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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28 영국여행 이야기(7)_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0)

우리는 컴브리아(Cumbria)의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 지방 출신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를 찾았습니다. 워즈워스는 호수지방의 가장 북쪽 도시인 코커머스(Cockermouth)에서 태어났습니다. 출생지는 기념관으로 개조되어 일반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그는 결혼해서 그라스미어(Grasmere) 호수 근처의 조그마한 도브 코티지(Dove Cottage)에서 중년을 지냈습니다. 이곳에서 8년간 살았는데 그라스미어 호수와 산책길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가장 왕성한 시작(詩作)활동을 했습니다. 1813년부터 죽을 때까지 삶의 후반기를 라이달 호수 근처의 라이달 마운트(Rydal Mount)에서 보냈습니다. 세 곳 다 기념관으로 개조하여 관람객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 군데 다 가볼 정도로 시간 여유는 없었습니다. 한 곳에만 가기로 했습니다. 도브 코티지보다 지명도가 낮지만 노년의 원숙한 시기를 보냈던 라이달 마운트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2백년도 더 된 집입니다. 첫 인상은 '시인인데 가난하지 않았구나'였습니다. 내 머리 속에는 시인은 늘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리나라 시인들은 대부분 가난하죠. 그래야 시가 써지는 줄 알았습니다.

라이달 마운트의 집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산책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큰 정원과 작은 오솔길이 잘 꾸며져 있습니다.

결혼하여 젊은 시절 살았던 조그마한 도브 코티지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작은 저택수준이었습니다.

언덕 위에서 멀리 라이달 호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 왼쪽에 있는 흰색 텐트에는 관람객을 위해 차와 케익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큼지막한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고 간단한 산책도 할 수 있습니다
.

 

1층 거실에는 200년 전의 살림살이를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가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당시 백작의 법률대리인이었기 때문에 큰 저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3살 때 아버지가 죽었는데, 다른 법률가들과는 달리 자신의 서재에서 자녀들에게 밀턴, 세익스피어, 스펜서의 저작들을 포함한 시를 가르쳤습니다.

부친의 사후에는 친척들의 손에서 자라났지만, 워즈워스는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그들과 불화했습니다. 18살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자연과 친척들에 대한 적의가 그의 시상에 어떤 형식으로든 반영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시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그리고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 사랑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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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을 둘러보고 난 딸의 소감은 간단했습니다. 얻은 교훈은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것들은 절대로 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간의 때가 묻으면 모든 것이 보물로 변한다나 어쩐다나이제부터는 절대로 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이층으로 올라가면 그가 썼던 연애편지들이 있습니다. 출판된 것인데,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Wordsworth and Mary's Love Letters

시인의 삶이라고 해서 남다르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대륙에서 프랑스혁명(1789년)이 일어나자 워즈워스는 21(1791)의 나이에 자연과 인간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 직접 프랑스를 여행합니다. 그곳에서 아네트 발롱이라는 프랑스 여인과 사랑에 빠져 이듬해 캐롤린이라는 딸을 낳습니다.

결혼을 약속했지만
돈이 부족한 상태여서, 혼자서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마음이 살짝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아네트와 캐롤린에 대한 그리움은 크게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시에도 많은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프랑스에 남은 피붙이들을 끝까지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기로 약속을 했답니다. 이런 얘기는 당시에는 쉬쉬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층에서 정원을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이날도 여지없이 비가 부슬부슬 내렸는데, 많은 관람객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워즈워스는 유산을 물려 받고 
32(1802)가 되어 어릴 때 친구였던 메리 허친슨과 결혼합니다. 그리고 네 자녀를 두지만, 그 중 둘은 어린 시절에 죽습니다. 그는 결혼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게 됩니다. 한 때의 불장난이 더욱 원숙한 시를 쓰게 했을까요?


시에 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정원으로 나와 산책을 하기로 했습니다.

산책하다 꽃을 보더니 찍어달라는군요. 예전에는 아내가 꽃만 보면 옆에 서서 찍어달라고 하더니 요즘은 딸이 똑같이 그럽니다. 꽃 옆에 서면 시가 저절로 나온다나 어쩐다나...


