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인간이란 무엇인가(1)_인간을 보는 눈
          인간이란 무엇인가(2)_경영학의 인간관 문제
 

이제 이데올로기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이데올로기란 문자 그대로 아이디어의 학문입니다. 아이디어의 논리, 즉 관념의 학(
)이라는 말입니다. 서양사상사의 전통은 관념을 중시해왔습니다. 신이나 이성의 작용은 다 관념 속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입니다. 어느 시대건 그 시대를 지배하는 관념이 존재합니다. 중세에는 신이라는 관념이 세상을 지배했고, 오늘날에는 실증적 이성 또는 과학이라는 관념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보면, 자본()이라는 관념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는 그 시대의 지배적 관념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잘 인식되지 않을 정도로 무의식화 되어 있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연구는 바로 이런 지배적 관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잘못된 점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학문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6)와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는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책에서 헤겔(Georg W. F. Hegel, 1770~1831)의 철학체계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인간의 정신 또는 이성은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절대정신을 이루고 그 정신의 현현이 국가체계를 형성한다는 헤겔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해나갔습니다.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이 구체적인 삶의 물적 토대와 그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지, 형이상학적인 관념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헤겔 철학은 본말을 전도시켰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전도된 현상 또는 전도시키는 힘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현실적인 삶에서도 본말이 전도된 현상을 많이 느끼곤 합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이 시대를 지배하는 하나의 관념입니다. 백성 에 주인 니까 어떤 경우에도 백성이 주인이 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죠. 그래서 민주주의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선거 때를 제외하고는 백성이 주인이 되지 못하지요. 선거에서 뽑힌 정치인들이 주인이 되고 백성들은 한낱 머슴으로 전락해 있는데도 그것을 잘 모르고 우리는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바로 민주주의라는 지배적 관념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돈이라는 숭고한 대상

 

따라서 어떠한 지배적 관념이라도 이데올로기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경쟁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온 국민과 기업을 시장경쟁체제에 적합하도록 바꿔야 한다는 관념은 신자유주의적 발상인데, 국가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을 볼 때, 그 명분은 나쁠 것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관념이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게 되면 본말이 전도되어 남미와 같이 극심한 빈부격차로 경제와 사회질서가 오히려 후퇴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관념이 좋으냐 나쁘냐도 중요하지만, 그 관념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어떤 것이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독일에서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TV광고에 일등 하는 자만이 기억된다는 카피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광고를 보는 백성들은 , 우리가 일등을 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등 하기 위해 노력했을 겁니다. 온 국민이 그 광고를 보고 그래 맞다. 일등 하는 사람만 역사에서 기록됐구나. 우리도 일등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자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김우중 회장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대우신화가 생겨났고, 후회 없는 한판의 대박 인생을 그린 재벌회장들의 자서전이 대거 출간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습니다. 단번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념들이 이데올로기화되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을 때, 즉 재벌회장들처럼 열심히 살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전도된 힘에 의지하고 있을 때, 거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거품의 이데올로기는 항상 터질 때까지 자기증식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 거품이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일시에 주저앉았습니다. 우리는 외환위기를 맞게 되었고 수많은 종업원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뿌리가 100년이 넘는 시중은행들(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신탁 등)이 지금은 그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외국계로 팔리거나 중소은행들에 합병되었지요. 내가 한국은행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처참했어요. 당시 제일은행의 어느 퇴직직원이 만든 <눈물의 비디오>는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어느 시대에서나 지배적인 관념이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 있고, 그러면 본말이 전도되는 사회적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중세에는 신에 대한 관념이 지배적이어서 신앙의 이름으로 부패와 악행을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신앙이 이데올로기로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자본에 대한 관념이 지배적이어서 이것이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삶에 있어서 자본, 즉 돈이란 교환과 지불의 수단으로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도록 도와주는 수단입니다. 이 수단이 숭고한 대상으로 변화되었고, 본말이 전도되었습니다. 이러한 논의를 물고 늘어진 사람이 바로 슬로베니아 출신의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1949~)입니다. (그의 책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을 참고하세요.)

