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인재란 무엇이고, 그런 인재를 양육할 수 있을까요?

<요약> 인재는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드러내게 되어있습니다. 인재는 인위적으로 양육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은 돈을 쏟아 부어 만들어진 인공물이 아닙니다. 인재는 어떤 사람의 아이디어에 의해 인위적인 프로그램으로 생산되지 않습니다. 영혼의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인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신의 위치에 올라선 사람입니다. 위험한 생각이지요.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인재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과를 높이 내지 못해서 인재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면, 그는 인사배치가 잘못 되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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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인재를 설명하면서, 성경의 달란트 비유(마태복음 25 14~30)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달란트는 고대 중동지방의 화폐단위였지만, 그것이 재능이라는 뜻으로 변했다가 오늘날에는 자신의 재능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이 달란트 비유에 대해 타고난 재능을 잘 발휘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개신교 노동윤리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재(人材)라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마태복음 25장에 나온 예수의 비유를 차분히 읽어보겠습니다.

 

  1. "하늘 나라는 또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먼 길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었다.
  2.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돈 다섯 달란트를 주고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3.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4.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5.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가서 그 돈을 땅에 묻어두었다.
  6. 얼마 뒤에 주인이 와서 그 종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7.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주인님, 주인께서 저에게 다섯 달란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잘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하고 말하였다.
  2. 그 다음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와서 '주인님, 두 달란트를 저에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 그래서 주인은 그에게도 '잘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하고 말하였다.
  2.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와서 '주인님, 저는 주인께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무서운 분이신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3.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저는 주인님의 돈을 가지고 가서 땅에 묻어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그 돈이 그대로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 그러자 주인은 그 종에게 호통을 쳤다. '너야말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인 줄로 알고 있었다면
  2. 내 돈을 돈 쓸 사람에게 꾸어주었다가 내가 돌아올 때에 그 돈에 이자를 붙여서 돌려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
  3. 여봐라, 저 자에게서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4.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5.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쫓아라. 거기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이 비유를 읽고 얻은 첫인상이 어떻습니까? 처음 성경을 배울 때는 잘 몰랐는데, 철 들고 나서 이 비유를 음미할수록 너무 무자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한 달란트밖에 없는 사람에게서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사람에게 주는 행태는 빈익빈 부익부를 조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의 달란트 비유는 심오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재능의 크기에 차이가 있지만, 누구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큰 재능이든 작은 재능이든, 수학재능이든 음악재능이든 상관없이, 어떤 재능이든 연마해서 남김없이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달란트 비유의 핵심이었습니다.

성과가 적은 사람에게 적게 보상하고, 성과가 큰 사람에게 많이 보상하라는 취지의 비유가 아니었습니다. 루터의 해석은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신이 주신 재능(달란트)을 크든 적든 연마하여 남김 없이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실패할 것을 염려하지 말고, 결과는 상관하지 말고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엄격한 사람이라서 장사하다가 실패하면 그 하나마저 잃어버릴까 두려워서 땅 속에 묻어 두었다고 변명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호된 꾸지람과 가혹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썩힌 것에 대한 징벌이었습니다. 이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재능을 연마하여 활용하라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혹독한 벌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나는 크게 두 가지 시사점을 생각했습니다.

 

첫째, 사회적으로 실패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도 실패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패할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합니다. 왕창 실패해도 다시 재기하는 데 장애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사회적으로 한번 실패하면 어떻게 되나요? 큰일 납니다. 회사생활에서 실패하거나 실수하면 찍힐 뿐만 아니라 한직으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선배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봤기 때문에 조직의 쓴맛을 간접적으로 체험합니다. 적당히 중간만 가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재능을 갈고 닦으려는 의지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창의성도 발휘하기 어렵죠.

 

이런 상황에서 적은 재능이라도 맘껏 연마하고 잘 발휘하라고? 불가능한 얘깁니다. 어린 아이들이 걸음마를 뗄 때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걷는 것을 배웁니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과정이 마찬가지입니다. 실패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덴마크의 사례>를 예를 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 아무리 재능이 적더라도 아예 포기하지 않도록 길을 터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재능의 크기를 서로 비교합니다. 학교성적을 비교해서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는 차별합니다. 재능은 학교 점수와 상관 없는 데도 말이죠. 점수가 낮은 사람은 자신이 무능하다고 생각해버립니다. 그리곤 포기합니다. 부자와 행복, 성공과 위대함은 학교성적과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점수로 비교합니다. 그래서 재능이 적다고 여겨진 사람들은 재능연마에 소홀하기 쉽습니다. 그리곤 환경 탓 하거나 찰라적 쾌락에 탐닉하게 됩니다. 나아가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울지도 모릅니다.

 

재능의 크기에 상관없이 누구나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연마하고 활용할 의지가 있다면 누구나 인재(人材)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일에서 성과를 적게 내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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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우리가 매일 접하는 경영환경은 <3층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즉 표층구조의 제도, 맥락구조의 의식, 심층구조의 무의식은 다음과 같은 6개의 경영개념들에 의해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지게 됩니다.

