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역량을 단순하게 <사고력><실행력>이라는 용어로 축약해서 표현했습니다. 실은 모든 인간은 외부의 정보를 마음의 필터를 통해서 받아들이는데, 이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필터링(filtering)하느냐에 의해 사고력과 실행력의 특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외부의 정보는 사고력과 실행력이라는 마음의 프로그램(mind program)에 의해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의 행동패턴을 만들어냅니다.

 

행동을 일으키는 인지적 과정(cognitive process)

그림에서 보듯이, 외부의 정보가 사고력(mind program)이라는 지각필터(perception filter)를 거쳐서 행동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의 엔진(behavioral engine)을 자극합니다. 엔진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100마력쯤 되고, 어떤 사람은 10마력 정도 됩니다. 10마력의 엔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훈련을 시키고 화려하게 포장해도 그 사람은 10마력 정도의 힘밖에는 발휘하지 못합니다. 물론 훈련을 통해 조금은 좋아질 수 있겠지만, 100마력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우선, 정보를 필터링하는 사고력이라는 역량군을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분석적인 사고력(analytical thinking, AT)도 있고, 개념적인 사고력(conceptual thinking, CT)도 있습니다. 둘 다 사고력이지만, 서로 호환이 어려운 사고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분석은 잘 하지만, 사태의 맥락(컨텍스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전문용어(?)로는 개념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죠. 또 어떤 사람은 사태의 맥락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문제의 원인분석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 쓰는 말로는 삽질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긴 둘 다 없는 사람도 있고, 둘 다 출중한 사고력으로 무장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고력은 이처럼 분석적인 것과 개념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래를 어느 정도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급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코앞의 일보다는 먼 장래의 일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을 미래지향성(forward looking, FL)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직무와 관련하여 일년 후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를 미리 예상하여 준비하는 사람과 지금 당장 발생한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한 사람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먼 미래를 예상해서 지금 준비해야 하며, 낮은 지위일수록 가까운 장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실무를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데, 특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당장의 눈앞에 떨어진 자질구레한 일들에 신경 쓰는 것을 보면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조직의 장래를 생각해서 지금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를 논의해야 할 자리에서, 회의실에 의자 삐뚤어진 것을 보고 실무자들에게 야단치는, 그래서 실무자들의 발언의욕을 꺾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대로 말단실무자인데도 밤낮 회사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질구레한 자신의 일은 잘하지 못하면서 회의 때는 항상 회사전략에 대해 큰소리치는 사람도 있죠.

 

그렇지만, 아무리 먼 미래를 보라고 가르쳐도, 눈앞의 일에만 급급한 인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은 윗자리에 올라가도 여전히 눈앞에서 벌어지는 당장의 일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현대사에서 가장 격정적이었던 시대를 이끈 노태우 대통령은, 같은 시대에 독일통일을 이끈 헬무트 콜(Helmut Kohl, 1930~) 수상과 비교할 때, 비전이 전혀 없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민주화와 국가의 장기적 발전의 초석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시기에, 우리는 노태우와 같은 지극히 근시안적인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가적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오늘날 독일 최초의 여성총리인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1954~)과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1961~)와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인 출신 대통령 이명박(1941~)은 역시 건설회사 사장 출신답게 눈앞에 보이는 토목공사 이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역사의식을 가지고 국가의 먼 장래를 내다보는 미래지향성은 국가지도자에게는 필수적인 역량요소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정말 하루하루가 소중한 역사적 전환점에서, 우리는 국민을 회사 종업원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치명적 실수를 또다시 저질렀습니다. 우리 국민에게 닥친 현대사의 안타까운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위조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근시안적인 인물이 윗자리에 앉게 되면 합리적인 인사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인간들이 충성의 목소리를 높여 승진합니다. 설탕에 개미 꾀듯이 아첨꾼들이 모여듭니다. 회사의 장래보다는 그들의 개인적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의사결정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집니다. 이런 회사는 조직문화가 피폐해져서 구성원들이 함께 일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아침에 출근하기 싫어지죠. 서로 경쟁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줄서기를 해야 하고, 때로는 각개전투를 벌이는 통에 조직은 점점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합니다. 기업은 활력을 잃어갑니다. 그럴수록 외부의 각종 경영기법들, 예를 들어 BSC, 식스 시그마와 같은 것을 도입해서 구성원들을 쪼면 회사가 좋아질 것으로 야단법석을 떱니다. 하지만, 근본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는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힘들고 고통스러워질 뿐이죠.

