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와 보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약> 앞서 말한 대로 사고력과 실행력을 갖추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인간과 조직에 관한 올바른 가치관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인간을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실존적 존재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인간들의 공동체가 곧 조직이며, 조직은 구성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이런 전제하에 자신이 맡은 일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펀드매니저라면, 그는 투자자의 각종 리스크를 안전하게 헤징해주는 안전한 자산관리자로서 수호천사가 될 것이며, 환경미화원이라면 그의 오른손에 든 빗자루는 지구를 깨끗하게 하는 거룩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더 가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월 스트리트의 경영진들의 보상을 일반직원 평균연봉의 수백 배를 받는 것은 잘못입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부하들과 다른 사회적 지원이 없이 높은 성과를 낼 수 있겠습니까? 다들 협력한 결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영진에게 너무 과도하게 보상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사회보장이 잘 된 북구와 같은 사회에서는 대학교수나 버스운전사나 사는 모습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경제적 보상이 큰 경우라도 대부분 세금을 걷어가기 때문에 실제적인 생활모습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요. 각자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해서 높은 지위에 올라갔다면, 그 자리에서 하는 일에 만족감과 즐거움, 행복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지신의 지위에서는 이미 보상을 충분히 받은 것이죠. 그래서 월 스트리트와 같이 큰 경제적 보상을 당근으로 내 거는 것은 공정한 처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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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인재전쟁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하며...

지난 겨울 인재전쟁이라는 테마로 SBS스페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인터뷰 섭외가 왔습니다. 아마도 내가 인재전쟁”(세종서적)이라는 책을 번역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가로부터 기획의도를 충분히 듣고 "인재"와 "인재전쟁" 현상에 대한 나의 견해를 밝히는 인터뷰를 하기로 했습니다.

인터뷰는 내 연구실에서 2~3시간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작가가 미리 질문지를 보내와서 답변의 개요를 작성해 보냈습니다. 2008년 겨울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인재전쟁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시사점을 찾아보는 프로그램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방송사의 기획의도와 나의 인재관이나 인재전쟁 현상에 대한 견해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송되지는 못했습니다.

인터뷰내용을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세계적인 금융위기는 인간을 자원으로 간주하면서 시장만능주의를 추구하는 미국 주류경영학의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이미 예전에 <인재전쟁에 관한 인터뷰>라는 포스트에서 당시 방송사와 인터뷰했고, 그 원고의 요약분을 소개했었습니다. 최근에 인터뷰 동영상 파일을 받아 정리하여 시리즈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혹시 인터뷰 내용에 대한 질문이나 다른 의견이 있는 분들은 적극적으로 코멘트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인재전쟁(1/20)_”인재전쟁을 번역하게 된 계기는


<요약>

10년 전을 생각해 보세요. 외환 위기를 당하게 된 이유가 인재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경영자들이 인재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때까지의 인사관리는 봉건식 인사제도였습니다. 경영자의, 경영자에 의한, 경영자를 위한 인사였습니다.

나는 컨설팅하면서 경영자들이 직원을 거의 소모품처럼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생산성을 장기적으로 낮춥니다. 나는 사람을영혼을 가진 실존적 존재로 인정해 주었을 때 더 높은 성과를 내게 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인재의 중요성을 알리려는 책을 쓰려고 자료를 찾다가 『The War for Talent』라는 책을 보고 번역하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번역하고 나니까, 이 책을 본 사람들이 회사에서 인재라고 인정되는 사람만이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는 잘못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애초의 의도는 주먹구구식 인사시스템을 합리화하려는 의도였는데, 그게 지나치게 극단으로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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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인재를 설명하면서, 성경의 달란트 비유(마태복음 25 14~30)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달란트는 고대 중동지방의 화폐단위였지만, 그것이 재능이라는 뜻으로 변했다가 오늘날에는 자신의 재능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이 달란트 비유에 대해 타고난 재능을 잘 발휘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개신교 노동윤리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재(人材)라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마태복음 25장에 나온 예수의 비유를 차분히 읽어보겠습니다.