 

     비전 : 조직의 존재목적 또는 이념

     전략 : 비전/목적/방향을 실현하는 비즈니스 계획

     조직 : 전략을 실행해가는 수단

     성과 : 비전/목적/방향으로 가는 구제적인 목표들

     역량 :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차별적인 능력

     인사 : 채용 보상 등 여타 개념들의 종합적 관리

 

이러한 6개의 경영개념 하나 하나뿐만 아니라 서로간의 조화가 곧 조직을 고성과문화(High Performance Culture)로 진보시키느냐 아니냐를 결정합니다. 조직운영을 고성과를 창출하는 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각각의 개념들을 구성하고, 그 개념들간의 적합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어서 이 개념들 하나하나를 간단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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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마음이란 무엇인가(1)_마음에의 관심
          마음이란 무엇인가(2)_마음과 몸은 하나, 그 경험적 증거
          마음이란 무엇인가(3)_무의식적 마음의 위력
          마음이란 무엇인가(4)_心身의 일체성
          마음이란 무엇인가(5)_영혼과 마음의 지향성
          마음이란 무엇인가(6)_뇌와 마음, 그리고 실존과 경영
          마음이란 무엇인가(7)_마음이해의 전제


마음을 이해하는 4가지 전제는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전제를 잘 살펴보면 조직 내의 인간사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결국 마음으로 귀결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작용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서 인간의 실존성은 선택을 전제로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의 선택은 무한히 열려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고통과 불행으로 나가기도 하고, 성공과 행복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그 선택의 메커니즘, 즉 마음의 작용원리를 간단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은 다음과 같이 삼층구조의 삼겹살로 되어 있습니다. 이 삼겹살이 정보와 에너지의 여과장치 구실을 합니다. 이 삼겹살이 그림에서는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상호유기적인 여과장치처럼 작동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항상 현재상태보다 더 나은 바람직한 상태(desired state)를 상상해 냅니다. 그래서 현재와 미래에는 항상 갭(gap)이 생깁니다. 이 갭을 메우려는 욕망은 항상 현재에서 미래로 성장해가려는 지향적 의지를 생성해냅니다. 이것을 심리학자들은 방향적 경향성(directional tendency)이라고 말하고, 철학자들은 지향성(志向性, intentionality)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논의에 대해서는 김재권 교수가 쓴 "심리철학"[Philosophy of Mind], 하종호 김선희 옮김, 철학과현실사 1997을 참조하세요.)

 

현재상태에 있는 욕망이 원하는 상태로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현실의 표층구조를 살펴야 합니다. 여기서 표층구조란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절차들로 이루어진 제도적 장치를 말합니다. 욕망이 표층구조에 부딪치게 되면 대개의 경우 마음에는 몇 가지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 표층구조의 제도적 장치와 싸울 것인가 아니면 피할 것인가(fight or flight)에 대한 반응입니다. 제도적 장치들은 대개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싸울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도망갈 것입니다. 여기서 도망간다는 말은 그 조직을 떠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반응은 아마도 싸우거나 도망가는 방식보다는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을 볼 것입니다. 의식만으로는 제도적 관행과 명령을 따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경우 100퍼센트 따르거나 100퍼센트 거부하기보다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욕망을 조절하고 관망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상태를 구현하는 욕망이 일차적으로 조직과 그 조직에서 조건화된 제도들, 표층구조를 통과하면서 어느 정도 변형됩니다. 이렇게 표층구조에 부딪혀 비틀린 욕망은 의식의 맥락적 구조에 의해 싸울 것인지 피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긴장상태를 유지합니다.

 

이제 의식으로 대변되는 맥락구조를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맥락구조는 한편으로는 표층구조의 압력을 견뎌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의식의 심층구조에서 솟아 오르는 영혼의 속삭임도 따라야 하는 딜레마에 놓입니다. 표층구조와 심층구조는 대개의 경우 이율배반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에 그 압력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맥락구조는 견디다 못해 몸의 세포들이, 특히 면역체계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것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고 심하면 병적 증상이 확대됩니다.

 

표층구조에서 받는 메시지는 소유와 경쟁, 욕망의 지수적 상승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화된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도록 강요합니다. 남들보다 더 유능하게 보이도록 경쟁적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끝없는 욕망의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 채 위만 보고 올라가야 합니다.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서서 있으면 안 되고 걷거나 뛰어서 올라가야 합니다. 여기서 의식은 숨차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심층구조는 일반적으로 표층구조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욕망입니다. 마음의 평화와 잠재력의 발현을 요구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기보다는 그들과 연결되어 있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더 잘 되기를 원합니다. 물가에서 노는 어린 아기가 위험해 보여서 혹시나 빠지지 않을까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사랑의 리퀘스트를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게 만듭니다.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찾게 합니다.