 

그러므로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사고력>이라는 <세 살 적 버릇>은 매우 중요합니다.


구체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역량요소들

그림에서 보듯이, 외부의 정보가 사고력(mind program)이라는 지각필터(perception filter)를 거쳐서 행동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성취지향성, 자신감, 정직성 등과 같은 역량요소를 자극합니다. 특히 성취지향성(achievement orientation, ACH)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어진 상황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조직이 요구하는 목표보다 더 높은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하고, 끈기 있게 추진하여 성과를 얻어내려는 성향을 말합니다. 문명국가를 건설한 국민과 그렇지 못한 국민들 간의 역량요소에 있어서의 의미 있는 차이는 성취지향성이 높으냐 낮으냐의 차이였음을 밝혔습니다. (David C. McClelland, The Achieving Society, D. Van Nostrand Company, Inc. 1961을 참조) 물론 이 역량요소가 성공의 전부를 설명하진 못한다 하더라도, 개인의 성공에 성취지향성이 중요한 요소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역량요소가 높은 편에 속합니다.

 

인간의 행동을 유발케 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다른 하나는 자신감(self-confidence, SCF)입니다. 자신감은 자신의 직무와 관련하여 자신의 생각과 결정에 대한 확신의 정도를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좌절할만한 상황에서도 일시적으로 좌절했더라도 즉시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능력을 자신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연예인들이 가끔 자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좌절에 빠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감의 결여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가수 백지영은 연예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섹스스캔들에 휘말렸습니다. 한때 극도의 좌절에서 방황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곧바로 원래 자신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더 깊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타인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극복하면서 자신감을 더욱 쌓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좌절도 자신을 좌절시키지 않는 상태를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 역량요소는 평균수준을 훨씬 넘습니다.

 

외부정보를 받아들여,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소 중에서 정직성(integrity, ING) 만큼 중요한 요소는 없습니다. 정직성의 문제가 우리 시대에는 매우 중요합니다. 윤리성 또는 성실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KAIST의 안철수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기업가 중의 한 사람입니다. 정직성은 자신의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가치와 신념을 일관성 있게 지키고 따르고자 하는 성향을 말합니다. 최근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그를 보았습니다. 대담 내용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범하고도 당연한 얘기였는데, 그것이 우리를 감동시켰습니다. 왜일까요? 그의 삶이 정직했기 때문입니다. 정직은 말과 행동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목전의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양심의 소리에 따라 의사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일관성 있게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가와 경영진을 믿을 수 없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기업의 광고선전을 보면 참 좋습니다. 마음이 따듯해지고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광고하는 대로 기업인들이 의사결정하고 행동한다면, 누가 기업인을 신뢰하지 않겠습니까? 기업인이 존경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떠들지만, 정작 기업인들은 안철수 교수와는 정반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존경은커녕 범법자처럼 인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역량요소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보다도 낮은 수준입니다. 그의 높은 성취지향성과 자신감이 정직성을 눌러버렸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의 도덕성은 더욱 힘을 잃게 됩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러 차례 말과 행동이 달랐습니다
. 이 글을 쓰고 있는 2009년 7월 1일 저녁 비정규직법에 관한 여야협상이 결렬되었습니다. 그 동안 2년간 비정규직 지위에 있던 근로자는 오늘부터 법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되든지 아니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무기계약 근로자)로 자동 전환됩니다. 나도 처음에는, 2년간 비정규직으로 있던 사람은 정규직으로 전환되든지 아니면 해고되는 것으로 언론을 통해서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감쪽같이 속아넘어갈 정도로 교묘하게 사태를 왜곡하는 일부 언론의 행태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한 진실은 아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김상희 의원, 비정규직법과 대량해고 그 진실은?
신원철 교수, 해고대란 타령은 거짓말... 기자들아 법부터 읽어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부쩍 서민경제를 챙기면서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사먹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공기업들이 비정규직 해고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세상에! 삽질예산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정규직 전환지원금으로 활용한다면, 비정규직법의 문제는 몇 년 내에 완전히 해소될 것입니다. 수백만명의 비정규직을 불안한 직업 상태로 방치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민을 기업가들의 자본축적을 위한 노예상태로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아마 국민들이 비정규직법의 역사적 맥락과 법개정을 위한 이명박 정부의 행태를 조금이라도 파악했다면, 감히 서민경제를 챙긴다는 말이 얼마나 파렴치한 말인지를 이해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믿을 수 없게 된 것 같습니다
.  참고로 아래의 관련된 글을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2009/06/20 신자유주의 시장경제(11)_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2009/06/19 신자유주의 시장경제(10)_ 개신교 장로들에게 묻습니다
2009/06/19 존 러스킨_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내 경험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업가와 경영진의 대부분은 이명박 대통령과 비슷한 역량프로파일(competency profile)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취지향성과 자신감은 높은데 비해 정직성은 떨어지는 프로파일 말입니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지도층의 역량프로파일이 이렇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통계가 나옵니다.

