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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22 용산사태의 본질과 일차원적 인간들 (1)




 

가정해 보겠습니다. 민자로 건설한 도로가 부실하게 설계돼서 그곳을 지날 때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랐습니다. 주민들은 행정당국에 도로를 고쳐달라고 애원했지만, 관료들은 민간업자와 도로이용자 사이에서 해결할 문제라고 발을 뺐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내다가, 이번에는 과속으로 달리던 버스가 사고지역에서 전복되었습니다. 여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책임 있는 당국자가 나타나서 이번 참사를 계기로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뭐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비슷한 일이 용산에서 발생했습니다. 재개발지역 철거민들의 농성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6명이나 사망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습니다.(2009.1.20) 현장의 끔찍함은 보도를 통해 잘 알려졌습니다. 무슨 대변인이 높으신 분의 뜻을 전하면서, 이번 참사를 계기로 불법시위가 근절되었으면 한다는 희망을 피력했습니다. 뭐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번 참사의 원인제공에 의견이 분분합니다. 불법시위냐 아니냐, 불법이었다 하더라도 강경진압이냐 아니냐, 나아가 발화물질에 불을 붙인 자가 누구냐를 따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태의 본질이 아닙니다.

 

핵심은 입니다. 돈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방식은 뭐니뭐니해도 시장이 가장 좋습니다. 시장에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돈의 흐름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소위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오늘날의 지성으로 볼 때, 물물교환경제와 화폐시장경제의 차이점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보이지 않는 주먹이 나타난다는 데 있습니다. 돈이 한군데 모이면, 즉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생기면, 시장 자체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끔 요리할 수 있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주먹이 활개를 칩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주먹이란 돈의 힘을 말합니다. 돈으로 사람을 살 수 있고, 사상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주먹의 힘으로 법규와 제도를 만듭니다. 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은 법규와 제도를 통해 불법의 올가미를 씌웁니다. 집단으로 시위를 하면 대부분 불법시위자가 되고, 사고 다발지역을 운전하는 사람은 대부분 교통법규위반자가 됩니다.

 

시장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주먹을 가진 사람들은 그래서 시장경제를 강조합니다. 이들을 신자유주의자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돈이라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은 시장을 중시합니다. 약육강식과 힘의 과시를 좋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신자유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규제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돈이라는 블랙홀에 스스로 빨려 들어갑니다. 안타깝게도 돈이 주는 얄팍한 단맛에 인생을 맡깁니다. 50여년 전에 이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 1898~1979)는 이런 사람들을 『일차원적 인간』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들은 더 나은 사회와 이상적인 공동체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 버립니다. 몸뚱아리밖에 가진 것이 없는 하층계급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없는 현실을 철저히 외면합니다. 돈 이외의 어떠한 가치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일차원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도 이제는 일차원적인 인간들의 모임이 돼가고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구제하기 보다는 수백억 원을 들여 경쟁적으로 예배당을 짓습니다. 예수님은 예배당을 멋있게 지으라고 하신 적이 한번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예배당을 지으라고 하신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들을 도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오늘날 예배는 죄에 대한 회개와 욕망의 절제를 체험하는 시간이 더 이상 아닙니다. 예배는 교인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는 쇼 비즈니스가 돼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교회에 벼락같이 떨어진 축복>을 참고하세요.

 

주먹을 가진 일차원적 인간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사람들을 기용한다는 점입니다. 히틀러가 친위대와 비밀경찰을 뽑을 때 썼던 방법입니다. 그들은 히틀러의 권력으로부터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받아 먹으면서 충성을 다했습니다. 이것이 그토록 부도덕한 나치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나치사회가 반인륜적인 명령과 통제의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정화되지 못했습니다. 일차원적 인간들이 대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20세기에 주먹을 가진 일차원적 인간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히틀러였습니다.

 

21세기에는 아마도 미국의 전대통령 조지 부시(아들)가 될 것입니다. 그는 개신교 교인으로서 교회에 장로 이상으로 충성을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따르던 네오콘에게 돈을 밀어주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등 일방적으로 주먹을 사용했고,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다가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경제적 고통의 늪으로 빠뜨렸습니다. 나는 그를 21세기의 진정한 일차원적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용산사태는 과연, 부시가 저지른 일에 비하면, 졸개수준의 일차원적 인간들이 만들어 낸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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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