 

만약에 맥락구조가 심층구조를 보다 더 투명하게 보고 이해할 수 있다면, 심층구조의 미세한 요구에도 맥락구조가 쉽게 응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심층구조인 무의식(잠재의식)을 잘 활용하는 방법과 기술을 익히면 마음의 평안과 행복뿐만 아니라 기대 이상의 성취감과 그에 따르는 경제적 성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원하는 상태(desired state)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마음은 의식적인 마음(conscious mind)과 무의식적 마음(unconscious mind)으로 구분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의식적인 마음보다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에 더욱 영향을 받고 있지만, 무의식(잠재의식)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깊지 않습니다. 그래서 표층구조나 의식의 맥락적 차원에만 경영의 기술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이것이 구성원들을 고통스럽게 만들며 병적 증상을 일으키는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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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마음이란 무엇인가(1)_마음에의 관심
          마음이란 무엇인가(2)_마음과 몸은 하나, 그 경험적 증거
          마음이란 무엇인가(3)_무의식적 마음의 위력
          마음이란 무엇인가(4)_心身의 일체성
          마음이란 무엇인가(5)_영혼과 마음의 지향성
          마음이란 무엇인가(6)_뇌와 마음, 그리고 실존과 경영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이해를 위한 기본전제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나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정리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은 자신이 원하는 데로 가게 하는 지도(map) 또는 내비게이터(navigator)와 같다.

     인간의 행동에는 긍정적인 의도가 숨어있다.

     인간은 자신이 직면한 이슈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첫째, 모든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합니다. 누구에게나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자유란 단순히 헌법이 보장하는 타율적인 인권으로서의 자유를 넘어서 초월적인 상상을 가능케 하는 자유도 포함됩니다. 그런 자유를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어떤 이는 오디오를 조립하고, 어떤 이는 배낭여행을 떠납니다. 해병대 34일 병영체험을 하는 이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책을 쓰고, 다른 이는 시험공부를 합니다. 이런 선택의 결과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책임입니다. 누구도 타율적으로 강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자유와 선택과 책임은 누구에게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적 속성입니다. 이 속성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마음 속에서 아무런 타인의 통제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하여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실행해 가고 있을 뿐입니다.

 

둘째, 마음은 자신이 원하는 데로 가게 하는 지도 또는 내비게이터와 같습니다. 여기서 한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상당히 교양 있어 보이는 분을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좋은 직장에서 중견간부로 일하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아들을 둘 두었는데, 작은 아들 때문에 상담을 왔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이 여자 친구와 집을 나가서 며칠씩 들어오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는 선생님한테 욕하면서 폭력을 행사해서 정학처분을 몇 번 받았고, 그럴 때마다 학교에 불려가서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전문심리상담소에 아들을 보내서 상담을 받아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답니다. 내가 아들을 상담해서 정상인으로 만들어 줬으면 하는 부탁이었습니다. 큰 아들은 특목고를 졸업해서 세칭 일류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말해 주었습니다. 부모로서 볼 때, 큰 아들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둘째가 큰 문제라는 겁니다. 상담 내내 그 분은 둘째 아들의 문제만을 생각했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기면 방에 들어가 이불을 칼로 찢고, 때로는 자해행위를 하려고 한다면서 어쩌면 좋겠냐고…… 자기는 더 이상 아들을 통제할 수 없겠노라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가 상담하는 과정에서 아들 문제가 아니라 바로 그 부모가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형과 동생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동생에게는 형처럼 하지 못하면 큰일 난다는 식으로 닦달해왔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동생에게는 큰 일이 났습니다. 그 일이 부모 자신에게도 닥친 것입니다. 학교에서 교사를 패고, 여자 친구와 집을 나가고……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마음의 상태는 그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이렇게 마음의 상태는 다른 사람에게 깊숙이 전달되어 그 정보의 내용대로 에너지가 현실을 만들어 갑니다.

 

내가 그의 아들을 상담했을 때, 그는 자기 마음을 스스로 잘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부모의 의도에 저항함으로써 공부와 성적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부모는 아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가짐이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아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그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들의 잠재력과 재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신뢰의 결핍이 아들에게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그대로 되돌아 왔습니다. 마음은 주인이 원하는 데로 가게 하는 내비게이터와 같습니다.

 

셋째, 인간의 행동의 이면에는 반드시 긍정적 의도가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아들은 똑똑한 형과의 비교에서 살아 남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무의식적인 마음의 프로그램이 작동하여 시험 보는 날에는 배가 아프고 설사가 나고, 두통에 감기기운까지 생겼습니다. 시험성적에 대한 압력을 온 몸의 세포들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체적 증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증상들이 공부와 성적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신을 벗어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의 일탈적 행위에는 부모의 압력으로부터 자신을 벗어나게 하는 긍정적 의도가 숨어 있었습니다.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육교를 건너지 못하는 멀쩡한 여학생을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 여학생은 아파트에서는 높은 곳에 사는 데 별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육교만큼은 도저히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상담하는 과정에서 원인을 알게 되었는데, 유치원 다닐 때 정글짐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었습니다. 당시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집안 식구들도 잘 모르는 일인데, 그 정글짐 사건은 그녀의 무의식 속에 아주 크게 부각되었던 모양입니다. 높은 곳에 걸어서 올라가면 다리에 힘이 빠져서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되는 현상이 그래서 생겼습니다. 높은 곳에 걸어 올라가면 떨어져서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것이 무의식에는 강하게 기억되어 있었습니다. 그녀 자신은 어렸을 때의 정글짐 기억이 육교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몰랐지만, 정글짐 사건이 무의식에서 그렇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육교를 건너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무의식은 자신을 위험 또는 공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무의식적 마음에 영향을 받는 이상행동의 이면에는 긍정적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넷째, 모든 인간은 자신이 직면한 이슈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끔 인기가 하락하거나 하락을 걱정한 연예인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마음은 자신이 겪는 현실을 뇌 속에 실재(reality)라는 이미지로 그려냅니다. 말하자면, 환상을 만들어 낸다는 말입니다. 환상에 갇혀서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인기가 떨어졌다는 것이 사실이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도 실패만 계속되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다른 희망이 없다고 믿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자살에 성공합니다. 인기하락도, 노력의 실패도, 희망이 없다는 믿음도 자신이 지어낸 환상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실패란 없습니다. 절망도 없습니다. 실패라는 생각과 절망이라는 감정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에서 교훈을 얻으면 됩니다. 절망은 자원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 앞에 닥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무한한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사에 교훈을 얻어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 있는 자세를 갖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삶을 실천하면 반드시 성공적이고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러한 네 가지 기본전제란 건축물의 초석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초석이 없이는 건물을 세울 수 없는 것처럼 전제 없이는 이론도 성립할 수 없습니다. 전제가 무너지거나 부실하면 이론도 쓸모 없어집니다. 그래서 기본전제를 바르게 세우고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마음을 사로잡은 경영의 큰 틀을 구상할 수 있습니다. 이 기본전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제도를 설계하는 것은 마치 몸의 사이즈도 재지 않은 채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와 같습니다.