 

  1. "하늘 나라는 또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먼 길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었다.
  2.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돈 다섯 달란트를 주고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3.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4.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5.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가서 그 돈을 땅에 묻어두었다.
  6. 얼마 뒤에 주인이 와서 그 종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7.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주인님, 주인께서 저에게 다섯 달란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잘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하고 말하였다.
  2. 그 다음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와서 '주인님, 두 달란트를 저에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 그래서 주인은 그에게도 '잘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하고 말하였다.
  2.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와서 '주인님, 저는 주인께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무서운 분이신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3.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저는 주인님의 돈을 가지고 가서 땅에 묻어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그 돈이 그대로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 그러자 주인은 그 종에게 호통을 쳤다. '너야말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인 줄로 알고 있었다면
  2. 내 돈을 돈 쓸 사람에게 꾸어주었다가 내가 돌아올 때에 그 돈에 이자를 붙여서 돌려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
  3. 여봐라, 저 자에게서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4.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5.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쫓아라. 거기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이 비유를 읽고 얻은 첫인상이 어떻습니까? 처음 성경을 배울 때는 잘 몰랐는데, 철 들고 나서 이 비유를 음미할수록 너무 무자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한 달란트밖에 없는 사람에게서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사람에게 주는 행태는 빈익빈 부익부를 조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의 달란트 비유는 심오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재능의 크기에 차이가 있지만, 누구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큰 재능이든 작은 재능이든, 수학재능이든 음악재능이든 상관없이, 어떤 재능이든 연마해서 남김없이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달란트 비유의 핵심이었습니다.

성과가 적은 사람에게 적게 보상하고, 성과가 큰 사람에게 많이 보상하라는 취지의 비유가 아니었습니다. 루터의 해석은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신이 주신 재능(달란트)을 크든 적든 연마하여 남김 없이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실패할 것을 염려하지 말고, 결과는 상관하지 말고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엄격한 사람이라서 장사하다가 실패하면 그 하나마저 잃어버릴까 두려워서 땅 속에 묻어 두었다고 변명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호된 꾸지람과 가혹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썩힌 것에 대한 징벌이었습니다. 이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재능을 연마하여 활용하라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혹독한 벌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나는 크게 두 가지 시사점을 생각했습니다.

 

첫째, 사회적으로 실패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도 실패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패할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합니다. 왕창 실패해도 다시 재기하는 데 장애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사회적으로 한번 실패하면 어떻게 되나요? 큰일 납니다. 회사생활에서 실패하거나 실수하면 찍힐 뿐만 아니라 한직으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선배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봤기 때문에 조직의 쓴맛을 간접적으로 체험합니다. 적당히 중간만 가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재능을 갈고 닦으려는 의지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창의성도 발휘하기 어렵죠.

 

이런 상황에서 적은 재능이라도 맘껏 연마하고 잘 발휘하라고? 불가능한 얘깁니다. 어린 아이들이 걸음마를 뗄 때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걷는 것을 배웁니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과정이 마찬가지입니다. 실패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덴마크의 사례>를 예를 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 아무리 재능이 적더라도 아예 포기하지 않도록 길을 터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재능의 크기를 서로 비교합니다. 학교성적을 비교해서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는 차별합니다. 재능은 학교 점수와 상관 없는 데도 말이죠. 점수가 낮은 사람은 자신이 무능하다고 생각해버립니다. 그리곤 포기합니다. 부자와 행복, 성공과 위대함은 학교성적과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점수로 비교합니다. 그래서 재능이 적다고 여겨진 사람들은 재능연마에 소홀하기 쉽습니다. 그리곤 환경 탓 하거나 찰라적 쾌락에 탐닉하게 됩니다. 나아가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울지도 모릅니다.

 

재능의 크기에 상관없이 누구나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연마하고 활용할 의지가 있다면 누구나 인재(人材)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일에서 성과를 적게 내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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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앞에서 역량을 단순하게 <사고력><실행력>이라는 용어로 축약해서 표현했습니다. 실은 모든 인간은 외부의 정보를 마음의 필터를 통해서 받아들이는데, 이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필터링(filtering)하느냐에 의해 사고력과 실행력의 특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외부의 정보는 사고력과 실행력이라는 마음의 프로그램(mind program)에 의해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의 행동패턴을 만들어냅니다.

