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들은 어떻게 시장을 지배수단으로 활용하는가? 이 순환고리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앞에서 나는 가진 자들은 신자유주의 이념, 시장경제의 규모확대, 자기책임의 원리적용이라는 삼각편대를 활용한다고 했습니다. 이 세가지 지배수단을 악마의 맷돌처럼 계속 순환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는 지속적으로 가진 자의 수중으로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가진 자들은 풍부한 시장정보를 통해 시장이 확대되면 될수록 더 많은 것을 빨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규제를 완화하여 모든 것을 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합니다. 심지어 공공기관이나 국유화된 사업들을 민영화하려고 합니다. 시장경제에 편입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단기적으로 효율적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의료부문과 교육부문처럼 가난한 사람은 병이 나서도 안 되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도 없게 됩니다. 참으로 터무니 없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자유방임의 시장제일주의는 결국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 고리를 강화시키게 됩니다.

 

기득권층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철의 삼각편대


그래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남미와 같이 양극화 사회로 추락하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이념, 시장경제 확대, 자기책임의 원리, 이 철의 삼각편대를 풀어내지 않는 한, 우리는 그런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고전적 자유주의 시대의 종말이었던 1929년의 대공황과 신자유주의 시대의 종말인 2008년의 금융위기가 그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 이제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일본의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자로서 경제사회 개혁을 주도했던 나카타니 이와오(中谷巖) 교수는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후 호소가와 정부와 고이즈미 정부에서 구조개혁과 규제철폐를 주도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최근에 자신의 과거가 잘못되었음을 참회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신념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는 개입주의적 전통이 훨씬 공동체적 삶을 윤택하게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면서 『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기파랑 2009)를 펴내 일본 독서계에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글에서 가진 자들이 서민의 돈을 어떤 방식으로 빨아들이는지 그 일단을 서술하고 있어서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서브프라임 론(비우량주택담보대출)이란 신용도가 낮아서, 상환능력이 없을 수도 있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융자다. 신용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대출금리는 높아진다. 그러나 금리가 높아도 그런 사람들을 주택융자로 끌어들이는 교묘한 장치가 있었다. , 처음 2,3년은 원리금 상환을 아주 낮게 해주고, 그 후에 상환액이 급증하는 식의 융자다. 당연히 융자를 받는 쪽에서는 장차 지불금리가 10%를 넘는 고금리 융자를 싫어하게 되지만, 그래도 융자를 받아볼 생각을 하게 만든 교묘한 장치가 있었다.

 

그 하나는 미국의 주택 붐이었다. 이번 금융파탄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의 주택시장은 버블상태로 주택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업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저소득자를 설득한 것이다.

 

'나중에 상환금리가 높아지는 것을 걱정하시는군요. 문제없습니다. 금리가 오르기 3년 뒤나 4년 뒤에는 구입한 주택의 가격이 상당히 오를 것입니다. 그 가격이 오른 주택을 담보로 해서 재융자(refinance)를 받으면 됩니다. 그러면 당신이 지불할 금리는 담보가 되는 주택가격이 충분히 올라가기 때문에 서브프라임이 아니라 프라임 레이트(우대금리)가 됩니다. 장차 미국에서는 주택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필요할 경우 재융자를 하면 반드시 한층 더 풍요로운 생활이 보장될 것입니다. ......'

 

이처럼 달콤한 유혹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서브프라임 론에 손을 내밀고 주택을 구입했는데, 이 때문에 주택수요가 증가해서 실제로 주택가격을 끌어올리게 되었다. … 결과적으로 보면, 서브프라임 론 업자의 이야기는 일시적이나마 적중한 것이 된다. 버블은 이 같은 자기실현적 현상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인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카타니 이와오, 이남규 옮김, 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 기파랑 2009, 88~89)

 

이렇게 해서 주택금융회사들은 자신이 발행한 대출증서를 즉각 증권회사에 매각해서 현금화해 놓습니다. 그러면, 설사 주택융자금을 받은 채무자가 원리금 상황을 못하더라도 이미 대출증서를 팔아 현금을 챙겼기 때문에 손실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게 됩니다. 대출증서를 매입한 증권회사는 그것을 증권화”(securitization)합니다. 증권화란 대출증서를 모아서 금융시장에 유통될 수 있도록 상품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상품을 통칭 파생상품(derivatives)이라고 합니다. 대출증서라는 원본에서 파생되어 만들어진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위험도가 높은 대출증서와 위험도가 낮은 대출증서들을 혼합하여(다시 말하면, 위험을 분산하여) 금융상품으로 둔갑시킵니다. 이것을 다시 기관투자가인 여러 금융기관에 팝니다. 금융기관들은 이 상품에 투자할 재원을 일반투자자에게 높은 수익률을 내걸고 모집합니다. 중산층과 서민들인 일반투자자는 높은 수익률이라는 미끼에 걸려서 이런 상품에 투자합니다.

 

이쯤 되면, 금융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대강 이해하시겠죠. 위험도가 높은 대출증서가 증권화되어 끊임없이 금융시장에서 순환합니다. 순환할 때마다 이자율과 수수료가 붙기 때문에 순환할수록 눈덩이처럼 시장규모는 커집니다. 원래의 대출증서가 위험자산인데, 그것에 기초한 파생상품 또한 그만큼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택시장의 버블이 꺼지는 날에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매우 위험한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월 스트리트에서는 이 시한폭탄이 언제 어디서 터질 것인가의 문제만 남았었는데,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서 제일 먼저 터졌고, 그 다음 리먼브라더스 등으로 옮겨졌습니다. 투자은행들끼리 서로 스크럼을 짜고 수많은 폭탄을 돌렸기 때문에 한두 군데서 터지니까 너나 할 것 없이 한꺼번에 다 터져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금융위기입니다.

 

(위기의 원인을 매우 복잡한 수식과 그래프를 동원해서 분석한 보고서는 수없이 많습니다. 일반인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릅니다. 복잡하게 해 놓고, 뭔가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터졌는데,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발뺌합니다. 월 스트리트에 있는 사람들은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금융위기의 진실이 어느 정도 밝혀지자, 대부분의 투자은행과 금융기관 경영진은 엄청난 보너스를 받고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월 스트리트는 잿더미로 변해버렸습니다. 그 결과, 서브프라임 론을 받았던 사람들은 주택을 압류당해서 거리에 나앉게 되었고, 증권화된 금융상품에 투자한 일반투자자들은 자신의 증권이 휴지조각으로 변했습니다.

 

, 그러면 누가 잘못했는가?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일을 주관했던 주택담보대출업체와 증권회사, 금융기관과 기관투자자의 경영진은 잘못이 없는가? 명백한 불법적 행위를 하지 않은 한, 도의적 책임만 가질 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황당하죠? 규제를 다 풀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황당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감독했어야 할 감독당국, 즉 증권거래위원회(SEC),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재무부(Secretary of the Treasury)는 무엇을 했을까요? 그들이 금융규제를 풀어주었기 때문에, 손 놓고 있었거나 눈 감고 있었거나, 아니면 문제의 원인을 아주 복잡하게 만들어서 무엇이 문제인지 아무도 알 수 없도록 하거나

 

폭탄이 터져 잿더미가 되고 난 후에, 그제서야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Allen Greenspan, 1926~)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그린스펀은 또 어떤 인물인가 1987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연준의장으로 지명되어 2006년까지 18년이 넘도록 세계의 경제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얻으면서 금융시장을 주무른 사람입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폴슨(Henry Paulson, 1946~)이 "자유화된 금융은 구조적으로 폭발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는 점입니다. 자신들이 자유화시켜 놓았는데, 이제 와서 폭발위험이 크다? 폴슨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 출신입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의 경력만 봐도 악마의 맷돌을 찬양할 것은 뻔합니다.