 

나는 기업에서 실무를 하면서 몸이 옷에 맞지 않는다고 종업원들을 다그치는 경영자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부하들이 무능해서 문제인데 더 유능한 사람들을 뽑아야 한다고 말하는 경영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직무적합성 측면에서 보면, 잘못 배치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경영자들의 생각이 전혀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서 제시하는 전제 위에 제도를 설계하지 않으면, 조직구성원들은 심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최소한 해고되지 않을 정도에서 적당히 일하는 척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전제를 무시한 채 조직을 설계하고 제도를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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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마음이란 무엇인가(1)_마음에의 관심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길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 문헌을 통해 몸과 마음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나의 지식을 실무에 전혀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길버트 라일이 지적한 대로 사실을 아는 것(knowing that)과 방법을 아는 것(knowing how)의 차이에서 오는 불완전한 이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길버트 라일(Gilbert Ryle), 이한우 옮김, 『마음의 개념』(The Concept of Mind), 문예출판사 1994, 34~39쪽 참조.) 그러나, 나는 결정적인 체험을 통해서 비로소 확신하게 되었고 실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나의 체험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나는 실무에서 일할 때 많은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습니다. 아내가 나에게 늘 지적하듯이, 아마도 완벽을 지향하는 나의 이상주의적 기질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내 몸에 자연스럽게 병이 생겼습니다. 위산역류 증상이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처방한 약을 먹으면 조금 좋아져서 그냥 견딜만 했습니다. 만성적인 증세여서 평생 그런 대로 살아가면 되는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증상은 점점 심해졌고, 또 다른 증상도 생겨나서 실무를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대가 부어 강의를 한 시간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강의는 고사하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정신력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갔습니다.

 

급기야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지병들 때문이 아니라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가슴에 통증이 생겨 밤새도록 끙끙 앓다가 회사에 겨우 출근했습니다. 회사의 건강검진센터를 맡고 있는 담당의사를 불러 자초지정을 얘기했더니, 가슴을 보자고 했습니다. 그는 보자마자 대상포진인 것 같다고, 병원에 일주일 입원하면 낫는 병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날로 입원수속을 밟았습니다. 병명은 왼쪽 가슴팍에 생긴 대상포진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습니다. 통증이 하도 심해 갈비뼈가 부서져 내린 줄 알았습니다. 골프스윙을 잘못해서 갈비뼈에 금이 갔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특별한 사고가 없었는데도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은 고통은 처음 겪었습니다. 통증이 심했지만 수술을 하는 병은 아니었습니다. 담당의사는 면역력이 떨어지면 몸에 있던 바이러스가 신경다발을 통해 준동하면서 발생하는 질병이라고 합니다.

 

일주일간의 입원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몸은 왜 아픈가? 나에게 오래 전부터 따라다니던 만성적인 질환은 또 뭔가? 그냥 참고 지내야 하는가? 건강해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음식조절과 운동?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몸이 나 자신에게 뭔가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퇴원 후에 다시 질병과 마음에 관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방면에 무수히 많은 문헌들이 쏟아져 나왔음을 알았습니다. 유학시절에 배운 사회심리학이나 조직심리학으로 풀 수 있는 간단한 문제들이 아니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문헌들은, 통증을 완화시키는 실용적인 처방에서부터 영적인 치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마음과 몸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뜰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해 주었습니다.