 

청렴 지수: 180개국 중에서 40

환경지속가능성 지수: 146개국 중에서 122

남녀 불평등 지수: 130개국 중에서 108

국민의 행복 지수: 178개국 중에서 102

자살률: 세계 1위(10만 명당 26.1명)
(
주간조선, 우리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2009.6.29, 2061, 16~27쪽 참조)

 

대한민국은 전세계 230여개국 중에서 국내총생산 13, 수출입 11위의 경제대국입니다. 하지만, 삶의 질은 거의 꼴지를 면치 못하고 있고, 대부분의 국민은 불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여 적소에 배치하는 시스템적 구조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대부분 회사는 오너 기업가와 경영진 중심의 보상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로자 급여의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10여 년 전 외환위기 이후에 월 스트리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도록 구체적으로 도와준 사람들이 미국계 경영컨설팅회사의 컨설턴트들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인재를 중시하고 사람중심의 경영을 한다고 떠벌립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어려워졌으니 복지후생지출을 줄이고 구조조정하겠다고 합니다.

 

특히 오늘날 비즈니스세계에서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정직성은 복잡하고 어려운 수학문제가 아니라, 안철수 교수처럼 양심에 따른 매우 간단한 결정일 뿐입니다. 함께 일하는 종업원들을, 영혼이 있는 실존적 존재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안철수 교수는 주저 없이 그렇게 결정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존경을 받으며,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탐욕에 물든 기업가와 경영진은 이런 결정을 하기 어렵습니다.

 

행동을 구체적으로 일으키게 하는 역량들

 

외부의 정보가 행동의 원천을 자극하면, 조직, 직무, 타인과 관련된 역량요소를 활성화시킵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해서는 조직에 대한 헌신(organizational commitment, OC), 참여와 협조정신(teamwork, TW)을 끌어냅니다. 또는 부하들을 육성하려는 성향(developing others, DEV)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직무에 대해서는 전문성(expertise, EXP)을 발휘하려고 노력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정보를 수집(information seeking, INF)하고, 혹시 오류가 있는지를 철저하게 확인(concern for order, CO)합니다.