 

지젝은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류블랴나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프랑스에 유학해서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의 사유에 많은 영향을 받은 학자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자크 라캉, 슬라보예 지젝 등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의 대가이자 현대문명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상가입니다. 그의 책은 어느 것이라도 붙들고 정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슬로베니아는 과거 유고연방의 일원이었다가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후에 연방에서 독립한 아주 작은 국가입니다. 지난 여름 휴가 때 잠시 들린 적이 있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알프스의 동남쪽 발등상에 위치한 국가로 국민소득이 약2만불 정도 되니까, 평균적인 가계경제수준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편이지요. 그런데 시골 구석구석이 잘 살더군요. 나는 그렇게 깨끗하게 되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시골마을에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평범한 아주머니와 할머니를 만났는데 아시아에도 관심이 많고 영어는 못해도 기본적으로 독일어를 할 줄 알더군요. 슬로베니아어는 독일어와 다른 언어체계인데도 이웃나라의 언어를 시골아낙네들이 잘 구사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공산주의 국가라 해도 매우 개방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중국어를 일상에서 전혀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그 동안 국가운영시스템이 얼마나 폐쇄적이었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걱정이 많았습니다. 젊은이들이 술과 마약을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난다고 걱정했습니다. 예전에는 꿈도 꿀 수 없던 일들이 벌어진다면서 한국은 어떠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공산주의를 수십 년간 해왔던 나라가 오스트리아나 독일에 버금가는 생활수준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빈부의 격차가 그 만큼 적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인구가 200만 명 정도 되지만, 자신의 고유한 언어인 슬로베니아어를 씁니다. 이런 작은 나라에서 세계적인 사상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부러웠습니다.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화

 

이제 다시 이데올로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시장메커니즘에 따라 운영되는 사회체제를 구성하는 지배적 관념입니다. 여기에는 돈이 모든 것의 척도이기 때문에 돈, 즉 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인간대접을 받고 그렇지 못하면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며, 시민들의 관념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 , 돈 하면서 돈에 혈안이 되는 것입니다. (화폐로 표상되는 돈이 인간과 사회에 얼마나 파괴적이고도 심대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회학적 분석은 고병권 박사가 쓴 책, 『화폐, 마법의 사중주』(그린비 2005)에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돈에 대한 이러한 지배적 관념이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는 현상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합니다. 시골에서 사이 좋게 잘 살던 친척들이 재개발토지보상금을 받고 나서는 서로 반목하거나 법정다툼으로 가기도 합니다. 이 정도는 그래도 양반이고, 혈육간에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습니다. 돈이 없을 때는 아무 문제없이 잘 살다가 돈이 생기자 문제가 커진 것입니다. 회사의 경영권을 두고 형제간에는 물론 부자간에도 싸움을 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라는 것이 우리의 관념 속에서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의 와중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말이 전도되어 있는데도 그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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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성경은 흰머리카락이 지혜의 상징이라고 했는데, 흰머리는 많은데도 지혜롭지 못하니, 성경의 말씀이 잘못된 것인지 내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흰머리가 머리를 뒤덮으면서 지혜란, 사람에 대한 사랑과 애정의 감정일 것이라는 생각을 희미하게나마 했습니다.

 

호감을 열정으로, 열정을 종속으로 변화시키는 극단적인 감정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이는 한 개인을 도취상태로 몰입시키면서 때로는 당사자, 즉 사랑에 빠진 자의 이성적 판단능력을 제한한다. 사랑은 아픔을 낳는 행복이며,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아픔이다.


독일의 위대한 문학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Marcel Reich-Ranicki, 1920~2013)의 자서전을 읽다가 사랑의 정의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아내를 만난 것은 1977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그녀에 대한 호감이 열정으로 변했고, 그 열정이 그녀에 대한 종속의 감정으로 치달아 이성적 판단능력이 제한받고 있음을 몰랐습니다. 라이히-라니츠키의 글을 읽고서야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30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내 사랑의 감정은 인간과 조직에 점차 쏠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악의 근원이 돈을 사랑하는 데 있다는 성경의 말씀과 그 동안의 실무경험에서 인간의 고통은 돈에서 출발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돈이 인간의 마음의 상태를 결정하는 무서운 권력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자본을 경멸하거나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그 반대로 자본을 숭배해서도 안 된다. 자본을 수단화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의 인간됨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업무가 단순할 때는 일 잘하는 직원과 못하는 직원의 생산성 차이는 많아야 3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중급 정도의 난이도를 지닌 업무일 때도 생산성 차이는 최대 12배 정도이다. 그러나 복잡한 일에 맞닥뜨리면 유능한 직원과 그렇지 못한 직원의 성과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차이가 난다.


스탠포드대학교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교수의 이 말은 정보화 시대의 지식사회에서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생각하는 능력, 즉 사고력이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고력은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해보는 데서 나옵니다. 그리고 책에서 얻은 지식과 개념들을 끊임없이 그리고 무한히 상상해 봄으로써 길러집니다. 비주얼하고도 즉각적인 시각 정보들이 난무하는, 그래서 많은 사람이 현혹되는 상황에서 고리타분하게 책장을 넘기는 것이 바보스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우직함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왜 연구하려는가?