 

행동을 일으키는 인지적 과정(cognitive process)

그림에서 보듯이, 외부의 정보가 사고력(mind program)이라는 지각필터(perception filter)를 거쳐서 행동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의 엔진(behavioral engine)을 자극합니다. 엔진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100마력쯤 되고, 어떤 사람은 10마력 정도 됩니다. 10마력의 엔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훈련을 시키고 화려하게 포장해도 그 사람은 10마력 정도의 힘밖에는 발휘하지 못합니다. 물론 훈련을 통해 조금은 좋아질 수 있겠지만, 100마력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우선, 정보를 필터링하는 사고력이라는 역량군을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분석적인 사고력(analytical thinking, AT)도 있고, 개념적인 사고력(conceptual thinking, CT)도 있습니다. 둘 다 사고력이지만, 서로 호환이 어려운 사고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분석은 잘 하지만, 사태의 맥락(컨텍스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전문용어(?)로는 개념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죠. 또 어떤 사람은 사태의 맥락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문제의 원인분석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 쓰는 말로는 삽질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긴 둘 다 없는 사람도 있고, 둘 다 출중한 사고력으로 무장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고력은 이처럼 분석적인 것과 개념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래를 어느 정도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급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코앞의 일보다는 먼 장래의 일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을 미래지향성(forward looking, FL)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직무와 관련하여 일년 후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를 미리 예상하여 준비하는 사람과 지금 당장 발생한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한 사람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먼 미래를 예상해서 지금 준비해야 하며, 낮은 지위일수록 가까운 장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실무를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데, 특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당장의 눈앞에 떨어진 자질구레한 일들에 신경 쓰는 것을 보면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조직의 장래를 생각해서 지금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를 논의해야 할 자리에서, 회의실에 의자 삐뚤어진 것을 보고 실무자들에게 야단치는, 그래서 실무자들의 발언의욕을 꺾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대로 말단실무자인데도 밤낮 회사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질구레한 자신의 일은 잘하지 못하면서 회의 때는 항상 회사전략에 대해 큰소리치는 사람도 있죠.

 

그렇지만, 아무리 먼 미래를 보라고 가르쳐도, 눈앞의 일에만 급급한 인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은 윗자리에 올라가도 여전히 눈앞에서 벌어지는 당장의 일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현대사에서 가장 격정적이었던 시대를 이끈 노태우 대통령은, 같은 시대에 독일통일을 이끈 헬무트 콜(Helmut Kohl, 1930~) 수상과 비교할 때, 비전이 전혀 없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민주화와 국가의 장기적 발전의 초석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시기에, 우리는 노태우와 같은 지극히 근시안적인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가적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오늘날 독일 최초의 여성총리인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1954~)과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1961~)와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인 출신 대통령 이명박(1941~)은 역시 건설회사 사장 출신답게 눈앞에 보이는 토목공사 이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역사의식을 가지고 국가의 먼 장래를 내다보는 미래지향성은 국가지도자에게는 필수적인 역량요소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정말 하루하루가 소중한 역사적 전환점에서, 우리는 국민을 회사 종업원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치명적 실수를 또다시 저질렀습니다. 우리 국민에게 닥친 현대사의 안타까운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위조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근시안적인 인물이 윗자리에 앉게 되면 합리적인 인사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인간들이 충성의 목소리를 높여 승진합니다. 설탕에 개미 꾀듯이 아첨꾼들이 모여듭니다. 회사의 장래보다는 그들의 개인적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의사결정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집니다. 이런 회사는 조직문화가 피폐해져서 구성원들이 함께 일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아침에 출근하기 싫어지죠. 서로 경쟁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줄서기를 해야 하고, 때로는 각개전투를 벌이는 통에 조직은 점점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합니다. 기업은 활력을 잃어갑니다. 그럴수록 외부의 각종 경영기법들, 예를 들어 BSC, 식스 시그마와 같은 것을 도입해서 구성원들을 쪼면 회사가 좋아질 것으로 야단법석을 떱니다. 하지만, 근본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는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힘들고 고통스러워질 뿐이죠.

 

그러므로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사고력>이라는 <세 살 적 버릇>은 매우 중요합니다.


구체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역량요소들

그림에서 보듯이, 외부의 정보가 사고력(mind program)이라는 지각필터(perception filter)를 거쳐서 행동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성취지향성, 자신감, 정직성 등과 같은 역량요소를 자극합니다. 특히 성취지향성(achievement orientation, ACH)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어진 상황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조직이 요구하는 목표보다 더 높은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하고, 끈기 있게 추진하여 성과를 얻어내려는 성향을 말합니다. 문명국가를 건설한 국민과 그렇지 못한 국민들 간의 역량요소에 있어서의 의미 있는 차이는 성취지향성이 높으냐 낮으냐의 차이였음을 밝혔습니다. (David C. McClelland, The Achieving Society, D. Van Nostrand Company, Inc. 1961을 참조) 물론 이 역량요소가 성공의 전부를 설명하진 못한다 하더라도, 개인의 성공에 성취지향성이 중요한 요소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역량요소가 높은 편에 속합니다.