 

타인에 대해서도 자신의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설득력(impact and influence, IMP)을 발휘하고, 고객에 대한 서비스정신(customer service orientation, CSO)을 가다듬게 됩니다. 업무를 위해 타인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relationship building, RB)하려고 노력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역량요소들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전부를 표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직무의 차별적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한 일반적인 역량요소를 말하는 것뿐입니다. 문제는 이것으로 높은 성과의 모든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과는 다양한 요소들의 종합적인 상호작용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성과를 단순히 한 개인의 역량으로만 돌리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예를 들어 조직의 성과를 지도자의 위대함으로 귀속시키는 사례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방식의 설명은 사실 아무런 의미도, 교훈도 끌어낼 수 없습니다. 높은 성과는 혼자서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개인의 역량요소들은 높은 성과를 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뿐입니다. 적합한 역량요소들이 잠재되어 있는 사람도 환경에 따라서는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직무가 요구하는 역량요소에 적절히 부합하는 인재(talent)를 선발하고, 그를 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을 소홀히 하면 국가든, 단위조직이든 쇠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재(talent)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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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앞에서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첫째, 비전/목적/방향이 없다는 점이고, 둘째 늘 바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들이 바쁜 이유는 비전/목적/방향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은폐하기 위해서인데, 오늘은 두 번째 특징인 항상 바쁘다는 것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비전/목적/방향이 없는 사람은 매사를 전략으로 승부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략이란 여러 프로젝트의 조합을 말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실행합니다. 가능하다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 프로젝트 중에 세간에 많이 알려진 것을 예로 들면, 대운하, 영어몰입교육, 특목고 확대와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것 말고도 여러 잡다한 것들을 해야 하기 때문에 늘 바쁩니다. 현장을 챙겨야 하고, 매사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잘 돌아가는지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정치에서는 그 현장이라는 실체도 애매합니다. 정치에서 현장이란 국민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데나 현장이라는 데를 가서 눈에 띄는 대로 지시하고 명령합니다. 공단에 가면 전봇대를 빼야 한다, 아니다 옮겨야 한다는 둥, 기업에 가면 자전거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 아니다 자전거 길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둥. 증권거래소에 가면 주가가 얼마까지 가야 한다는 둥, 심지어 회사이름까지 바꾸는 게 좋겠다 등의 지시와 명령을 끊임없이 쏟아냅니다. 내가 보기에는 김정일의 현장지도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수행원들 쭉 데리고 가서,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지시하고, 일부 충성파는 수첩 꺼내서 받아 적고, 폼 나는 장면은 사진 찍고, … 그리고 난 다음 사무관이 하기에도 쪼잔한 것들 몇 가지 지시합니다. 이런 얘기를 홍보담당자와 공보관은 열심히 받아 적어서 보도자료를 뿌립니다.

 

그래서 비전/목적/방향이 불분명한 사람은 늘 바쁩니다. 열심히 일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실무를 할 때,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기업에서도 높은 자리에서는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일이 진행됩니다. 이런 것을 요즘 말로 하면, “개념 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개열사)”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 생각 없이 바쁜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
이런 김정일식 현장지도가 내가 알기로는 박정희 군사정권시대의 브리핑문화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 공무원들이 이런 방식에는 매우 익숙합니다. 그런데, 현장지도식 브리핑문화의 가장 큰 병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인다는 데 있습니다. 일상업무를 거의 포기하고 그 일에 매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내가 이 일을 해보니까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했지만, 높으신 분들이 방문해서 얻는 효과라고는 사진 찍는 것 외에는 별로 없습니다. 국가운영은 한 두 사람이 명령하고 지시해서 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직자들이 자신의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국가운영시스템을 설계하여 잘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데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김영삼 정부시절에는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갈팡질팡하면서 비전을 잃었습니다. 요즘이 그 때와 거의 유사한 형국입니다. YS집권 후반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비전결핍을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커버하려고 했습니다. 일하면 일할수록 경제는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나라가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빠져들수록 밤샘 근무까지 하느라 그들의 얼굴이 노랗게 변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국가부도의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그래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후에 온 국민이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타이타닉호가 방향을 잃고 빙산을 향하여 돌진하고 있는데, 선장은 갑판 위를 돌아다니면서 의자를 가지런히 놓으라고 지시하고, 나사 빠진 것을 챙겨서 잘 꽂으라고 명령한다고 칩시다. 만약 여러분이 그 배에 탔다면 선장에게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정신차리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방향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겠어요? 제정신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갑판 위에서 떠들고 지시하던 것을 다 집어치우세요! 그리고 배가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보세요!' 라고 말입니다.