 

마음으로 몸을 다스려라, 허버트 벤슨

과학 명상법, 허버트 벤슨

마음이 지닌 치유의 힘, 조안 보리센코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매튜 버드

마음챙김 명상과 자기치유, 존 카밧진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존 카밧진

영혼의 하드웨어인 뇌 치유하기, 다니엘 에이멘

마음을 과학한다, 카렌 샤노어

마음의 의학, 칼 사이몬톤

TMS통증치료혁명, 존 사노

통증혁명, 존 사노

마음의 기적, 디팩 초프라

 

이 밖에도 여러 문헌들을 읽으면서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마음과 몸의 관계를 동양사상과 연계시키면서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하려는 것도 있었습니다. 나는 체질상 신비주의적인 해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의학의 신통한 처방이라는 것도 별로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얻은 깨달음은 인간이 무엇을 본다는 것은 동시에 무엇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실이나 현상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말은 그런 의미 이외의 다른 것에는 눈을 감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항상 어느 하나만을 보면서, 그것이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본 것과 경험한 것 범위 내에서 세계를 해석하게 됩니다. 우리는 세계의 가능성과 다양성에 자신의 마음을 열어 놓은 상태인 <깨어있는 마음>으로 세계와 대면하지 못합니다. 경험의 테두리에서 어느 하나로 굳어있는 마음으로 세계를 보게 됩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내 마음은 세계를 깨어있는 마음으로 보지 못했고 내 얄팍한 의지로 세상을 통제하려 했기 때문에 결국은 내 몸에 여러 증상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마음은 뇌를 지배하고, 뇌는 몸을 통제합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으면서 신변을 정리했습니다. 30년간의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말하자면, 2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마음에 확신이 서자 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상담할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놀라운 기쁨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몸은 마음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이론으로도 경험으로도 확실해졌습니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고,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건강하게 훈련하면 할수록 몸도 건강하고 튼튼해집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뇌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뇌가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해집니다. 뇌의 작용메커니즘을 잘 이해하는 것이 마음과 몸의 연관성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몸은 육체이고 마음은 정신이기 때문에, 그 둘은 서로 연관성이 있긴 하지만, 접근방식은 완전히 다르다고 배웠고 지금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몸은 자연과학의 대상이고 정신은 인문과학의 대상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몸과 정신의 이원론이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나, 나의 체험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실무에서 퇴임한 후 몇 달 만에 특별한 조치도 없었는데 몸은 완전할 정도로 회복되었습니다. 거의 십 수 년을 만성병이라고 생각하며 지니고 다니던 위산역류증세도 깨끗이 없어졌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위산역류가 심해서 후두의 성대까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노래는 물론이려니와 강의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나는 그래서 직원들과 노래방에 가는 것을 제일 싫어했습니다. 목이 금방 쉬기 때문에 말도 오래 할 수 없었습니다. 약을 먹으면 조금 좋아지지만, 그 때뿐이었습니다. 그 약의 성분상 평생을 두고 지속적으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일정기간 이상 복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성대에는 조그만 물혹(폴립)까지도 생겼습니다.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 좋다고 해서, 잠잘 때 머리부위를 높이고, 식사도 저녁 6시 이전에 가볍게 먹는 방식으로 조절했습니다. 생활 자체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지만 완쾌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퇴임 후 몇 달이 지나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위산역류와 기타 소소한 증세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요즘은 하루 종일 강의를 해도 목이 쉬지 않습니다. 이제서야 나는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로 작동한다는 것을 몸으로 이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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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조직이란 무엇인가(1)_조직의 일반적 정의
             조직이란 무엇인가(2)_제1세대 경영학
             조직이란 무엇인가(3)_제2세대 경영학
             조직이란 무엇인가(4)_조직의 목적은 고객창조인가
             조직이란 무엇인가(5)_제3세대 경영학(Wholism)
             조직이란 무엇인가(6)_연결되어 있음(connectedness)


어떻게 하면, 3세대의 조직설계가 가능할까요? 이것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 강좌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경영을 위해서는 제3세대의 조직설계에 관한 기초적인 개념체계를 논의하고, 실무적으로 도움이 되는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앞서 영혼의 능력이란 바로 자신에게 내재된 정보와 에너지가 어떤 것인지를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에서 가장 깊은 심연으로부터 솟아납니다. 하지만 대부분 무의식(잠재의식)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러한 영혼의 능력을 관리 가능한 방식으로 정리한 것이 역량개념입니다. 역량개념은 경영관리, 특히 인사부문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여서 나중에 별도의 강의를 계획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간단히 주의할 점만 언급하려고 합니다.

 

역량(competence)개념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잠재력을 부분적으로 쪼개서 분석해보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개인의 직무적합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고안된 개념입니다. 이러한 연구의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면 20세기 초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장교선발에서부터 나치 친위대를 뽑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선발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활용되었습니다.(Christof Oberman, Assessment Center – Entwicklung, Durchführung, Trends, Gabler 2002, 23~24쪽 참조.)

 

그러나, 이 개념이 실무에 일반적으로 소개된 시기는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특히 역량(competence)이라는 용어 자체는 심리학자 데이빗 맥클레란드(David McClelland, 1917~1998) 교수에 의해 70년대에 생성되었습니다.(David McClelland, Testing for Competence rather than for “Intelligence”, American Psychologist(1973), 28, 1~44쪽 참조.) 아직 학계와 실무계에서 뚜렷하게 드러난 이론은 없고 다양한 개념들만 산만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다만 일부 산업계에서 역량개념을 이용한 선발을 통해 효과가 검증된 경우들이 보고되고 있을 뿐입니다.(라일 스펜서(Lyle M. Spencer) , 『핵심역량모델의 개발과 활용(Competence at Work), PSI컨설팅 1998 참조.)