 

인간의 행동을 유발케 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다른 하나는 자신감(self-confidence, SCF)입니다. 자신감은 자신의 직무와 관련하여 자신의 생각과 결정에 대한 확신의 정도를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좌절할만한 상황에서도 일시적으로 좌절했더라도 즉시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능력을 자신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연예인들이 가끔 자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좌절에 빠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감의 결여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가수 백지영은 연예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섹스스캔들에 휘말렸습니다. 한때 극도의 좌절에서 방황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곧바로 원래 자신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더 깊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타인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극복하면서 자신감을 더욱 쌓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좌절도 자신을 좌절시키지 않는 상태를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 역량요소는 평균수준을 훨씬 넘습니다.

 

외부정보를 받아들여,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소 중에서 정직성(integrity, ING) 만큼 중요한 요소는 없습니다. 정직성의 문제가 우리 시대에는 매우 중요합니다. 윤리성 또는 성실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KAIST의 안철수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기업가 중의 한 사람입니다. 정직성은 자신의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가치와 신념을 일관성 있게 지키고 따르고자 하는 성향을 말합니다. 최근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그를 보았습니다. 대담 내용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범하고도 당연한 얘기였는데, 그것이 우리를 감동시켰습니다. 왜일까요? 그의 삶이 정직했기 때문입니다. 정직은 말과 행동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목전의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양심의 소리에 따라 의사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일관성 있게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가와 경영진을 믿을 수 없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기업의 광고선전을 보면 참 좋습니다. 마음이 따듯해지고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광고하는 대로 기업인들이 의사결정하고 행동한다면, 누가 기업인을 신뢰하지 않겠습니까? 기업인이 존경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떠들지만, 정작 기업인들은 안철수 교수와는 정반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존경은커녕 범법자처럼 인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역량요소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보다도 낮은 수준입니다. 그의 높은 성취지향성과 자신감이 정직성을 눌러버렸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의 도덕성은 더욱 힘을 잃게 됩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러 차례 말과 행동이 달랐습니다
. 이 글을 쓰고 있는 2009년 7월 1일 저녁 비정규직법에 관한 여야협상이 결렬되었습니다. 그 동안 2년간 비정규직 지위에 있던 근로자는 오늘부터 법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되든지 아니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무기계약 근로자)로 자동 전환됩니다. 나도 처음에는, 2년간 비정규직으로 있던 사람은 정규직으로 전환되든지 아니면 해고되는 것으로 언론을 통해서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감쪽같이 속아넘어갈 정도로 교묘하게 사태를 왜곡하는 일부 언론의 행태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한 진실은 아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김상희 의원, 비정규직법과 대량해고 그 진실은?
신원철 교수, 해고대란 타령은 거짓말... 기자들아 법부터 읽어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부쩍 서민경제를 챙기면서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사먹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공기업들이 비정규직 해고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세상에! 삽질예산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정규직 전환지원금으로 활용한다면, 비정규직법의 문제는 몇 년 내에 완전히 해소될 것입니다. 수백만명의 비정규직을 불안한 직업 상태로 방치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민을 기업가들의 자본축적을 위한 노예상태로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아마 국민들이 비정규직법의 역사적 맥락과 법개정을 위한 이명박 정부의 행태를 조금이라도 파악했다면, 감히 서민경제를 챙긴다는 말이 얼마나 파렴치한 말인지를 이해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믿을 수 없게 된 것 같습니다
.  참고로 아래의 관련된 글을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2009/06/20 신자유주의 시장경제(11)_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2009/06/19 신자유주의 시장경제(10)_ 개신교 장로들에게 묻습니다
2009/06/19 존 러스킨_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내 경험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업가와 경영진의 대부분은 이명박 대통령과 비슷한 역량프로파일(competency profile)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취지향성과 자신감은 높은데 비해 정직성은 떨어지는 프로파일 말입니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지도층의 역량프로파일이 이렇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통계가 나옵니다.