 

나는 나의 학생과 고객들에게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비전/목적/방향의 설정이 더 우선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비전/목적/방향을 먼저 세우고 공유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때 숫자 같은 것은 절대로 (절대로!) 제시하지 말라고 얘기해 둡니다. 숫자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비전/목적/방향이 불분명한 채 열심히 일하는 것은 위험하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목적지가 부산인지 평양인지 모르면서 어디론가 열심히 뛰는 것은 위험한 일이죠.

 

우리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유럽과 같은 복지화 사회로 갈 것인가? 아니면 남미와 같은 양극화 사회로 갈 것인가? 몇년 전에 남미에서 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전근 온 독일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서울사무소로 발령이 나서,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달 간의 서울생활을 한마디로 이렇게 치안이 확실하게 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남미의 도시들에서는, 해가 떨어지면 거리에 나다닐 수가 없답니다. 부자들은 저택에서 사설경비원을 고용해서 살고, 국민들의 상당수가 가난한 사람들이라서 거의 노숙자 수준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고, 강력 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때로는 경찰력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나는 남미를 가본 적이 없어서 그저 상상을 할 뿐입니다. 남미는 70년대만해도 세계10대 부국에 드는 나라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20년 후에는 미국을 넘보는 초일류 부국이 될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남미로 이민을 많이 갔습니다. 일본사람들도 꽤 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쩌다 남미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순희 옮김, 부키 2007)을 보세요. 장 교수는 우리사회가 왜 복지화 사회로 가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를 지향하지 않는 한, 남미와 같은 비참한 상황을 맞게 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역사의식이 부족한 사람은, 로마 병사들이나 빌라도 총독처럼 열심히 일하지만,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했다고 해서 그 결과가 용서될 수 있을까요? 역사의식의 결여는 용서될 수 있을까요? 물론 성경의 예수처럼 우리는 그들이 무지했다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단순할까요? 이명박 정부의 고위층은 정말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무지하지 않습니다. 이미 수많은 현상분석과 대안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들은 비교검토했고, 철저히 손익을 따져보았습니다. 역사의식의 결여와 그로 인한 비전/목적/방향의 결핍을 은폐하기 위해 여러가지 잡다한 프로젝트를 하느라 바쁩니다. 그 프로젝트 하나하나를 면밀히 따져보고 그 전체적인 기조를 보면, 결국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몫을 부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명백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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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우리나라는 선진국 클럽인 OECD에 가입한 국가입니다. 이들 선진국 중에서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나라는 일인당 GDP가 큰 부자나라가 아닙니다. 스웨덴, 핀란드와 같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소득격차가 낮은 나라입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응집력을 낮추고 갈등을 심화시킵니다. 건강하고 평등한 사회는 사회응집력이 높아서 평화롭게 인간적인 삶을 누립니다. 사회적 효율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런 사회일수록 공동체생활이 활발하고, 불평등으로부터 오는 폐해가 별로 없습니다. 공적인 생활뿐만 아니라 사생활에서도 큰 스트레스와 갈등을 겪지 않습니다. 정부의 공공서비스는 오히려 시민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넓혀주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빈부격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데 관심을 가진 사람들끼리 클럽 같은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해 줍니다. 그렇게 해서 시민들의 정신적, 육체적 삶의 복지수준을 높여 줍니다.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공무원들이 존재하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되어서는 실행할 수 없는 목표입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의 정신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범죄율과 폭력을 증가시키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살던 남미의 여러 국가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정부의 역할이 거의 작동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갔으니까 말입니다. 남미는 지금 빈부의 격차로 인해 그들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종교적 도덕성마저 무너졌습니다.