지금까지 살면서 시와 관련하여 나는 몇 차례 가벼운 홍역을 치렀습니다. 그 첫 번째는 학생 때 시를 써보고 싶어서 끄적거렸었는데, 시인으로 사는 게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를 읽으면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기 곤란했습니다. 시를 쓰는 재주가 없으니 시에 관한 글을 쓰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현대시(現代詩)의 난해성(難解性)에 관한 일 연구( 硏究)>라는 멋드러진 제목으로 논문을 썼습니다. 이승훈 교수님(시인,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정년퇴임)을 찾아가 보여드렸습니다. 잘 썼으니 잡지에 내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잘 썼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잘 몰랐지만, 좌우간 용기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xx에 관한 일 연구와 같은 제목을 붙이는 것이 유행이던 시절이라서 나도 폼 나게 그렇게 제목을 붙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현대시가 어려운 이유또는 현대시의 어려움에 대하여라고 했을 텐데 말입니다. 근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수님의 잡지에 내도 되겠다는 충고가 도대체 어떤 잡지인지를 알 수 없어서 고민하다가 학보사에 보내서 교내잡지에 실리고 말았습니다. 대학 2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워즈워스는 20대 초반부터 자연과 인생에 대해 시를 썼습니다. 세계에 대해 민감한 촉수를 가진 사람들이 시를 쓰는 모양입니다.

시에 대해서는 인연을 끊고 있다가 80년대 들어서 최승호 시인의 <대설주의보>를 읽었습니다. 시인들은 시대변화에 대한 감수성이 남다르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몇몇 시집을 사서 읽곤 했는데, 머리에 담아 두진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내가 학창시절 두툼한 Norton Anthology를 들고 다녀서 영시를 가끔 훔쳐 보긴 했지만, 더구나 영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왜냐구요? 경영학에서는 시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시 쓰는 마음도 필요 없습니다. 시집을 마케팅하거나 판매하면 얼마의 이익을 남길 수 있을지를 가르칩니다. 계산하는 마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시 쓰는 행위는 가장 비효율적인 것으로 암암리에 간주합니다. 시와 시인은 원가계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21세기 들어서 안도현 시인의 세 줄짜리 시 <너에게 묻는다>를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내가 그동안 수없이 연탄재를 발로 찼거든요. 결혼해서 삼선교 산꼭대기에 어느 집 문간방에다 신혼살림을 차렸는데, 하루에 두번 19공탄을 갈아야 했습니다. 꺼뜨리면 번개탄으로 다시 피워야 했죠. 추운 겨울에는 하루에 세 번도 갈아야 했습니다. 하얗게 된 연탄재를 빼서 쌓아 놓는 게 아주 귀찮은 일이었죠. 이 시를 읽으면 충격받을 사람이 많을 겁니다.

이런 시를 쓸 재주는 없다 해도 읽을 수 있는 마음이라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몇 권의 시집을 사서 가끔 읽지만 여전히 경영학이 머리 위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윌리엄 워즈워스 얘기를 하다가 샛길로 빠졌네요.

이층에 복도와 계단 사이에 붙어 있는 시 한편을 보았습니다
. “무지개라는 시였습니다. 아내 얘기는 이 시가 무지하게 유명한 시라네요.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까 정말 유명하긴 한 모양입니다.





여기에 다시 옮겨 보겠습니다.

The Rainbow                                                                                       무지개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하늘에 있는 무지개를 보면

A Rainbow in the sky:                                                  내 가슴이 뜁니다.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내 어릴 적에도 그랬고,

So is it now I am a man;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습니다.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나이 들어서도 역시 그럴 것입니다.

Or let me die!                                                                     만약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좋겠지요!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입니다.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내 삶이 자연의 겸허한 마음으로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하루하루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번역은 이것 저것 참조해서 내 멋대로 한 것입니다. 나 역시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뛸 정도로 세상에 민감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이웃에서 벌어지는, 무지개보다 더 한 화염의 충격에도 무덤덤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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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