 

이들 미국 금융시장의 최고책임자들은 자유방임의 신념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무능한 인물들이 아니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이념이 그들의 양심을 가렸고, 마음의 눈을 가린 것입니다.

 

,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됐는가?

원래의 대출증서를 묶어서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증권화하여 파생상품을 만드는 최초의 행위가 문제입니다. 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는 대출증서를 상품화하여 유통시킴으로써 시장규모를 확대한 것입니다. 자본시장에서 파생상품은 위험을 헤징하는 좋은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품 자체가 대규모로 시장에서 순환하게 되면, 엄청난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세밀한 관찰과 감독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연준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오히려 금융공학의 발달로 세계경제는 불황없는 성장이 가능하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신자유주의 이념을 실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수단을 기억하시나요? 모든 것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전환시켜서 시장규모를 확대하라는 것입니다. 레이건 정부 이래로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증권화 작업과 위험한 유통과정을 합법적인 것으로 모두 인정해주었습니다

 

, 그렇다면, 시장규모가 확대되어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서민들의 주머니는 털렸고, 이 모든 사태를 책임지고 있던 부유층은 보너스 받고 월 스트리트를 떠났습니다. 그러면, 서민들이 너무 억울하지 않냐고 반문하시겠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주택을 구입했고, 자기책임하에 투자했으므로 자기책임의 원리가 적용됩니다.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데가 없습니다.

 

이제, 가진 자들이 신자유주의 이념을 왜 그토록 강력하게 주장하는지, 그리고 그 이념이 시장경제에서 어떤 방식으로 먹히는지, 그 메커니즘을 어느 정도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왜 악마의 맷돌을 계속 돌리고 싶어하는지 이해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국제사회로 확대하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이 강대국으로서 다른 나라를 계속 지배하려면 신자유주의 이념에 따라 악마의 맷돌을 계속 돌리면서 가난한 나라의 주머니를 털어야겠지요. 그게 바로 WTO, FTA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이념을 비판하고 있는 장하준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와 『나쁜 사마리아인』 등과 같은 자신의 책에서 세계는 결코 평평하지 않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번 금융위기가 회복되고 나면, 최대의 손실을 볼 나라는 어디이고, 최대의 혜택을 입을 나라는 어디일까요? 국제적으로 보면, 손실을 입을 나라는 역시 가난한 나라들이고, 혜택을 볼 나라는 미국이라는 것에 경제학자들은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국제경제적으로 보면, 이번 금융위기에서 미국은 손해 볼 것이 거의 없습니다. 세계무역의 기초와 금융결제수단은 모두 미국이 발행하는 달러(US$)이기 때문입니. 미국 입장에서는 지금 세계경제라는 바둑판에서 꽃놀이 패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왜 그런지는 나중에 포스팅하겠습니다. 우선 급한 것부터 글을 올리겠습니다. 써야 할 것은 많고 시간은 늘 부족하고…)

 

부유층과 강대국은 악마의 맷돌을 계속 돌림으로써 서민들과 가난한 나라로부터 돈을 빨아내는 것으로 끝났을까요? 만약 돈만의 문제였다면, 그것은 참을 수 있습니다. 다시 벌면 되니까요. 그러나 이것은 돈만의 이슈가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럼, 어떤 문제가 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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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모든 것을 상품화하여 시장에서 거래하도록 할 수 있다면, 시장은 부족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최적의 균형상태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믿음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믿음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만약, 시장이 이러한 자기조절기능을 가지고 있다면, 파국으로 나가기 전에 스스로 균형상태를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번번히 파국을 맞았고, 인위적인 조정을 가해야 다시 살아나곤 했습니다. 고전적 자유주의 이념이 가져온 파국의 절정은 1929년의 대공황입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이념의 결말과 비슷한 양상입니다. 19세기를 거쳐 20세기 초엽까지 거의 무제한적 자유방임을 추구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상당히 팽창한 것처럼 보였지만 엄청난 버블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대공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앉았습니다. 이런 경제적 공황상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시장에 대한 자유방임적 신념은 완전히 잘못된 믿음이라는 사실을 경제학적으로 알려준 사람이 바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였습니다. 정부가 적절한 수준의 개입을 통해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잡도록 인위적 조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대공황은 유효수요의 부족이 원인이므로, 정부가 재정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돈을 풀어서 수요를 진작하여 생산자의 공급이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정부의 대규모 개입이 시장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혁명적 처방이었는데, 시장을 맘대로 주무르던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케인즈의 처방은 옳았고, 시장경제의 패러다임은 개입주의자들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종전 후에도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여 자유주의적 방임에 따른 극심한 빈부격차를 축소하기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들을 시행해 나갔습니다. 부유층의 부당한 탐욕을 제어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잠재력을 키워주는 방식으로 정부의 대규모 개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중산층이 매우 두터워졌고, 30여 년간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과 풍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명실상부하는 세계의 중심국가로 부상했습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미국은 국제무대에서도 지나친 개입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함으로써 미국은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한 후, 미국의 진보적 개입주의는 서서히 힘을 잃었습니다. 시장에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자들이 득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자유주의를 대공황 이전의 고전적 자유주의와 구분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라고 부릅니다.) 보수적인 공화당의 레이건이 1981년에 대통령에 취임하면서부터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시장의 규제적 장치를 다 풀어 놓았습니다. 부자들에 대해서는 세금을 감면하고, 시장경쟁에서 자기책임의 원리를 내세웠습니다. 이때부터 시장은 활기를 띠고, 모든 것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전환시켰습니다. 시장은 커졌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탐욕도 증가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 어떤 사건들이 벌어졌는지는 앞에서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서 심각하게 타격을 입은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당연히 가난한 서민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저축은 물론 퇴직연금과 같은 장래를 담보한 투자금을 날리기 일쑤였습니다. 대형기관의 경영진은 이미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파국으로 치닫기 전에 자신의 투자금을 회수하거나 높은 연봉으로 미리 단물을 다 빨아먹습니다. 그리고 파국이 오면, 경영진은 물러나면 그 뿐입니다. 경영판단이었기 때문에 배임과 같은 범죄행위로 처벌하기도 곤란합니다. 지난 30년간 대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은 결과적으로 가진 자들이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메커니즘으로 굳어졌습니다.

     

    나는 통계수치를 크게 신뢰하지 않지만, 숫자가 때로는 이해를 훨씬 빠르게 해주기 때문에 인용해 보겠습니다.

     

    레이건 등장 이전에는 상위 1%의 부유층이 차지하고 있던 총소득은 국민총소득의 8%, 상위 0.1%의 초부유층이 차지했던 총소득은 국민총소득의 3%에 불과했다. 신자유주의 경제패러다임의 시행 후 25년이 지난 2005년에는 상위 1%의 부유층이 국민총소득의 17%로 늘어났고, 상위 0.1%의 초부유층의 소득은 전체소득의 7%로 늘어났다. 양극화 현상이 극한에 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카타니 이와오, 이남규 옮김, 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 기파랑 2009, 49)

     

    아울러 1970년대에는 10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 보상수준이 종업원의 평균임금의 약 40배 수준이었습니다. 21세기 들어와서는 약 400배로 늘어났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제패러다임이 중산층을 빠른 속도로 무너뜨렸습니다. 부유층이 중산층의 부를 빨아들인 것입니다. 부유층은, 중산층 사람들이 시장에서 선택의 자유와 기회의 평등에 따라 주체적으로 의사결정 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자기책임의 원리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대답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나요?

