자아를 발견하고 그것을 자아상으로 그려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반성이 가능한 영혼을 가진 존재라고 말합니다. 반성이 없으면 짐승이 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월 스트리트에서 큰(富)를 이룬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월 스트리트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워렌 버핏의 성공은 연구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나는 워렌 버핏의 성공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리에 근거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자신의 일을 즐겼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원리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 그 자체가 곧 일하게 하는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여 그것을 일관되게 실천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일을 항상 즐거워했기 때문에 그 일을 평생토록 해왔고, 그래서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점은 <진정한 자본가, 워렌 버핏>에서 다루었으므로, 이번에는 두 번째 원리인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여 일관되게 실천해 왔다는 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워렌 버핏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수많은 문헌들이 시중에 나와 있지만, 정작 워렌 버핏은 자신의 사상을 책으로 펴낸 적이 없습니다. 매년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보내는 메모를 통해 그의 사상을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잘 알다시피, 철학이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근원적 사유를 말합니다. 이러한 근원적 사유의 틀이 형성되지 않으면, 사물이나 현상의 실재와 본질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쉽게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하고, 때로는 객관적 정보가 아닌 왜곡된 아첨에 우쭐해지기도 하며, 약간의 수익으로 천하를 얻은 것처럼 흥분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철학의 정립이 없이는 일관된 삶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미성숙한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일관성을 갖지 못하는 것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삶의 철학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버핏의 철학

그렇다면, 도대체 워렌 버핏이 정립한 철학은 무엇이며, 그것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가? 이점에 대해서는 워렌 버핏 자신이 직접 명시적으로 이것이 내 철학이다라고 밝힌 것이 없기 때문에 여러 문헌과 언론에서 전해지는 것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빛나는 철학의 대가들도 이것이 내 철학이라고 단순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그가 한 말이나 에세이, 그리고 남긴 저술을 통해 우리가 짐작하고 있을 뿐이죠. 그런 점에서 워렌 버핏의 철학을 여기서 논하는 것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정립한 철학은 기업의 존재목적, 즉 기업은 주주의 이익추구를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라는 수단을 활용하여 이익을 보다 많이 취하기 위해 자신의 돈(자본)을 투자하는 것이 당연하지 그게 무슨 철학이란 말인가.

철학이란 원래 당연한 것이 무엇인지 따져서, 그 당연한 것을 확고하게 만들고, 그 기반 위에서 활동하려는 노력입니다. 우리나라 자본주의는 철학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기반에서 기업이론 또는 경영이론을 구성하고, 이것을 실천할 때,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당연한 것이 기업경영의 현장에서는 당연하게 운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워렌 버핏이 크게 분노했듯이 경영자들에게 부여하는 스톡옵션으로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는 예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스톡옵션 자체가 잘못된 발상이라거나 폐해를 가져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스톡옵션이 경영자들의 장기적인 성과창출의 인센티브 역할을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성과에 비해 불공정하리만큼 많은 보상이 주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국사회에서 유행하던 그 동안의 스톡옵션 관행이 어떻게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지 여기서 상세히 논의하지 않겠지만, 워렌 버핏의 계산법에 의하면 그런 관행은 무능한 경영자들의 땅 짚고 헤엄치기나 다를 바 없는 것이라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월 스트리트의 일반적인 관행이 그의 철학적 사유의 틀에서 볼 때 말도 안 되는 짓거리로 보였던 것입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기업에서 주주의 이익을 최대화 하기 위한 자원은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재무적 자원(financial resource)과 인적 자원(human resource)입니다. 이 두 가지 자원에 대해서 버핏이 어떤 철학을 지속적으로 지켜왔는지를 보겠습니다.