     

    도덕성은 사회적 평등과 경제성장 중에서 양자택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적 평등을 무시한 채 경제성장을 추진하면 남미와 같은 상태로 전락합니다. 경제를 성장시키되 사회적 불평등을 점차 줄이는 방향으로 성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그런 조치들을 국민적 합의로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한쪽 편의 이익을 위하여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사회적 갈등이 심화됩니다. 도덕성이나 신뢰와 같은 사회적 자본은 사회운영에 있어 윤활유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촉진합니다. 진정으로 경제를 성장시키고자 한다면, 도덕성과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이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인들이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서 완벽하게 중립적일 수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부자의 편에 서서 사회현상을 바라보고, 다른 이는 가난한 자의 편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그래서 정치판은 크게 보면 항상 두 패로 갈립니다. 한편에서는 부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모여 보수당을 만들고, 다른 편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을 우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진보당을 만듭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당이 한나라당, 자유선진당이고, 가난한 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진보당이 민주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등입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양당체제가 굳어져있습니다. 부자들을 위한 보수당이 공화당입니다. 부시 전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과감하게 폈습니다. 이라크와 전쟁까지 불사하면서 말이죠. 공화당 역사에서 아마도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 반대편에 있는, 오바마 대통령을 탄생시킨 민주당은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정당입니다. 유럽국가들도 이와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군소정당들이 있긴 하지만, 크게 보면 기민당이 보수파이고 사민당이 진보파입니다. 이렇게 어느 나라든지 보수와 진보로 정치판이 갈리게 되어있습니다. 독재를 하지 않는다면, 정권은 보수당에서 진보당으로, 진보당에서 보수당으로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명박씨가 가난한 서민들의 지지를 받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점입니다. 그가 샐러리맨의 성공신화를 이룩했기 때문에 적어도 서민의 아픔을 대변해 줄 수 있으리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가난한 사람들 편에서 일할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용산 철거민 참사는 그래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앞으로도 이명박 정권은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을 쏟아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명확한 사실을 가난한 서민들은 잘 몰랐습니다. 당장 급한 의식주를 해결하느라 다른데 눈 돌릴 겨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보에 어둡고 설사 정보가 있더라도 그 정보의 진실을 해석할 만한 능력도 시간도 부족합니다. 광고선전의 감성적 호소에 쉽게 넘어갑니다. 빈곤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앞으로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부자들도 타격을 받게 됩니다. 남미의 예를 보더라도 자본주의 자체가 위태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빌 게이츠, 워렌 버핏과 같은 양식 있는 부자들이 상속세를 낮추지 못하게 하는 등 부자들을 위한 정책에 적극 반대하고 있습니다. 빈부의 격차가 자본주의 정신을 잠식하기 때문에 부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조금씩 양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부자들과 그 부자들에게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있는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침몰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자신들을 더욱 부자로 만들어 줄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우리나라에는 미국과 같은 양식 있는 부자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정몽준과 같은 부자들이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제 와서 정책을 바꾸게 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 보입니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습니다. 남은 임기 동안 이명박 정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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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미국 대선에 대한 시각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Barack H. Obama, 1961~)라는 무명의 흑인 상원의원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을 두고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조지 부시(George W. Bush, 1946~) 대통령의 정책실패가 그 원인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부시는 정치, 경제, 사회면에서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피폐하게 만들었고, 세계인들이 서로 유지하고 있던 연결고리마저 끊어지게 했습니다. 나아가 전세계인이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황폐해졌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부시가 자신에게 붙어있던 권력의 참을 수 없는 유혹 앞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숙주에 붙어 있는 기생충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권력은 아주 미묘해서 인간이 권력의 맛을 한번 보면, 그 맛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 권력을 사용하고 싶어지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권력에 의지하게 됩니다. 권력에 서서히 중독되는 것입니다.