     

    선택의 자유”, “기회의 평등”, “자기책임의 원리라는 용어가 얼마나 허울뿐인 논리와 도덕인지를 명확히 보여준 사건들이 많지만, 최근의 사례만 들어보겠습니다. 부유층의 도덕적 해이와 그 탐욕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파렴치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진원지인 월 스트리트의 대형 투자은행과 금융기관 경영진들이 보여준 무책임한 행태에서 나는 경악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심대한 손실 때문에 파산시킬 수 없어서, 대형금융기관에 국고를 지원했습니다. (자유방임의 신자유주의 이념에 따르면 당연히 파산시켜야 마땅하지만 그들 역시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시장의 자기조절기능은 환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원받은 돈으로 경영진들은 거액의 보너스를 챙겼고, 심지어 그 돈으로 의회에 로비까지 했습니다. 자신들이 유리하도록 제도를 바꾸려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구조조정을 빌미로 수많은 종업원들을 정리해고 했습니다. 이런 일은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1980년대부터 일어난 금융사건과 사고의 원인과 그 행태는 거의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의 자유, 기회의 평등, 자기책임의 원리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요?

     

    이렇게 금융시장은 또 다시 파국을 맞았고, 극단적인 인위적 조치를 취해야 겨우 되살아 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시장은 인간의 탐욕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탐욕이 시장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시장에는 자기조절기능이 있다는 헛된 믿음을 버리지 못할까요? 그것은 시장이야말로 가진 자들의 지배수단으로서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가진 자들은 지배수단으로서 시장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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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자동차뿐만 아니라 금융상품까지 불량품을 생산하는 미국식 경영에 대한 데밍의 혐오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미국 경영학계와 실무계가 데밍의 이상적인 사상 때문에 왕따시켰는지 모르겠지만, 데밍은 미국보다는 일본에서 왕성한 자문활동을 벌였고 그의 사상을 가장 잘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도 일본인들이었습니다. 그는 통계학자로서, 경영사상가로서, 뉴욕대학교의 교수로서, 그리고 경영컨설턴트로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데밍(William Edwards Deming, 1900~1993)의 가르침은 일본인들에게는 구원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들은 데밍이 가르치는 통계적 기법에 의한 품질관리만을 배운 것이 아니라 데밍의 경영철학까지 받아들여 실무에 응용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이 결코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품질수준을 만들어 냈습니다.

     

    데밍의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난 저작


    일본인들에게 가르쳤던 데밍의 가르침은 품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윤을 창출하자는 것이 품질이기 때문에 품질은 이윤보다 앞선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품질은 장기적인 계획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이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품질관리에는 통계적인 기법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올바른 정신모형(mental model)이 뒷받침되어야 함도 교육했습니다.

     




    데밍의 경영철학은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미국식 경영과는 다릅니다.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의 정신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서만 베풀고, 그 결과에만 집착하는 미국식 경영관행으로는 데밍의 사상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심오한 지식

     

    데밍이 도대체 무슨 주장을 했길래 미국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일본인들은 그의 사상을 받아들였을까요? 그는 경영에 관한 수많은 지식체계를 쏟아냈지만, 자신이 직접 심오한 지식(profound knowledge)이라고 골라 뽑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물론 이 네 가지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한데 어우러진 것으로서, 기업들이 미국식 숫자경영에서 벗어나 최적화된 경영방식으로 변화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들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시스템에 대한 인식

    변동에 관한 지식

    지식이론

    심리학

     

    시스템에 대한 인식

     

    첫째, 시스템이란 목표달성을 위해 협력하는 상호의존적인 구성요소의 네트워크입니다. 구성요소들간의 상호의존성이 커질수록 협력과 의사소통의 필요성은 커집니다. 볼링 팀은 상호의존성이 낮지만 오케스트라는 매우 높습니다. 아마도, 기업경영은 오케스트라보다 더 높은 상호의존성을 나타낼 것입니다. 따라서 기업경영에 있어서 각 구성원은 자신의 생산, 이익 또는 판매 등과 같은 부문별 극대화를 목표로 하거나 경쟁적인 측정방식을 도입해서는 안 됩니다. 전체 시스템에 최대한 공헌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해서 시스템 전체의 최적화를 위해 스스로 손해를 볼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시스템에 관한 견해는 후일 피터 센게(Peter Senge, 1947~)의 시스템이론과 학습조직개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센게의 사상은 1990년에 『제5경영』(The Fifth Principle)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우리나라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변동에 관한 지식

     

    둘째, 변동(variation)에 관한 지식이란 통계적 추정의 오류에 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의 시험성적을 평균하면, 절반은 평균 이하의 점수를 얻었을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평균 이상의 점수를 얻었을 것입니다. 평균 이하의 성적을 거둔 학생에게 장래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거나 유능하지 못하다는 통보를 한다면, 학생은 의기소침해지고 굴욕감이나 열등감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처사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학생의 성적은 그 학생 고유의 능력을 나타낸 것이 아니며, 학교성적이란 아이가 처한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적 원인을 도외시한 채, 성적이 평균 이하의 학생에게 장래가 어둡다는 평가를 내리거나 머리가 나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변동에 관한 잘못된 지식 때문입니다. 데밍의 변동에 관한 심오한 지식은, 기업에서 성과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에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성과가 낮은 직원에게 무능하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판단인지를 알려줍니다.

     

    지식이론

     

    셋째, 지식에 관한 이론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데밍의 지식이론을 가장 좋아합니다. 지식이 없으면 합리적인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데밍의 지식이론이 가장 논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많은 경영자들이 지식을 그저 무엇에 대해 알고 있는 상태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단순히 무엇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은 미래를 예측하게 하는 기반입니다. 내가 만약 휴가를 떠난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식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진보하게 하는 기반입니다. 이 풍요의 기반은 끝없이 확장할 수 있습니다. 지식이 없으면, 즉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면 그 조직은 망합니다. 그래서 지식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데밍의 유명한 비유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챈티클리어라는 수탉에 관한 비유입니다.

     

    헛간의 수탉, 챈티클리어는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온 힘을 다해서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우렁차게 울었다. 그런 후에 태양이 떠올랐다. 전후 관계가 분명했다. 그의 울음 소리는 태양을 떠오르게 하였다. 그가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는 어느 날 아침 울음소리 내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태양은 떠올랐다. 풀이 죽은 그는 자신의 이론을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에드워즈 데밍, 김봉균 외 옮김, 『품질 석학, 데밍박사의 경쟁으로부터의 탈출』, 한국표준협회컨설팅 2004, 120


     

    일단 이론을 가지고 있어야 그 이론의 부적합성과 개정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론은 세상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방식입니다. 이론이 없으면 학습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경영자들이 성공사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경영자들은 자신만의 이론을 가지고 세상을 보아야 하며, 그 이론이 부적합할 경우에는 그것을 스스로 수정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참값(true value)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강의장에 몇 명이 있다는 숫자는 참값이 아닙니다. 누구를 셀 것인가에 따라 다양한 숫자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남자만 셀 것인가 아니면 여자만 셀 것인가? 결혼한 사람만 셀 것인가 아니면 미혼자만 셀 것인가? 임신한 사람만 셀 것인가 아니면 태아까지 셀 것인가?