재무적 자원에 대한 철학

재무적 자원에 대한 그의 근원적 사유의 틀을 봅시다. 재무적 자원은 재무제표에 의해 계산됩니다. 자산은 자본과 부채를 합한 것이죠. 즉 자본은 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재무적 자원의 원천(ultimate source)은 주주들이 투자한 자본(capital)입니다. 자산이 아니라 자본이 자본주의 운영메커니즘의 핵심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워렌 버핏은 이 점을 아주 명확히 한 것이 다른 투자자나 경영자들과 다르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자산배분(asset allocation)과 자본배분(capital allocation)의 구분을 매우 모호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주주와 경영자간에 이견이 발생하며, 때로는 주주의 몫인지 경영자의 몫인지 불분명해진다는 점을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복잡한 수학적 계산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버핏은 자신이 투자한 자본이 자본비용(capital cost)을 능가함으로써 주주들에게 평균이상의 수익을 줄 수 있을 때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입니다. 이 말은 곧 투자한 자본이 투자된 기업의 자본계정의 일부를 구성함으로써 그 기업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주는 그 기업이 수행하는 사업을 경영자와 함께 직접 꾸려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는 자본을 어떤 사업에 집중적으로 장기간 투자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장기투자가 좋으냐 또는 단기투자가 좋으냐의 논의는 사실상 자본주의 사회의 운영 메커니즘에 대한 인식론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주식을 샀다는 말은 그 회사의 자본계정에 투자했다는 뜻이므로 그 회사의 주인으로서 경영자와 함께 사업을 장기간 운영하는 사람이고, 단기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돈 놓고 돈 먹는 카지노 놀이를 하는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어느 기업에 투자했다는 표현하지 않고, 어느 기업을 인수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이죠. 말하자면, 사업에 투자한 것이지 주식에 투자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러한 원칙을 지켜나가는 데에, 요즘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는 복잡한 금융공학적 자본시장 이론들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고 말합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재무담당자들 중에 상당수가 기묘한 금융이론을 내세우며 그럴 듯하게 떠들고 있지만, 정작 가장 기초적인 자본배분의 원리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란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주 중심의 자본주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워렌 버핏은 사회적 통찰력을 통해 돈(자본)의 근원을 이해하고, 자산을 운용한 것이 아니라 자본을 배분함으로써 주인의식을 가지고 기업을 경영해 왔습니다. 그는 주식투자자가 아니라 경영자입니다. 워렌 버핏의 자본주의에 대한 이러한 인식체계가 그의 자본을 장기간에 걸쳐 엄청난 부로 축적 시켜 왔습니다. 작은 부는 노력에 의해 가능하지만, 큰 부는 철학이 만들어 냅니다.

인적 자원에 대한 철학

워렌 버핏이 정립한 자본배분의 철학에 이어 두 번째 철학은 인적자원의 배분에 관한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은 기업 내에서 자원의 성격을 갖기도 하지만, 기업의 궁극적 목적이기도 합니다. 기업의 현실에서 보면, 사람을 한편으로는 성과창출의 자원으로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실존적으로 평등한 인간으로서 다루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워렌 버핏은 경영자로서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을 아주 잘 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인수대상으로 고려하는 기업은 단순히 기업의 재무적 전망뿐만 아니라, 경영자가 지속적으로 실천해 왔던 활동을 통해 그의 가치관 내지 윤리적 기준을 확인합니다. 워렌 버핏 자신이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경영하는 일 자체를 즐기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에게 완벽한 투명성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런 후에 그 기업을 인수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거의 완벽하게 위임합니다. 워렌 버핏이 자회사의 경영진에게 간섭해야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자신은 인재파견업을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들의 길을 막지 않는 것뿐입니다. 만약 내가 하는 일이 골프 팀을 관리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잭 니클라우스나 아놀드 파머가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나에게서 스윙하는 법에 대해 지도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워렌 버핏은 설사 자신의 견해와 경영진의 견해가 다를 때라도, 그래서 자신의 견해가 나중에 회사를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라도 위법적이거나 비도덕적이지 않은 한 그들의 견해를 존중해 줍니다. 그래서 그를 오랫동안 관찰한 기자의 말에 의하면, 워렌은 인내심의 천재라고까지 말합니다.

많은 경영자들이 무능한 부하들을 선발해 놓고는 끊임없이 그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가르치려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항상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택시를 탄 승객이 운전기사에게 목적지는 제대로 말해 주지 않은 채 저기 담배가게 앞에서 좌회전 하시고, 오른쪽 학교 앞에서는 30km로 가시고, 다음 신호에서 우회전하시고, ……”라고 한다면, 아마도 운전기사는 제대로 운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대로 믿을만한, 때로는 경탄할만한 운전기사가 아니면 아예 고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워렌 버핏의 인사철학입니다. 그래서 수십 개의 자회사와 수십만 명의 임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에는 단 12명이 일하고 있을 뿐입니다. 워렌 버핏은 광고계의 천재였던 데이비드 오길비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보다 작은 사람을 고용하면 우리는 난쟁이 회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큰 사람을 고용한다면 우리는 거인회사가 될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자회사에서 보내온 수많은 보고서를 보면서도 오후에는 낮잠을 잘 시간이 남는다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워렌 버핏이 자신이 축적한 자본의 대부분을 친구인 빌 게이츠가 세운 재단에 기부하기로 발표함으로써,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금융위기를 맞아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된 그는 순수한 투자가로서의 일생을 살았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세계적인 부자들이 대개 기업을 창업했거나 그 후손들인데 비해 워렌 버핏의 경우는 부의 축적과정이 남달랐다는 점에서 집중조명의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단 한 권의 책도 낸 적이 없지만, 그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나왔습니다. 나는 버핏이 투자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일에 대한 그의 철학을 재조명해 보고 싶었습니다.

 

버핏의 두 가지 성공원리

월 스트리트에서 큰 부를 이룬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월 스트리트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워렌 버핏의 성공은 연구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나는 워렌 버핏의 성공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리에 근거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자신의 일을 즐겼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원리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 그 자체가 곧 일하게 하는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여 그것을 일관되게 실천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철학은 <철학으로 일군 자본주의, 워렌 버핏>에서 다룹니다.