     

    부시는 권력의 맛을 알았고, 그 맛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권력의 불장난이 주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권력의 사용이 반드시 부작용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이해했을 때는 이미 버스가 지나간 다음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기생충은 숙주를 버리고 다시 다른 숙주를 찾아 떠납니다. 이번 미국의 대선은 그렇게 된 것입니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권력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알아보겠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권력을 사회적 관계에서 저항을 누르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모든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실현시키는 힘을 권력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래서 타인이 저항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마음에서 순복하는 경우에는 권력이 필요 없게 됩니다. 권력이란 폭력 또는 물리적 강제력(Gewalt)과 동의어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권력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권력은 그 자체로 사악합니다. 이것은 인류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권력은 반드시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붙어 있고, 그 사람은 그 권력을 자신의 입장에서만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그 화려했던 왕조들의 멸망을 보면, 절대권력을 누렸던 왕들이 나타난 후에는 반드시 패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권력은 사악한 유혹인데, 이 유혹에 넘어가면 절대로 헤어날 수 없게 됩니다.

     

    권력의 사악한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

     

    봉건사회를 넘어 근대로 들어오면서도 권력의 사악한 유혹에 무릎을 꿇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입니다. 그리고 스탈린(Joseph Stalin, 1878~1953)과 그의 추종자들이었습니다. 최근 들어 부시와 그의 추종자들인 네오콘도 자신들에게 붙어있던 권력을 사용함으로써 패배의 운명을 재촉했습니다. 뭔가 잘못됐음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가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선택에 대해서는 인륜적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권력을 사용하는 것이 본인뿐만 아니라 불특정다수인에게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그러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먼저, 조직이 나아갈 목적지(end state)와 원하는 상태(desired state)를 비전/목적/방향으로 합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구성원들과 마음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전이 있기 때문에 이것도 또한 어렵지 않습니다. 연결되어 있는 마음(connectedness), 이것이 조직을 리드하는 기본 바탕입니다. 일단 연결되고 나면, 구성원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스스로 선택하고 협력해 나가도록 이끄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훈련이 어느 정도 되어야 가능합니다. 어려서부터 이런 훈련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되지만, 우리 교육현실은 이것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성인이 돼서야 겨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합니다. 성인이 됐다 하더라도 훈련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훈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설사 느끼더라도 훈련이 귀찮거나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의구심 때문에 훈련 받기를 포기하고, 가장 손쉬운 권력을 사용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부하들이 하도록 명령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뭔가 되는 것 같을지 모르지만, 권력을 사용해서는 조직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권력을 사용하지 않은 위대한 인물들

     

    위대한 지도자들은 권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지도자들을 보세요. 인도의 모한다스 간디(Mohandas Gandhi, 1869~1948)는 권력사용 대신 물레질을 했습니다. 물레질이라는 상징을 통해 수억의 인도인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가 발휘한 영혼의 능력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서 간디를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Mahatma)라고 부릅니다.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1918~)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감옥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화해와 진실위원회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포용했습니다. 포용하는 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영혼의 울림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바마가, 그럴 리 없겠지만, 부시처럼 권력을 휘두른다면, 미국은 더 큰 재앙에 직면할 것으로 봅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 동안 권력의 맛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권력을 행사할수록 저항이 심해진다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에서도 언급했지만 그의 성공여부는 권력의 맛을 빼느냐 못 빼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기업경영에서도 가능하다

     

    이제 기업경영 현실로 돌아와 봅시다. 권력사용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에서도 권력사용의 폐해가 극심합니다. 도산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경영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맘껏 사용했던 기업들입니다. 어렵게 기업을 일으켰던 기업가들이 나중에는 권력의 유혹에 넘어가는 바람에 기업을 도산시킨 예는 한둘이 아닙니다. 관련된 분들의 명예 때문에 여기서 일일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조직구성원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기보다는 자신에게 기생충처럼 붙어있는 권력을 의지했습니다. 경영자들은 권력의 사악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것은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이라야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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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이명박 후보가 수많은 의혹과 시시비비를 뒤로 한 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것은 서민 경제의 활성화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큰 기대에 초를 칠 생각은 없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입니다.