     

    또한 어떤 관찰도 객관적 사실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건은 사람이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고 관찰되기 때문입니다. 촛불시위 사태, 용산참사, 국회의원 보궐선거 결과 등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사태를 관찰했지만, 그 사태의 해석은 구구각색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관점에서만 사태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 다른 사람이 본 것을 보지 않았거나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관찰할 것인지를 사전에 합의해야 합니다. 그 합의를 위해서 구성원들에게는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가 필요합니다. 조작적 정의에 대해서는 추후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한 예를 들면, 내가 인간을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실존적 존재라고 경영학적으로 정의한 것도 조작적 정의에 속합니다.

     

    경영자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지식이론을 갖는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철학적 입장을 정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경영자의 경영철학의 정립이 경영행위보다 중요하고 선결되어야 합니다.

     

    심리학

     

    넷째, 심리학입니다. 심리학의 유용성은 인간은 누구나 다르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데 있습니다. 인간은 똑 같은 경우가 없습니다. 어떤 패턴이 유사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동일할 수는 없습니다. 일하는 동기도 다르고, 학습하는 방법과 속도도 다릅니다. 따라서 경영자는 이 차이점을 심리학을 통해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의 능력과 성향을 적절히 조절하여 최적화함으로써 높은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에 대한 이해의 결여로 노동에 대한 과잉정당화(overjustification) 현상이 일어나곤 합니다. 결국에는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e)를 왜곡하고 노동의 즐거움을 앗아갑니다. 과잉정당화란, 보상이 없이도 기쁨으로 일하려고 하는 근로자에게 노동의 대가로 추가보상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청소하려고 하는데, 부모가 청소를 깨끗이 하면 용돈을 올려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히려 자발적으로 청소하려는 내재적 동기가 변질되어 용돈을 위해 일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월 스트리트의 경영진들은 과잉정당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에게 주는 과도한  보상은 일에 대한 순수한 내재적 동기를 왜곡합니다. 그들에게는 도덕적 의무감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월 스트리트의 보상체계는 오직 보상을 위해 일하게 만들고 있을 뿐입니다.

     

    학생들과 학교에 점수를 매겨서 서로 경쟁하도록 하는 경우에도 역시 심리학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점수에 따라 등급화하거나 서열화하는 경우에는 점수를 높이는 데만 집착하게 만듦으로써 배움의 즐거움을 상실케 합니다. 직장에서도 평가결과에 따른 등급화 또는 서열화와 그에 따른 보상은 일에 대한 즐거움과 창의력을 감퇴시킵니다.

    그러므로 더 높은 성과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기 원한다면, 기업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성과관리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데밍의 이러한 사상은 교육학자 알피 콘(Alfie Kohn, 1947~)과 스탠포드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교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다룰 예정입니다.)


    보상이 인간의 정신을 왜곡하는 현상에 대하여

    2009/04/09 미국사회의 시스템화된 탐욕이 드러나다

    2009/02/27 돈은 인간의 정신을 왜곡한다 


     


    데밍의 사상에서 경영에 관한 심오한 지식은 인류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특히 일본인들은 데밍의 사상을 아낌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무에 적용함으로써 탁월한 품질을 만들어냈습니다. 일본인들의 품질에 대한 집착과 그 정신은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고, 그 결과 전후 잿더미만 남은 조그마한 섬나라가 30여년만에 세계 초일류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미국인들은 나중에서야 부랴부랴 데밍의 사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미국인들은 데밍의 사상이 자신들의 토양에는 맞지 않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심오한 지식"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그들은 당근을 높이 내걸고 그걸 따먹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도록 밀어붙이는 약육강식의 방법이 역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미국의 상징 월 스트리트의 정신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미국식 당근 내걸기 전략을 버리고, 데밍의 경영에 관한 심오한 지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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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미국인들이 탐욕적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깊이와 넓이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현재의 금융위기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많은 분석과 처방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기술적인 문제에 치우친 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에서 보는 인터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첫째, 폰지게임과 같은 방식으로 파생상품을 팔아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위험량을 정확히 계산할 수 없을 만큼의 독성이 큰 상품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핑크빛 포장지로 싸서 전세계에 팔았습니다. 신용평가사들의 위험 제로라는 트리플 에이(Triple-A) 딱지까지 붙여서 말입니다. 처음부터 사기를 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월 스트리트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에 부정적발당국은 뭘 하고 있었는가? FBI에서는 모기지 상품들의 사기에 의한 부정(fraud) 위험을 경고했으나 부시행정부에서는 실체도 없는 테러와의 전쟁 때문에 FBI의 인력을 보충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을 테러인력으로 전부 빼돌렸습니다. 더구나 1980년대 수백 개의 저축대부조합(Savings and Loan Associations)이 무너지는 사태를 통해 금융부정의 실태와 원인을 파악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위기사태를 예방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위기는 저축대부조합 위기의 1,000배나 더 큰 위기인데도 말입니다. 테러의 위기보다는 수천 배가 더 크겠죠.

     

    셋째, 경찰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금융감독당국에서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는가? 월 스트리트의 인물들과 감독당국의 책임자들, 그리고 정부의 고위관료들은 서로 회전문 인사를 통해 왔다갔다하고 있기 때문에 사태의 진실을 덮어버리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현재 재무장관 가이트너도 뱅커출신입니다. 가이트너는 뉴욕연준의장으로서 이번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인 모기지 대출과 그 파생상품의 부정판매에 대해 직접적인 감독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긴 꼴입니다.

     

    넷째, 감독당국은 AIG사태에서도 보았듯이, 정부보조금이 파산지경에 이른 금융기관 경영자들의 주머니로 고스란히 들어가도록 내버려두었거나 조정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월 스트리트의 사람들이 서로서로 스크럼을 짜고 '미래의 파국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로 그들이 저지른 엄청난 부정을 덮어버리려 한다는 것입니다.

     

    아래 인터뷰를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pbs.org/moyers/journal/04032009/watch.html

     

    미국이라는 나라는 탐욕 위에 세운 집과 같습니다. 겉에서는 아주 튼튼해 보이는데, 이번에 살짝 들여다 본 미국의 속내는 정말 더러웠습니다. 제대로 까보면 엄청 나겠지요. 인터뷰에 나온 윌리엄 블랙(William Black) 교수의 말대로 미국에서는 지금 사기꾼들이 얼마나 미친 짓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언제쯤 알 수 있을까요?

     

    파산지경에 이른 금융기관의 경영자들은 이미 천문학적인 보상을 받았으니까요. 이번 사태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미국식 경영이 멋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결국 사기꾼들이었음이 드러났죠. 미국을 건설한 밀수꾼(미국 독립선언의 대부였던 존 핸콕이 밀수꾼이었음)의 후예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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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무한경쟁의 긴장과 파벌싸움은 정신적 안전망을 잃어버린 세계의 특징입니다. 인간에게 절대적인 안전망(absolute safety net)이 없다는 것은 곧 삶의 터전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그 안전망 아래로 떨어진 인간은 이성의 힘으로 안전망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안전망은 결국 돈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돈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행복한 삶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게끔 했습니다.

     

    돈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신의 위치로 올라섰습니다. 돈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등과 같은 골치 아픈 명령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돈이라는 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줍니다.

     

    돈이라는 신이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돈은 곧 탐욕의 상징이 됩니다. 권력은 그 자체가 선도 악도 아니지만, 권력에는 부패가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 붙듯이, 돈도 그 자체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지만, 돈에는 항상 탐욕이 따라 붙습니다.