 

청렴 지수: 180개국 중에서 40

환경지속가능성 지수: 146개국 중에서 122

남녀 불평등 지수: 130개국 중에서 108

국민의 행복 지수: 178개국 중에서 102

자살률: 세계 1위(10만 명당 26.1명)
(
주간조선, 우리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2009.6.29, 2061, 16~27쪽 참조)

 

대한민국은 전세계 230여개국 중에서 국내총생산 13, 수출입 11위의 경제대국입니다. 하지만, 삶의 질은 거의 꼴지를 면치 못하고 있고, 대부분의 국민은 불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여 적소에 배치하는 시스템적 구조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대부분 회사는 오너 기업가와 경영진 중심의 보상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로자 급여의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10여 년 전 외환위기 이후에 월 스트리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도록 구체적으로 도와준 사람들이 미국계 경영컨설팅회사의 컨설턴트들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인재를 중시하고 사람중심의 경영을 한다고 떠벌립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어려워졌으니 복지후생지출을 줄이고 구조조정하겠다고 합니다.

 

특히 오늘날 비즈니스세계에서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정직성은 복잡하고 어려운 수학문제가 아니라, 안철수 교수처럼 양심에 따른 매우 간단한 결정일 뿐입니다. 함께 일하는 종업원들을, 영혼이 있는 실존적 존재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안철수 교수는 주저 없이 그렇게 결정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존경을 받으며,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탐욕에 물든 기업가와 경영진은 이런 결정을 하기 어렵습니다.

 

행동을 구체적으로 일으키게 하는 역량들

 

외부의 정보가 행동의 원천을 자극하면, 조직, 직무, 타인과 관련된 역량요소를 활성화시킵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해서는 조직에 대한 헌신(organizational commitment, OC), 참여와 협조정신(teamwork, TW)을 끌어냅니다. 또는 부하들을 육성하려는 성향(developing others, DEV)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직무에 대해서는 전문성(expertise, EXP)을 발휘하려고 노력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정보를 수집(information seeking, INF)하고, 혹시 오류가 있는지를 철저하게 확인(concern for order, CO)합니다.

 

타인에 대해서도 자신의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설득력(impact and influence, IMP)을 발휘하고, 고객에 대한 서비스정신(customer service orientation, CSO)을 가다듬게 됩니다. 업무를 위해 타인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relationship building, RB)하려고 노력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역량요소들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전부를 표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직무의 차별적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한 일반적인 역량요소를 말하는 것뿐입니다. 문제는 이것으로 높은 성과의 모든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과는 다양한 요소들의 종합적인 상호작용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성과를 단순히 한 개인의 역량으로만 돌리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예를 들어 조직의 성과를 지도자의 위대함으로 귀속시키는 사례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방식의 설명은 사실 아무런 의미도, 교훈도 끌어낼 수 없습니다. 높은 성과는 혼자서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개인의 역량요소들은 높은 성과를 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뿐입니다. 적합한 역량요소들이 잠재되어 있는 사람도 환경에 따라서는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직무가 요구하는 역량요소에 적절히 부합하는 인재(talent)를 선발하고, 그를 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을 소홀히 하면 국가든, 단위조직이든 쇠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재(talent)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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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경영 리더십과 비전, 그리고 자아


나는 <리더십>(leadership)이란 "비전(vision)을 향하여 시스템(system)을 정비하고 인재(talent)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런 정의를 한 마디로 말하면, 리더십이란 시스템을 정비하고 인재를 확보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반드시 비전을 전제로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비전이 없이는 시스템 정비도 인재확보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비전이야말로 리더십을 가능케 하는 출발점이 되는 셈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도자들이 뚜렷한 비전도, 합의된 방향도 없이 시스템을 설계하고 좋은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떱니다. 물론 비전이 없이도 시스템을 정비하고 인재를 확보할 수는 있지만, 조직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코 나아갈 수 없습니다. 비전은 인간사 모든 것의 전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비전(vision)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독특한 비전이란 내적 자아(intrinsic self), 즉 분석심리학에서 자기(self)라고 부른 것이 활성화된 상상력의 결과를 말합니다. 인간은 내적 자아가 강력하게 원하는 상상(vision)만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여기서 내적 자아(intrinsic self)의 실체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외적 자아(extrinsic self), 즉 분석심리학의 에고(ego)와 구분되는 내적 자아가 진정한 의미의 자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적 자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적 자아가 외적 자아의 통제를 받기 때문입니다. 외적 자아는 태어나서 사회화 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자아인데, 주로 경험과 교육적 배경에 의해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 사고를 당한 경험이 다시는 지하철을 타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외적 자아의 작용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인 것으로 보이기 위해 형성된 자아이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이렇게 외적 자아는 내적 자아를 통제하기 때문에 외적 자아가 강할수록 내적 자아가 원하는 것을 실현하지 못할 수도 있고, 내적 자아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외적 자아(ego)와 내적 자아(self)를 이해하라