    진보적 색채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개혁적 의욕이 앞서는 바람에 종종 인간의 본능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욕망의 구조를 무시합니다. 그 댓가를 이번 대선에서 톡톡히 치렀습니다. 자본은 본능적 욕망의 구조를 가장 잘 파악합니다.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은 자본과 인간의 욕망구조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장을 적절히 활용하지 않은 개혁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볼셰비키 혁명으로부터 20세기의 수많은 공산주의 혁명이 자본과 인간의 욕망구조를 무시했기 때문에 실패로 끝났습니다.

    보수적인 색채를 띤 사람들은 시장의 원리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통해 기득권을 쟁취하는 법을 터득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의 욕망구조를 무시하지 않는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할 것입니다. 여기에 자본은 냄새를 맡게 됩니. 자본의 맛을 안 사람들은 도저히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자본이란 마약과 같습니다. 마약을 잘 쓰면 약이 되지만, 그것에 탐닉하면 독이 됩니다. 자본에 내재하는 부패와 비리의 속성은 카지노의 잭팟만큼이나 짜릿짜릿한 쾌감을 안겨줍니다. 이 쾌감에 일단 도취되면 그것을 끊을래야 끊을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학습된 무능력상태(learned helplessness)에 빠집니다. 수십년간 보수정권이 남긴 유산은 부패와 무능이었습니다. 외환위기는 그래서 온 것입니다. 국민이 보수정권에 신물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수도승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진보진영은 이 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욕망구조에 소구하는 시장메커니즘을 결코 무시해선 안 됩니다. 안희정은 폐족이라는 말까지 사용하고 있으나, 진보진영은 일시적 패배에 자학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와 아주 비슷한 현대사를 경험했던 독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제2차 대전 이후에 보수적인 기민당(콘라트 아데나워)의 장기집권을 무너뜨리고 진보적인 사민당(빌리 브란트) 정부가 들어서서 동서화해 무드를 조성했습니다. 간첩사건 등 정치적 이슈 때문에 다시 기민당 정부(헬무트 콜)로 넘어 가서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통일 이후에 사민당(게하르트 슈뢰더) 정부가 개혁을 시도했고, 지금은 다시 기민당(앙겔라 메르켈)이 정부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비행기와 새가 비상하려면 좌우의 날개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정부나 국가의 발전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자본이라는 마약 앞에 무기력해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보수진영으로서의 이명박 정부는 이 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시장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지만, 수도승처럼 자본의 유혹과 부패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뿐입니다.

    첫째, 공정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국민적 합의하에 매력적인 국가비전을 세우고 그것을 향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떡고물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논공행상 논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합니다. 인사에서 가장 공정한 방식은 역량중심(competency-based)의 선발과 배치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투명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업무처리의 불투명성이 많은 의혹을 일으킵니다. 의혹과 부패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길은 투명성을 높이는 길밖에 없습니다.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검찰도 특검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셋째, 효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아무리 공정하고 투명해도 비효율적으로 돼서는 안 됩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되, 적은 비용으로 해내야 합니다. 사실 효율성은 투명성과 공정성으로부터 선순환하는 구조로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올라갑니다.

    만약, 이 세 가지 원리를 잘 지켜내면 서구 선진국 이상의 부강한 복지국가가 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지켜낼 수 있는 구체적인 시스템은 성과관리시스템(performance management system)와 역량관리시스템(competency management system)을 구축하여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어줍잖게 시도했는데 제도를 올바로 구축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공직자들 스스로 자신이 맡고 있는 직무의 존재목적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이것이 그 원인입니다. 이명박 정부 역시 이 세가지 원리가 어느 하나라도 구부러지거나 흠결이 생기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신뢰를 잃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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