     

    사도 바울이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설파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탐욕을 충족시키는 것은 돈을 버는 것이며 그것은 곧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1987년 작품 <월 스트리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재계의 거물인 고든 게코 역을 맡은 마이클 더글러스는 회사의 주주총회에서 거만하지만 호소력 있게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합니다.

     

    여러분, 요컨대, 달리 좋은 말이 없으니 탐욕이라고 합시다. 탐욕은 좋은 것입니다. 탐욕은 옳은 것입니다! 추진력입니다! 탐욕은 발전적인 정신의 본질을 맑게 하여 그곳에 스며든 뒤 본질을 포착합니다. 인생, , 사랑, 지식 등 모든 탐욕은 인류의 비약을 이끌어왔습니다. 게다가 탐욕은, 바로 이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게다가 탐욕은 우리회사뿐만 아니라 형편없이 굴러가는 미국이라는 기업의 운명까지 구해줄 것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허시 골드버그, 『탐욕에 관한 진실』, 중앙M&B 1997, 226~227)


     

    연설이 끝나자 주주들로부터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습니다. 영화도 흥행에 성공합니다. 마이클 더글러스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습니다. 80년대 미국사회에 만연했던 탐욕의 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탐욕적인 미국인들을 비판하려는 의도는 오히려 탐욕을 부추기는 꼴이 됐습니다.

     

    이런 스토리는 현실에서도 그대로 재현됩니다. 월 스트리트의 주식브로커였던 이반 보에스키(Ivan Boesky, 1937~) 1985년 캘리포니아 대학교(버클리) 학생들에게 탐욕은 좋은 것입니다. 모두 약간의 탐욕은 가지고 있어야 하며, 탐욕에 대해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연설했고, 청중들로부터 갈채가 쏟아졌습니다. 다음 해에는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 졸업식에 연사로 초청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의무 가운데 하나로 부를 추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탐욕은 위대한 것입니다. 내 말 틀렸습니까? …… 부를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도덕적이고 정직하게 해야 합니다. …… 여러분이 목표를 높이 설정할 경우 부를 확보해야 이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여러분의 꿈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영향력 있는 인사 그 이상의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허시 골드버그, 『탐욕에 관한 진실』, 중앙M&B 1997, 223~224)


     

    이 연설이 있은 지 6개월 뒤에 검찰 당국으로부터 내부자거래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결국에는 3년 징역과 1억 달러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그는 벌금을 거뜬히 냈습니다. 20여 년 전의 1억 달러는 사상최대의 벌금이었습니다. 보에스키는 도대체 어떤 불법을 저질러서 얼마나 큰 돈을 긁어 모았길래 1억 달러를 낼 수 있었을까? 복역을 마친 후 그는 부인으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탐욕의 80년대는 보에스키뿐이 아니었습니다. 드렉셀 번햄 증권사의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 1946~)은 소위 정크본드의 왕이라 불렸습니다. 신용도가 낮아 회사채를 발행하기 어려운 회사에 접근하여 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도와서 투기성 채권인 정크본드(Junk Bond)를 발행한 후, 이를 다시 사들여서 높은 이익을 남깁니다. 그리고는 채권발행기업을 인수하고자 하는 M&A전문가에게 넘기는 수법을 반복함으로써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밀켄은 이런 식으로 80년대 미국의 정크본드 시장을 만들어 낸 사람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으로 선용될 수 있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좋은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증권브로커에게는 막대한 수익이 돌아갔지만, 해당기업은 엄청난 부채를 떠안아야 했습니다. 밀켄이 걸려든 것은 보에스키처럼 내부거래를 이용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범죄행위였습니다.

     

    밀켄이 번 돈은 보에스키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1987년 드렉셀 번햄 증권사가 밀켄에게 지급한 보수만 5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보수였다고 썼습니다. 다른 수익까지 합치면 10억 달러가 넘는 수입을 한 해에 벌었습니다. 20세기 초에 존 록펠러(John D. Rockefeller, 1839~1937)가 연간 4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보다 많았습니다. 밀켄은 보에스키와는 달리 교도소 복역과 벌금형의 의무를 마치고 나서도 남는 돈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는 지금 그 돈으로 자선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사회는, 아니 전세계는 그들의 탐욕을 방치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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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엔론사건이 터진 것은 2001년이었습니다. 엔론사태는, 인간이 탐욕이라는 블랙홀에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음을 알려주는 좋은 시그널이었습니다. 이 시그널은 인류가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고 올바른 길로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렇게 선명한 위험신호를 보고도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성에 의한 합리적 사고는 탐욕의 열차를 세울 수 없었습니다.

     

    엔론사태는 분식회계의 문제가 아닌 더 깊은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론사태를 단순한 분식회계로 몰고 갔습니다. 분식회계를 방지하기 위한 합리적 대안들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2002년에 제정된 「사베인스-옥슬리 법」(Sarbanes-Oxley Act)이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회사 경영진의 재무제표에 대한 인증 및 책임강화

    내부통제시스템의 강화

    감사인의 독립성 강화

    내부고발자(whistle-blower) 보호

     

    인간의 탐욕이 이런 이성적 장치들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와 같습니다. 이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기업에 부담을 많이 주면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조금 느슨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법 시행 3년이 경과된 시점에서는 아예 미국 의회의 독립적인 정부감사기관인 회계감사원(GAO)가 「사베인스-옥슬리 법」은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는 주장까지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계산에 의하면 대기업의 경우 법 규정대로 제대로 지키려면 약 800만 달러 이상을 지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상장을 철회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의 회계감사원은 기업이 정직하지 못해서 얻는 희생의 대가는 계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분식회계로 파산한 기업들이 2001~2002년에 엔론, 월드컴, 글로벌크로싱, 이델피아 등 네 개 회사만 합쳐도 2천억 달러의 자산규모에 이릅니다. 회계감사원의 의견대로라면, 네 개 회사의 회계투명성을 위한 비용 3 2천만 달러를 아끼려다 2천억 달러가 공중에서 분해되는 셈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돈에 노출되면 탐욕으로 변한다

     

    이처럼 돈에 노출된 인간은 이성적 판단능력을 잃게 됩니다. 교육학자, 심리학자, 경제학자 등에 의해 이미 밝혀진 사실입니다.

     

    연구자들이 아주 간단한 실험을 했습니다. 뒤섞어 놓은 문장의 단어를 재배열하여 온전한 문장을 만드는 실험이었습니다. 한 집단(A)에는 돈과 전혀 관련이 없는 문장을 재배열하도록 했고(, 밖이 춥다 등), 다른 집단(B)에는 돈과 관련된 단어들(, 고소득 등)을 제시했습니다. 이처럼 돈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참여자들의 행동방식이 달라질 수 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단어재배열 실험을 마친 다음에, B집단의(돈이라는 단어에 노출된) 사람들은 A집단의(돈이라는 단어와 전혀 상관없는 단어에만 노출된) 사람들보다 남을 도와주려는 경향이 적었고, 더 이기적이고 자립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더 많은 시간을 혼자 지내려고 했고 협동해서 일하는 것보다는 개별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주로 골랐습니다. 자리에 앉을 때도 다른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처럼 돈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사회적 동물로 생활하지 못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댄 애리얼리, 『상식 밖의 경제학』, 청림출판 2008, 109~134쪽을 참조하세요.)