운동을 할 때, 코치들이 힘을 빼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내가 테니스를 배울 때도 그랬고, 골프를 배울 때도 역시 그랬습니다.
 수영을 배울 때도 몸에 힘을 쭉 빼고 자연스럽게 스트로크를 하면 앞으로 잘 나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물 속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을 주게 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물 속에서 헤엄치다 물먹은 경험, 물속에 빠져서 혼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갓난 아기들은 물 속에서 헤엄을 아주 잘 칩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물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이 쌓여서 외적 자아를 형성합니다. 그 좋지 않은 경험으로 인해 외적 자아가 발동하여 더 이상 물을 먹지 않도록 온 몸에 힘을 주게 됩니다.

 

외적 자아는 내적 자아를 감싸는 깁스(Gibs)와 같아서 그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내적 자아의 발현이 힘들게 됩니다. 외적 자아가 아니라 내적 자아가 나를 콘트롤하게 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무시하면 되죠.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상사의 질책을 무시하라.
실수나 실패의 두려움을 무시하라.
평가에서의 불이익이나 승진 등에 대한 불안감을 무시하라.

이런 것들은 모두 외적 자아가 자신에게 주는 신호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호를 받으면, 본능적으로 몸과 마음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긴장하게 되고, 학습이나 작업에 있어 능률이 떨어지게 됩니다. 심지어 복통, 두통, 설사 등 신체적인 이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가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우 엉뚱한 짓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와 같은 천재뿐만 아니라 빌 게이츠, 워렌 버핏, 에이브러햄 링컨, 정주영, 백범 김구, 이순신 등과 같이 그 시대의 물결을 거슬러 거꾸로 살아간 위인들도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별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기꺼이 해낼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내적 자아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무시한 것이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았고, 그 길을 남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꾸준히 실천해 나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주위의 평가에는 민감하면서도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가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그래서 내적 자아가 활성화된 상상력의 결과를 곧 비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비전까지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영혼의 능력과 자기이미지(self-image)
 

이러한 비전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곧 영혼의 능력입니다. 모든 인간은 이러한 영혼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평등합니다. 영혼이 있는 실존적 존재라면 누구나 무한의 세계 또는 초월적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혼의 능력이 상상하고 관조하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모든 행위, 즉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의 결과는 예술가에게는 예술작품으로 나타나고, 정치가에게는 정치적 성과로 나타납니다. 나는 모짜르트, 베토벤, 바하의 음악을 들으면 때때로 전율합니다. 그 음악에는 작곡자의 영혼의 능력이 역동적으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이 내 영혼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모한다스 간디가 추구했던 무폭력의 저항적 정치 행위는 수백년간의 영국식민지로부터 인도를 독립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마하트마, 즉 위대한 영혼이라고 부릅니다. 기업가나 경영자에게는 회계적 이익의 양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성과로 나타납니다. 이런 기업들은 우리 주변에 잘 살펴보면 아주 많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성공이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즉 비전을 실현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나는 항상 비전작업을 중시합니다. 비전작업이란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곳 또는 바람직하다고 상상하는 상태를 사전에 정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버스를 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내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그 목적지를 모른 채 버스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공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비전에 도달하는 것이 됩니다. 성공이란 목적지를 정하고, 그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면 되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무시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영혼이 억압되었거나 아니면 왜곡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바라본 것을 자아상(自我像) 또는 자기이미지(self-image)라고 말합니다. 자기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의해 인생의 성공과 행복이 결정됩니다. 내적 자아를 발견하고 그것을 자아상으로 그려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반성이 가능한 영혼을 가진 존재라고 말합니다. 반성이 없으면 짐승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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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나는 리더십(leadership)이란 "비전(vision)을 향하여 시스템(system)을 정비하고 인재(talent)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

조직을 이끌든 자기 자신을 이끌든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를 잘 하면 됩니.

① 비전 설정

② 시스템 정비

③ 인재 확보

이 세 가지를 잘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차차 설명해 나갈 것입니다. 이것을 잘 배워서 실천하면 누구나 잘 할 수 있습니다.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 세 가지를 잘 배워서 익히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세 가지를 무시한 채, 리더가 되겠다고 또는 리더십을 발휘하겠다고 야단 법석을 떨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시중에서 가르치고 있는 리더십 교육과정을 살펴봐도, 역시 이런 기초적인 훈련보다는 기술적인 테크닉에 치중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리더십 교육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리더십 테크닉이 전혀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리더십에 관한 정신모형(mental model)을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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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