 

일부 컨설팅회사나 컨설턴트들이 역량개념이 비즈니스가 되니까 너도나도 역량모형이니 역량평가니 하면서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데, 사실 기존의 개념들에다 역량이라는 이름만 붙여서 컨설팅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인사실무자들은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줄 알고 기대했다가 곧바로 실망합니다. 최근에는 역량모델과 역량평가를 각종 계량모델로 돌려서 만들어내는 방식을 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역량개념도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 공산이 큽니다.

 

역량개념을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이나 분석심리학에서 인지심리학에 이르는 심리학과 뇌과학의 깊은 뿌리를 잘 이해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역량은 건조하고 차가운 분석개념이 아니라 직무적합성 측면에서 한 인간의 영혼의 능력과 잠재력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역량모델, 역량진단, 역량개발 등으로 시스템화 한 것이 바로 역량관리시스템(Competency Management System)입니다. 이것 역시 조직구성원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수단입니다.

 

조직의 경영이 역량관리시스템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성과관리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조직의 안정적이고도 지속적인 성장은 성과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성과책임을 규명하고, 그 성과를 진단하여 피드백(feedback)과 동시에 피드퍼워드(feedforward)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보상도 적절히 해야 합니다. 이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규정화 해 놓은 것이 바로 성과관리시스템(Performance Management System)입니다.

 

성과관리시스템과 역량관리시스템의 설계는 뒤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므로, 여기서는 조직은 조직구성원이 각자 영혼의 능력을 잘 발휘하여 잠재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고, 그 결과물인 성과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만 강조하고자 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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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조직이란 무엇인가(1)_조직의 일반적 정의
             조직이란 무엇인가(2)_제1세대 경영학
             조직이란 무엇인가(3)_제2세대 경영학
             조직이란 무엇인가(4)_조직의 목적은 고객창조인가



나는 조직에 관한 기본적인 사상이 대전환의 기운을 서서히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3세대 경영학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제3세대 경영학에서는 조직과 경영관리를 홀로그램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조직을 하나의 홀로그래픽 시스템(holographic system)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개념은 조직의 한 요소인 조직구성원 개개인에게 조직전체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제2세대 경영학의 관점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조직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직구성원 개개인이 곧 조직의 전체라는 말입니다. 조직은 구성원의 집합이기도 하지만, 조직의 요소인 구성원이 곧 조직이기도 합니다. 이런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홀로그램(hologram)의 원리와 양자물리학의 기초적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홀로그램이란 고대그리스어 전체라는 뜻의 홀로스(holos)와 메시지라는 뜻의 그라마(gramma)가 합쳐진 말입니다. 1940년대 발견된 입체사진술을 홀로그래피(holography)라고 부른 데서 유래된 것인데, 홀로그램은 전체가 각각의 독립된 부분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하나라는 의미입니다.(홀로그램과 홀로그래피의 원리에 대한 쉬운 설명은 마이클 탤보트(Michael Talbot), 이균형 옮김, 『홀로그램 우주(Holographic Universe), 정신세계사 1999을 참조하세요.)

 

물론 나눌 수는 있겠지만, 나누어진 부분 속에 또다시 전체가 포함되어 있는 구조를 말합니다. 전체론(wholism)이라고나 할까요? 이러한 견해는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hm, 1917~1992) 교수에 의해 제시되었고, 신경생리학에서는 칼 프리브람(Karl Pribram, 1919~) 교수에 의해 발전되었습니다. 이 얘기는 다음 강의에서 조금 더 할 예정입니다.

 

홀로그램 이론이 가지는 조직이론적 의미는 조직을 하나의 전체로 보았을 때, 조직구성원 개개인도 동시에 조직 전체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기에 사과 하나가 있다고 칩시다. 나는 이 사과의 한 부분을 칼로 도려냅니다. 사과는 전체이고, 도려낸 조각은 부분입니다. 그러나 홀로그램 이론에 의하면, 떨어져 나온 조각이 곧 사과 전체의 특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전체는 부분으로 나누어지지만, 부분은 전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전체도 전체이고 부분도 전체인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조직구성원 개개인이 곧 자신이 속한 조직이라는 의미입니다.

 

상상이 잘 안 되는 사람을 위해,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한 가닥의 머리카락만 있어도 경찰은 범죄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낼 수 있지요. 머리카락에 범인 전체의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조직구성원 한 사람 속에, 그 사람의 직위가 높든 낮든 상관없이, 조직 전체의 정보와 에너지가 담겨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조직구성원 개개인이 조직전체의 정보와 에너지를 담고 있다고 했을 때, 조직은 어떤 원리에 의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양자물리학적 개념을 이해하면 쉽게 풀립니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입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두 개의 입자 중 하나를 떼어내어 무중력 상태의 우주 속으로 보내놓고, 하나를 변화시키면 다른 입자도 동시에 변화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두 개의 입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서로 뭔가에 의해 연결되어 있지 않고는 그런 결과를 가져올 수 없지요. 그래서 이것을 동시성(synchronicity)의 원리라고 합니다. 이 우주는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아도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것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발전시킨 분석심리학에서는 동시성이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이부영, 『분석심리학』, 일조각 1998, 313~323쪽을 참조하세요.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칼 구스타프 융의 개인적 삶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심각하게 돌아보게 합니다. 나는 융의 저작과 관련 문헌을 읽으면서 무의식적 마음이 인간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더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한 인간의 영혼의 깊이와 폭이 얼마나 깊고 넓을 수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융의 자서전, 조성기 옮김, 『기억, , 사상』, 김영사 2007과 융의 전기인 디어드리 베어, 정영목 옮김, 『융』, 열린책들 2008, 그리고 게르하르트 베어, 한미희 옮김, 『카를 융 생애와 학문』, 까치 1998도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좋은 문헌입니다. 특히 융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문헌은 이부영 교수의 『분석심리학』뿐만 아니라 이 교수의 3부작인 『그림자』, 한길사 1999, 『아니마와 아니무스』, 한길사 2001, 『자기와 자기실현』, 한길사 2002이 있습니다.)