     

    이 세계는 시장의 법칙이 지배하는 영역과 사랑의 법칙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구분됩니다. 시장의 영역에서는 주고받는 셈이 분명해야 하지만, 사랑의 영역에서는 계산의 잣대 자체가 없기 때문에 사랑의 마음과 마음이 서로 신뢰와 애정으로 튼튼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는 명절에는 늘 처갓집에서 장모님이 푸짐히 차려준 음식을 먹습니다. 막내 사위가 대견한지 늘 더 먹으라고 합니다. 내가 집을 나서면서 장모님에게 이런 정도의 음식은 호텔 뷔페 수준이니까 5만원 정도로 계산해서 가격을 지불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랑의 영역에서 시장의 법칙을 대입하면 아주 우스운 꼴이 됩니다. 우리는 이 상황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위가 온다고 많은 시간을 들여 정성껏 음식을 장만했을 것이고, 나는 그런 장모님에게 애정의 표현을 돈이 아니라 사회적 친밀관계를 드러내는 행위를 함으로써 가족간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의 영역에 시장의 법칙이 끼어들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그 때부터 이해타산에 따라 상대방을 평가합니다. 장모님의 음식요리시간에다 시간당 노임을 곱하여 계산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가정주부의 가사노동을 경제적 가치로 계산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만, 나는 그것이 별로 현명한 처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계산해서 뭘 어쩌자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집에서 일하는 것만큼 생활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더 효율적일까요? 아내는 과연 남편으로부터 더 많은 생활비를 받기 위해 집안 구석구석 먼지 하나 없도록 청소하게 될까요? 이것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랑의 영역인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조직이라는 것입니다. 돈이 전혀 교환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다가 퇴근 후에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편안히 안식할 수 있는 곳은 가족이 함께하는 집밖에 없습니다. 그런 쉼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힘을 충전하게 됩니다. 세상 어떤 곳에서 이런 안식을 돈 주고 살 수 있을까요? 돈이 작용하는 시장의 법칙으로는 이런 안식을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돈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그것은 끝장입니다. 사랑의 영역에다 시장의 법칙을 적용하려는 것은 가족구성원들의 관계를 엔론과 같은 상황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시장의 법칙이 작동하지 않도록 서로 사랑의 영역 안에 머물 수 있는 가족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기업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돈벌이가 중요한 일의 목적이 되면 문제가 심상치않게 됩니다. 엔론 사태와 같이 될 위험에 빠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돈이 목적이 아닌 더 가치 있는 것을 목적으로 세우고 그 목적을 위해 서로 사랑의 영역에 머물도록 한다면 훨씬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탐욕에 물든 월 스트리트의 붕괴

     

    이제 엔론 사태를 거쳐 월 스트리트의 붕괴를 살펴 보겠습니다. 엔론의 파산은 직접적으로는 분식회계에 기인하지만, 분식회계를 하도록 한 원인도 사실은 탐욕에 있습니다. 탐욕이란 통제되지 않은 욕망을 말합니다.

     

    미국은 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이래로 지속적으로 욕망을 부추겨 탐욕에 기반한 경제정책을 써 왔습니다. 일반직원의 몇 십 배 수준이던 경영진의 연봉을 수백 배로 높였고, 게다가 스톡옵션까지 걸어 놓았기 때문에 회계장부를 조작해서라도 주가를 높이려는 유혹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이 만든 제도적 장치들은 허점이 있게 마련이므로 규정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누가 탐욕의 주체였고, 불법행위자였는지를 가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금융공황상태에는 그 주체가 누구인지가 매우 불분명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미국인들이 탐욕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최근 10년간 미국의 가계부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점이 그 증거입니다. 그 중에서도 모기지론이 가계부채 증가를 주도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가계저축률은 0%로 떨어졌습니다. 미국의 가계가 부실화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주택가격 이상으로 모기지론이 대출되었습니다. 집값은 영원히 오르리라 믿었기 때문에, 주택가격이 오른 만큼 모기지론을 올립니다. 미국인들은 여기서 나오는 현금도 소비했습니다. 미국인들에게는 소비는 미덕이고 위대한 행위였습니다.

     

    월 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은 이렇게 대출된 모기지론의 증서들을 모아서 파생상품을 만들어 또 팔았습니다. 이런 상품들은 위험도에 따라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어서 수익률이 높습니다. 투자은행들은 너도 나도 이 사업모델에 뛰어 들었습니다. 엄청난 수익을 얻었습니다. 미국연방준비은행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조차도 미국의 가계부채가 증가한 것은 금융혁신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영진은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았습니다. 월 스트리트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이 그들을 축복하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들에게 탐욕은 좋은 것이고,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결코 영원히 갈 수 없습니다. 가계의 부실로 더 이상 주택가격이 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심상찮은 기운이 돌자 모기지 회사들은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출금을 갚을 여력이 없는 미국인들이 대거 집을 팔려고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주택가격이 서서히 꺾이기 시작하자 모기지론을 기초자산으로 했던 모든 파생상품들이 손실을 보기 시작했고, 급기야 휴지조각으로 변했습니다.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무너지면서 리만 브라더스, 메릴린치 등 줄줄이 무너졌습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상징하는 투자은행들이었습니다. 투자은행뿐만 아니라 상업은행들까지도 이제는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금융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어떤 제도와 시스템으로도 인간의 탐욕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쓴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탐욕이야말로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탐욕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릅니다. 이것이 진리이며, 이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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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언론은 오바마 당선자가 급히 해결해야 할 것으로 다음과 같은 과제를 들었습니다.

    금융위기의 해결
    중산층 구제
    자동차 산업 살리기

    물론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정운영의 철학을 정립하는 것입니다. 꿈도 철학도 없이 갈팡질팡하는 것을 보다가, 이제는 오바마에게라도 기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오바마의 당선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이런 바람이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단기해결과제들은 사실 잘못된 국정철학이나 이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당연히 철학을 정립하는 것을 우선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근본적인 비전/목적/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개인이든 작은 조직이든 국가든 마찬가지입니다. 오바마의 당선연설을 보니 문제의 핵심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오바마는 부시 정권이 그 동안 애써왔던 것이 어떤 철학에 근거하고 있는지 반성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기적이고도 잔인한 부시는 임기 중에 수많은 일들을 하느라 세계인을 향하여 엄청난 힘(권력)과 에너지를 썼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전쟁을 일으켰고, 부익부빈익빈의 악순환 고리는 더욱 고착되었습니다. 화려한 구호로 포장한 정책들은 외려 서민용 의료보험 시스템을 더 악화시켰습니다. 미국이 자랑하던 금융시스템의 본고장인 월 스트리트는 탐욕과 불신, 불법과 배신의 본고장이 되었습니다. 중산층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많은 서민들이 자녀의 대학 학자금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당하는 고통이야 그들이 뽑은 대통령이 잘못한 것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미국 때문에 당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디에 호소해야 할까요?

     

    인간의 생각은 항상 이렇게 잘못될 수 있습니다. 미국은 그 동안 잘못된 정신이 잘못된 기계를 잘못된 연료로 운전해 왔습니다. 이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죠.

     

    그래서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기독교변증가 씨 에스 루이스(C. S. Lewis, 1898~1963)는 이미 반세기 전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인간은 엄청난 에너지를 썼습니다. 여러 문명을 건설했습니다. 훌륭한 제도들을 고안했습니다. 그러나 매번 무언가가 잘못되었습니다. 언제나 몇 가지 치명적인 결함 때문에 이기적이고 잔인한 인간들이 우두머리가 되었고, 모든 것을 비참한 파멸로 몰고 갔습니다. 사실상 이 기계는 망가졌습니다. 출발은 잘한 것 같았고, 처음 얼마간은 제대로 가는 것 같았지만 곧 고장이 나버렸습니다. 인간은 잘못된 연료를 넣고 달리려 하고 있습니다. 