 

노동의 의미

노동을 의미하는 독일어 아르바이트(Arbeit)라는 말에는 고통스럽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한다면, 그러한 노동에는 항상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서구 자본주의가 그 틀을 갖추게 되면서부터, 즉 기업이 주식회사의 형태를 갖추고 부(wealth)의 축적이 자본(capital)의 형태로 전환되어 투자의 대상이 되면서부터, 부의 축적에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이 점차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실물경제가 금융경제를 압도하던 시대에서 거꾸로 금융경제가 실물경제를 지배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앞으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인류의 노동의 역사에서 매주 중요한 전기를 제공했습니다. 아르바이트가 더 이상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즐거움을 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운동 선수가 그 운동을 통해 큰 돈을 벌겠다고 한다면 그 운동이 고통을 수반할 수 있겠지만, 운동 그 자체가 즐거워서 하고 그 결과로 돈을 버는 것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성숙한 자본주의의 진정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노동과 노동 그 자체가 즐거워서 하는 노동은 엄청난 생산성의 차이를 나타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은 돈 버는 것이 생계를 위해서나 풍요로운 삶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돈 버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 됩니다. 워렌 버핏이 바로 그런 사람이지요.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그러한 부로 누릴 수 있는 어떠한 사치와 안락함을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부를 축적하는 세 가지 길

자본주의 시대에서 큰 부를 축적하는 방식은 세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기업가가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비즈니스의 길을 열어 창업한 헨리 포드, 앤드류 카네기, 빌 게이츠가 그런 사람입니다.

둘째, 경영자가 되는 길입니다. 기업가가 만들어 놓은 회사의 경영전문가로 활동하여 성과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음으로써 부를 축적합니다. 잭 웰치, 샌포드 웨일 등이 이 부류에 속합니다.

셋째, 투자가의 길을 걷습니다. 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했던 존 템플턴, 워렌 버핏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기업가로 출발했든, 경영자였든, 투자가였든 상관없이 이들의 공통점은 자본가로서의 철학을 분명히 했다는 점입니다. 축적된 부, 즉 자본을 가지고 있으면 자본가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출발은 다르더라도 일단 자본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 누구나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심각하게 고려합니다. 투하한 자본비용 이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곳에 재배분함으로써 자본가의 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됩니다.

 

진정한 자본가란 어떤 사람인가

이러한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자본가는 자본의 효율적 운용을 통해 보다 더 성숙한 자본주의로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사회의 장기적 발전에 쓸 수 있도록 공헌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거기에다 자신의 부를 아낌없이 쏟아 붓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밑거름이 됩니다. 이러한 밑거름을 토대로 자본의 효율적 운용메커니즘을 통해 서구 자본주의의 선순환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워렌 버핏이 기부한 금액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축적한 부, 즉 자본을 어떻게 배분했을 때 가장 효과가 클 것인가를 꼼꼼히 따져 봤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나서, 인류의 질병과 가난을 퇴치하려는 사명을 가진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것입니다. 투자가로 출발했던 워렌 버핏이 결국은 서구 자본가들이 밟았던 진정한 자본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자본가는 없고 기업가만 있는 셈인가요?

그들이 어떤 길을 갔든,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비법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평범한 상식이고 우리가 다 아는 진리를 평생 실천했던 사람들입니다.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방식을 지속한다면, 누구든지 노후를 풍족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부를 축적하는 방식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삶과 노동에 관한 철학이 필요합니다. 부의 지속적인 축적은 진실을 바라보는 시각과 진정한 노동철학이 정립되어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큰 부를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그것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생애가 끝날 때까지 그 일을 해낼 수 있었고, 그 결과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워렌 버핏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회 있을 때마다 말했듯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했고, 그것이 투자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 즉 돈 버는 방법이 그의 적성에 맞았고, 그것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을 뿐이죠.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버크셔 해서웨이를 경영하는 일을 사랑합니다. 만약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것이 오래 사는 것에 도움이 된다면, 므두셀라(노아 홍수 이전의 족장으로서 969세까지 살아 가장 오래도록 장수한 성경상의 인물)의 기록마저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즐겁게 일했기 때문에 항상 성공했는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도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투자에 여러 차례 실패해 왔습니다. 1960년대에는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섬유회사에 투자하여 경영권까지 인수했으나, 그의 고백대로 이 투자는 최악의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 회사는 후일 그가 투자하거나 회사를 인수하기 위한 지주회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변화되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구리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큰 재앙은 아니었지만 실패로 끝났고, 월 스트리트의 투자은행이었던 살로몬 브라더스의 회장으로 취임한 것도 성공적이진 못했습니다. 21세기가 되면서 달러화 약세에 베팅하는 외환투자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파생상품과 투자은행의 위기에서 그는 또 다시 막대한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큰 손실을 입었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보상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신나는 일을 계속하면서 즐거워할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진정한 자본가의 모습을 봅니다.(끝)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