 

사건들이 서로 시간, 공간, 인과의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일치를 나타낼 때 쓰는 용어입니다. 융은 이 동시성을 물질적 개념이나 형이상학이 아닌 인류의 보편적 경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흔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러한 비인과적 동시성(acausal synchronicity)을 자연계에서 가끔 발견합니다. 바닷속에서 수많은 물고기 떼가 동시에 방향을 틀면서도 서로서로 부딪치지 않는 것은 동시성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과학적으로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텔레파시 현상이나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옛말은 동시성이 작동한 것입니다. 이렇듯, 이 세계에는 인간이 발전시켜 온 지적 합리성 너머에 비합리적 질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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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조직이란 무엇인가(1)_조직의 일반적 정의
             조직이란 무엇인가(2)_제1세대 경영학


체스터 바나드 이후에 인간은 기계의 부속품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상이 서서히 나타나서 제2세대 경영학의 관점을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1909~2005)입니다. 그는 미국경영학에 또 하나의 큰 산맥을 만들었습니다. 1954년에 출간된 『경영의 실제』(The Practice of Management)라는 책은 조직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아야 한다는 사상이 담겨있습니다. 물론 당시에 드러커 자신이 조직은 유기체여야 한다고 주장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목표와 자율의 의한 관리”(Management by Objectives and Self-Control)로 발전하여 오늘날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오늘날 MbO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때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나라로 건너 오면서 목표관리라고 왜곡 번역되어, 목표를 정해주고 그 목표를 잘 관리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목표관리를 한다고 해서 보니까, 국장과 과장의 목표를 사전에 정해서 그것을 가지고 나중에 평가하는 것을 목표관리, MbO라고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자율은 없고 오직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기본 사상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이 편리한 방식으로 비틀어서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관료조직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습니다. 남들이 좋다는 것은 죄다 시늉을 내지만, 실상을 까보면 정말이지 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 셈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나는 한국은행에서 20년을 근무했습니다. 그래서 매년 국정감사도 받고, 가끔 감사원 감사도 받습니다. 그리고 재무부에서는 보안점검이라는 것도 나옵니다. 그리고 정보부, 보안사 등의 인사들도 들락거립니다. 수십 명의 기자단이 수시로 출입합니다. 한국은행은 그들 때문이라도 매년 조직운영의 합리화를 위한 계획을 세워서 실천해야 합니다. 연간사업계획을 보면, 매년 거의 똑 같은 말들이 되풀이됩니다. 효과성 제고, 효율성 향상, 경쟁력 강화, 생산성 신장, 조직유연성 확보 등과 같은 말을 써 왔습니다. 체스터 바나드가 정의한 효과성과 효율성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도 의심스럽지만, 만약 20년간 사업계획대로 되어 왔다면, 내가 한국은행을 떠날 때는 효율성과 생산성이 차고도 넘쳤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진단한 한국은행은 그 동안 추진해 왔던 사업계획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은행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조직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있던 때였습니다.

 

내가 한은을 떠나기 전 마지막 3년간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전철환 총재의 명을 받아 조직개혁 작업을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 전 총재는 사심 없이 한은을 위해 개혁하려고 했지만, 썩은 도끼자루를 새것으로 갈아 끼우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습니다. 한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보면 다들 유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당시 부총재보였던 이성태 총재뿐만 아니라 당시 총무국장이었던 이승일 부총재는 이코노미스트와 관리자로 성장한 분들이지만 조직문제에서도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고 한은이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그게 매우 이상했습니다.

 

당시 재무부를 포함한 중앙정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효율성이나 효과성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다 1997년 말에 드디어 국가부도위기를 맞았습니다. 관료와 공공기관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영혼의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내가 아주 답답하게 느꼈던 것은, 개별적으로 보면 다들 유능한 사람인데 조직으로 뭉치면 그 유능성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내가 그 당시 한국은행 직원들에게 그런 고민을 강의했었는데, 그 내용을 묶어서 출판한 것이 『똑똑한 자들의 멍청한 짓 한국 관료조직의 개혁을 위한 진단과 처방』이란 책이었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조직 속에 들어가면 흐리멍텅한 의사결정을 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상을 설명해 보고 싶었습니다.