    오바마는 부시의 잘못된 정신과 시스템을 반성 없이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치명적 결함이 무엇인지 반성해야 합니다. 반성 없는 인간은 짐승이 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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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월 스트리트에서 큰(富)를 이룬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월 스트리트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워렌 버핏의 성공은 연구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나는 워렌 버핏의 성공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리에 근거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자신의 일을 즐겼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원리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 그 자체가 곧 일하게 하는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여 그것을 일관되게 실천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일을 항상 즐거워했기 때문에 그 일을 평생토록 해왔고, 그래서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점은 <진정한 자본가, 워렌 버핏>에서 다루었으므로, 이번에는 두 번째 원리인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여 일관되게 실천해 왔다는 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워렌 버핏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수많은 문헌들이 시중에 나와 있지만, 정작 워렌 버핏은 자신의 사상을 책으로 펴낸 적이 없습니다. 매년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보내는 메모를 통해 그의 사상을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잘 알다시피, 철학이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근원적 사유를 말합니다. 이러한 근원적 사유의 틀이 형성되지 않으면, 사물이나 현상의 실재와 본질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쉽게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하고, 때로는 객관적 정보가 아닌 왜곡된 아첨에 우쭐해지기도 하며, 약간의 수익으로 천하를 얻은 것처럼 흥분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철학의 정립이 없이는 일관된 삶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미성숙한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일관성을 갖지 못하는 것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삶의 철학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버핏의 철학

    그렇다면, 도대체 워렌 버핏이 정립한 철학은 무엇이며, 그것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가? 이점에 대해서는 워렌 버핏 자신이 직접 명시적으로 이것이 내 철학이다라고 밝힌 것이 없기 때문에 여러 문헌과 언론에서 전해지는 것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빛나는 철학의 대가들도 이것이 내 철학이라고 단순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그가 한 말이나 에세이, 그리고 남긴 저술을 통해 우리가 짐작하고 있을 뿐이죠. 그런 점에서 워렌 버핏의 철학을 여기서 논하는 것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정립한 철학은 기업의 존재목적, 즉 기업은 주주의 이익추구를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라는 수단을 활용하여 이익을 보다 많이 취하기 위해 자신의 돈(자본)을 투자하는 것이 당연하지 그게 무슨 철학이란 말인가.

    철학이란 원래 당연한 것이 무엇인지 따져서, 그 당연한 것을 확고하게 만들고, 그 기반 위에서 활동하려는 노력입니다. 우리나라 자본주의는 철학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기반에서 기업이론 또는 경영이론을 구성하고, 이것을 실천할 때,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당연한 것이 기업경영의 현장에서는 당연하게 운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워렌 버핏이 크게 분노했듯이 경영자들에게 부여하는 스톡옵션으로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는 예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스톡옵션 자체가 잘못된 발상이라거나 폐해를 가져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스톡옵션이 경영자들의 장기적인 성과창출의 인센티브 역할을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성과에 비해 불공정하리만큼 많은 보상이 주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국사회에서 유행하던 그 동안의 스톡옵션 관행이 어떻게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지 여기서 상세히 논의하지 않겠지만, 워렌 버핏의 계산법에 의하면 그런 관행은 무능한 경영자들의 땅 짚고 헤엄치기나 다를 바 없는 것이라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월 스트리트의 일반적인 관행이 그의 철학적 사유의 틀에서 볼 때 말도 안 되는 짓거리로 보였던 것입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기업에서 주주의 이익을 최대화 하기 위한 자원은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재무적 자원(financial resource)과 인적 자원(human resource)입니다. 이 두 가지 자원에 대해서 버핏이 어떤 철학을 지속적으로 지켜왔는지를 보겠습니다.

    재무적 자원에 대한 철학

    재무적 자원에 대한 그의 근원적 사유의 틀을 봅시다. 재무적 자원은 재무제표에 의해 계산됩니다. 자산은 자본과 부채를 합한 것이죠. 즉 자본은 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재무적 자원의 원천(ultimate source)은 주주들이 투자한 자본(capital)입니다. 자산이 아니라 자본이 자본주의 운영메커니즘의 핵심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워렌 버핏은 이 점을 아주 명확히 한 것이 다른 투자자나 경영자들과 다르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자산배분(asset allocation)과 자본배분(capital allocation)의 구분을 매우 모호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주주와 경영자간에 이견이 발생하며, 때로는 주주의 몫인지 경영자의 몫인지 불분명해진다는 점을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복잡한 수학적 계산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버핏은 자신이 투자한 자본이 자본비용(capital cost)을 능가함으로써 주주들에게 평균이상의 수익을 줄 수 있을 때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입니다. 이 말은 곧 투자한 자본이 투자된 기업의 자본계정의 일부를 구성함으로써 그 기업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주는 그 기업이 수행하는 사업을 경영자와 함께 직접 꾸려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는 자본을 어떤 사업에 집중적으로 장기간 투자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장기투자가 좋으냐 또는 단기투자가 좋으냐의 논의는 사실상 자본주의 사회의 운영 메커니즘에 대한 인식론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주식을 샀다는 말은 그 회사의 자본계정에 투자했다는 뜻이므로 그 회사의 주인으로서 경영자와 함께 사업을 장기간 운영하는 사람이고, 단기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돈 놓고 돈 먹는 카지노 놀이를 하는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어느 기업에 투자했다는 표현하지 않고, 어느 기업을 인수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이죠. 말하자면, 사업에 투자한 것이지 주식에 투자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러한 원칙을 지켜나가는 데에, 요즘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는 복잡한 금융공학적 자본시장 이론들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고 말합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재무담당자들 중에 상당수가 기묘한 금융이론을 내세우며 그럴 듯하게 떠들고 있지만, 정작 가장 기초적인 자본배분의 원리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란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주 중심의 자본주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워렌 버핏은 사회적 통찰력을 통해 돈(자본)의 근원을 이해하고, 자산을 운용한 것이 아니라 자본을 배분함으로써 주인의식을 가지고 기업을 경영해 왔습니다. 그는 주식투자자가 아니라 경영자입니다. 워렌 버핏의 자본주의에 대한 이러한 인식체계가 그의 자본을 장기간에 걸쳐 엄청난 부로 축적 시켜 왔습니다. 작은 부는 노력에 의해 가능하지만, 큰 부는 철학이 만들어 냅니다.

    인적 자원에 대한 철학

    워렌 버핏이 정립한 자본배분의 철학에 이어 두 번째 철학은 인적자원의 배분에 관한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은 기업 내에서 자원의 성격을 갖기도 하지만, 기업의 궁극적 목적이기도 합니다. 기업의 현실에서 보면, 사람을 한편으로는 성과창출의 자원으로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실존적으로 평등한 인간으로서 다루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워렌 버핏은 경영자로서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을 아주 잘 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인수대상으로 고려하는 기업은 단순히 기업의 재무적 전망뿐만 아니라, 경영자가 지속적으로 실천해 왔던 활동을 통해 그의 가치관 내지 윤리적 기준을 확인합니다. 워렌 버핏 자신이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경영하는 일 자체를 즐기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에게 완벽한 투명성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런 후에 그 기업을 인수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거의 완벽하게 위임합니다. 워렌 버핏이 자회사의 경영진에게 간섭해야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자신은 인재파견업을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들의 길을 막지 않는 것뿐입니다. 만약 내가 하는 일이 골프 팀을 관리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잭 니클라우스나 아놀드 파머가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나에게서 스윙하는 법에 대해 지도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워렌 버핏은 설사 자신의 견해와 경영진의 견해가 다를 때라도, 그래서 자신의 견해가 나중에 회사를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라도 위법적이거나 비도덕적이지 않은 한 그들의 견해를 존중해 줍니다. 그래서 그를 오랫동안 관찰한 기자의 말에 의하면, 워렌은 인내심의 천재라고까지 말합니다.