 

조직에는 구성원들의 정신을 빼놓는 뭔가의 제도적 장치들이 유령처럼 작동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처음에 그것을 제도의 폭정 또는 제도적 폭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프로세스를 바꾸는 데 전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제도적 장치의 합리성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제도운영의 공정성, 구성원들간의 신뢰, 비전을 향한 열정, 정신과 정신의 교감 등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제도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공정해야 투명해지고, 거꾸로 투명해야 공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구성원들이 멍청한 짓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직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조직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제고하는 유일한 수단인데도 정부와 공공기관은 투명성은커녕 외환위기를 빌미로 자신들을 더욱 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예는 금융분야에서 일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얘기니까, 온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예를 하나만 더 들어보겠습니다. 교육부를 보겠습니다. 교육관료들은 교육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수십 년간 끊임없이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미궁에 빠지고 있습니다. 교육관료들이 정체성과 영혼의 능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이들 역시 형편없는 교육제도를 만들어낸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그 제도의 암묵적인 폭력에 쓰러진 피해자인지도 모릅니다. 이들도 개별적으로 보면, 대단히 유능한 사람들입니다. 안타깝게도 교육부라는 조직에 들어가서, 자기가 맡고 있는 직무의 존재목적을 잃어버렸을 뿐입니다.

 

내가 너무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구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드러커가 주장하는 제2세대 경영학의 기본사상만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했다면, 우리는 벌써 선진국이 되어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왜곡되지 않은 개념과 그 취지를 잘 이해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MbO의 기본사상은 근로현장에 인간의 자율성을 확보해 주어야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목표를 부여해서 쪼면 된다는 사상이 절대로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목표관리제도라고 해서 목표를 기록하고 상사와 부하가 합의하면 되는 그런 조잡한 사상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고유한 잠재력이 있고, 그 잠재력을 잘 발현할 수 있도록 스스로 통제해나가는 방식의 관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도 스스로 기획하고, 그 목표를 잘 달성했는지의 여부도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게 피터 드러커가 의도했던 MbO였습니다. 그래서 『경영의 실제』에서 보면 목표(Objective)라는 단어와 자기통제(Self-Control)라는 단어를 마치 한 단어처럼 사용했습니다. 자기통제가 가능할 때, 조직생활에서 오는 불안과 긴장으로부터, 조직이 부여하는 목표달성의 압박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의 잠재력을 발산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20세기 전반부에서는 테일러리즘에 의해 인간이 조직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으로 생각되던 것을, 드러커의 사상에 의해서 인간이 자기 스스로 자율적인 존재로 대접받게 되었고 조직운영의 주체로 해방된 셈입니다. 이윤은 기업의 존재목적이 아니며, 기업의 생존조건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피터 드러커를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워렌 버핏과 마찬가지로 CEO들의 높은 연봉에 대해 도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 짓이라고 비난했고 종업원의 평균연봉의 20배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이런 관행이 고쳐지지 않으면 우리는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월 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20세기 후반부의 경영학은 제2세대 경영학으로서 조직을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했습니다. 이런 사상을 나는 드러커리즘(Druckerism)이라고 부릅니다. 조직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외부환경의 정보와 에너지를 받아들여 조직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신진대사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율적 존재로서의 조직구성원은 조직전체의 유기적 부분으로서 전체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관리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조직의 지속성에 기여하는 인과관계를 중시했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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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지난달에 한국리더십센터의 7H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를 위한 강의겸 워크샵을 했습니다. 세븐해빗 퍼실리테이터(Seven Habit Facilitator)는 스티븐 코비 박사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 분들을 위한 연수코스에서 "마음과 경영"이라는 제목의 특강겸 워크샵을 했는데,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참석자들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서 수강생들끼리 서로 토론하게 하고, 그리고는 가장 잘 된 것을 발표시키고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하는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똑 같은 학습방법으로 그들에게 학습시키는 일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들은 이 일에 전문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강사가 소개되자 환호성을 올리면서 박수소리가 우뢰와 같았습니다. 인순이나 조용남 수준을 기대하는 것 아닌가 잠시 생각했습니다. 나는 엔터테인먼트에 재주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나는 여러분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해주기 보다는 영혼을 즐겁게 해 주려고 합니다.”라고 시작했습니다.

 

내 메시지는 간단했습니다.

 

첫째, 마음은 실재(reality)를 만들어 냅니다. 실재란 공간(Space), 시간(Time), 물질-정보(Matter-Information), 에너지(Energy)로 구성된 환상(illusion)에 불과합니다.

 

둘째, 우리는 실재를 구성할 때, 마음에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고 측정하여 언어의 형태로서 실재(reality)를 만들어냅니다.

 

이 메시지는 결국 인간의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뇌세포들의 연결망(neural wiring)에 그려진 이미지가 곧 비전(vision)이고 이것이 마음의 상태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거나 코칭하거나 상담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뇌가 항상 새로운 신경망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보다 강의가 약간 길어지는 바람에 많은 질문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끝나고 나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하는 바람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잘 모를 정도였습니다. 많은 참가자들이 학생 때 배운 철학을 다시 되새길 수 있어서 좋았다는 소감을 얘기해 주셨고,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영혼의 능력과 마음의 특성을 확연히 이해할 수 있어서 가르칠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소감을 들려 주었습니다.

 

나 자신에게도 참으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배우려고 준비된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가르쳐도 그들은 잘 받아들이고 잘 소화시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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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