    많은 경영자들이 무능한 부하들을 선발해 놓고는 끊임없이 그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가르치려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항상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택시를 탄 승객이 운전기사에게 목적지는 제대로 말해 주지 않은 채 저기 담배가게 앞에서 좌회전 하시고, 오른쪽 학교 앞에서는 30km로 가시고, 다음 신호에서 우회전하시고, ……”라고 한다면, 아마도 운전기사는 제대로 운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대로 믿을만한, 때로는 경탄할만한 운전기사가 아니면 아예 고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워렌 버핏의 인사철학입니다. 그래서 수십 개의 자회사와 수십만 명의 임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에는 단 12명이 일하고 있을 뿐입니다. 워렌 버핏은 광고계의 천재였던 데이비드 오길비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보다 작은 사람을 고용하면 우리는 난쟁이 회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큰 사람을 고용한다면 우리는 거인회사가 될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자회사에서 보내온 수많은 보고서를 보면서도 오후에는 낮잠을 잘 시간이 남는다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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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워렌 버핏이 자신이 축적한 자본의 대부분을 친구인 빌 게이츠가 세운 재단에 기부하기로 발표함으로써,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금융위기를 맞아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된 그는 순수한 투자가로서의 일생을 살았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세계적인 부자들이 대개 기업을 창업했거나 그 후손들인데 비해 워렌 버핏의 경우는 부의 축적과정이 남달랐다는 점에서 집중조명의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단 한 권의 책도 낸 적이 없지만, 그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나왔습니다. 나는 버핏이 투자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일에 대한 그의 철학을 재조명해 보고 싶었습니다.

     

    버핏의 두 가지 성공원리

    월 스트리트에서 큰 부를 이룬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월 스트리트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워렌 버핏의 성공은 연구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나는 워렌 버핏의 성공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리에 근거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자신의 일을 즐겼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원리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 그 자체가 곧 일하게 하는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여 그것을 일관되게 실천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철학은 <철학으로 일군 자본주의, 워렌 버핏>에서 다룹니다.

     

    노동의 의미

    노동을 의미하는 독일어 아르바이트(Arbeit)라는 말에는 고통스럽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한다면, 그러한 노동에는 항상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서구 자본주의가 그 틀을 갖추게 되면서부터, 즉 기업이 주식회사의 형태를 갖추고 부(wealth)의 축적이 자본(capital)의 형태로 전환되어 투자의 대상이 되면서부터, 부의 축적에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이 점차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실물경제가 금융경제를 압도하던 시대에서 거꾸로 금융경제가 실물경제를 지배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앞으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인류의 노동의 역사에서 매주 중요한 전기를 제공했습니다. 아르바이트가 더 이상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즐거움을 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운동 선수가 그 운동을 통해 큰 돈을 벌겠다고 한다면 그 운동이 고통을 수반할 수 있겠지만, 운동 그 자체가 즐거워서 하고 그 결과로 돈을 버는 것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성숙한 자본주의의 진정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노동과 노동 그 자체가 즐거워서 하는 노동은 엄청난 생산성의 차이를 나타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은 돈 버는 것이 생계를 위해서나 풍요로운 삶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돈 버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 됩니다. 워렌 버핏이 바로 그런 사람이지요.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그러한 부로 누릴 수 있는 어떠한 사치와 안락함을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부를 축적하는 세 가지 길

    자본주의 시대에서 큰 부를 축적하는 방식은 세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기업가가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비즈니스의 길을 열어 창업한 헨리 포드, 앤드류 카네기, 빌 게이츠가 그런 사람입니다.

    둘째, 경영자가 되는 길입니다. 기업가가 만들어 놓은 회사의 경영전문가로 활동하여 성과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음으로써 부를 축적합니다. 잭 웰치, 샌포드 웨일 등이 이 부류에 속합니다.

    셋째, 투자가의 길을 걷습니다. 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했던 존 템플턴, 워렌 버핏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기업가로 출발했든, 경영자였든, 투자가였든 상관없이 이들의 공통점은 자본가로서의 철학을 분명히 했다는 점입니다. 축적된 부, 즉 자본을 가지고 있으면 자본가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출발은 다르더라도 일단 자본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 누구나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심각하게 고려합니다. 투하한 자본비용 이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곳에 재배분함으로써 자본가의 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됩니다.

     

    진정한 자본가란 어떤 사람인가

    이러한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자본가는 자본의 효율적 운용을 통해 보다 더 성숙한 자본주의로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사회의 장기적 발전에 쓸 수 있도록 공헌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거기에다 자신의 부를 아낌없이 쏟아 붓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밑거름이 됩니다. 이러한 밑거름을 토대로 자본의 효율적 운용메커니즘을 통해 서구 자본주의의 선순환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워렌 버핏이 기부한 금액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축적한 부, 즉 자본을 어떻게 배분했을 때 가장 효과가 클 것인가를 꼼꼼히 따져 봤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나서, 인류의 질병과 가난을 퇴치하려는 사명을 가진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것입니다. 투자가로 출발했던 워렌 버핏이 결국은 서구 자본가들이 밟았던 진정한 자본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자본가는 없고 기업가만 있는 셈인가요?

    그들이 어떤 길을 갔든,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비법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평범한 상식이고 우리가 다 아는 진리를 평생 실천했던 사람들입니다.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방식을 지속한다면, 누구든지 노후를 풍족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부를 축적하는 방식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삶과 노동에 관한 철학이 필요합니다. 부의 지속적인 축적은 진실을 바라보는 시각과 진정한 노동철학이 정립되어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큰 부를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그것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생애가 끝날 때까지 그 일을 해낼 수 있었고, 그 결과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워렌 버핏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회 있을 때마다 말했듯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했고, 그것이 투자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 즉 돈 버는 방법이 그의 적성에 맞았고, 그것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을 뿐이죠.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버크셔 해서웨이를 경영하는 일을 사랑합니다. 만약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것이 오래 사는 것에 도움이 된다면, 므두셀라(노아 홍수 이전의 족장으로서 969세까지 살아 가장 오래도록 장수한 성경상의 인물)의 기록마저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즐겁게 일했기 때문에 항상 성공했는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도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투자에 여러 차례 실패해 왔습니다. 1960년대에는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섬유회사에 투자하여 경영권까지 인수했으나, 그의 고백대로 이 투자는 최악의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 회사는 후일 그가 투자하거나 회사를 인수하기 위한 지주회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변화되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구리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큰 재앙은 아니었지만 실패로 끝났고, 월 스트리트의 투자은행이었던 살로몬 브라더스의 회장으로 취임한 것도 성공적이진 못했습니다. 21세기가 되면서 달러화 약세에 베팅하는 외환투자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파생상품과 투자은행의 위기에서 그는 또 다시 막대한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큰 손실을 입었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보상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신나는 일을 계속하면서 즐거워할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진정한 자본가의 모습을 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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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