우리는, 특히 나는 그동안 내 능력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먼 길을 아주 빠르게 달려왔습니다.

뒤돌아보면
 지금까지 그렇게 고생스럽게 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한 길을 찾아 가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고(connectedness),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trust) 조직문화와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과 조직에 대하여 진지하고 투명한 연구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강의와 집필을 통해 공정하게 나누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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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월 스트리트에서 큰(富)를 이룬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월 스트리트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워렌 버핏의 성공은 연구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나는 워렌 버핏의 성공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리에 근거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자신의 일을 즐겼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원리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 그 자체가 곧 일하게 하는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여 그것을 일관되게 실천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일을 항상 즐거워했기 때문에 그 일을 평생토록 해왔고, 그래서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점은 <진정한 자본가, 워렌 버핏>에서 다루었으므로, 이번에는 두 번째 원리인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여 일관되게 실천해 왔다는 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워렌 버핏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수많은 문헌들이 시중에 나와 있지만, 정작 워렌 버핏은 자신의 사상을 책으로 펴낸 적이 없습니다. 매년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보내는 메모를 통해 그의 사상을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잘 알다시피, 철학이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근원적 사유를 말합니다. 이러한 근원적 사유의 틀이 형성되지 않으면, 사물이나 현상의 실재와 본질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쉽게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하고, 때로는 객관적 정보가 아닌 왜곡된 아첨에 우쭐해지기도 하며, 약간의 수익으로 천하를 얻은 것처럼 흥분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철학의 정립이 없이는 일관된 삶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미성숙한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일관성을 갖지 못하는 것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삶의 철학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버핏의 철학

그렇다면, 도대체 워렌 버핏이 정립한 철학은 무엇이며, 그것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가? 이점에 대해서는 워렌 버핏 자신이 직접 명시적으로 이것이 내 철학이다라고 밝힌 것이 없기 때문에 여러 문헌과 언론에서 전해지는 것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빛나는 철학의 대가들도 이것이 내 철학이라고 단순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그가 한 말이나 에세이, 그리고 남긴 저술을 통해 우리가 짐작하고 있을 뿐이죠. 그런 점에서 워렌 버핏의 철학을 여기서 논하는 것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정립한 철학은 기업의 존재목적, 즉 기업은 주주의 이익추구를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라는 수단을 활용하여 이익을 보다 많이 취하기 위해 자신의 돈(자본)을 투자하는 것이 당연하지 그게 무슨 철학이란 말인가.

철학이란 원래 당연한 것이 무엇인지 따져서, 그 당연한 것을 확고하게 만들고, 그 기반 위에서 활동하려는 노력입니다. 우리나라 자본주의는 철학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기반에서 기업이론 또는 경영이론을 구성하고, 이것을 실천할 때,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당연한 것이 기업경영의 현장에서는 당연하게 운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워렌 버핏이 크게 분노했듯이 경영자들에게 부여하는 스톡옵션으로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는 예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스톡옵션 자체가 잘못된 발상이라거나 폐해를 가져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스톡옵션이 경영자들의 장기적인 성과창출의 인센티브 역할을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성과에 비해 불공정하리만큼 많은 보상이 주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국사회에서 유행하던 그 동안의 스톡옵션 관행이 어떻게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지 여기서 상세히 논의하지 않겠지만, 워렌 버핏의 계산법에 의하면 그런 관행은 무능한 경영자들의 땅 짚고 헤엄치기나 다를 바 없는 것이라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월 스트리트의 일반적인 관행이 그의 철학적 사유의 틀에서 볼 때 말도 안 되는 짓거리로 보였던 것입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기업에서 주주의 이익을 최대화 하기 위한 자원은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재무적 자원(financial resource)과 인적 자원(human resource)입니다. 이 두 가지 자원에 대해서 버핏이 어떤 철학을 지속적으로 지켜왔는지를 보겠습니다.

재무적 자원에 대한 철학

재무적 자원에 대한 그의 근원적 사유의 틀을 봅시다. 재무적 자원은 재무제표에 의해 계산됩니다. 자산은 자본과 부채를 합한 것이죠. 즉 자본은 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재무적 자원의 원천(ultimate source)은 주주들이 투자한 자본(capital)입니다. 자산이 아니라 자본이 자본주의 운영메커니즘의 핵심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워렌 버핏은 이 점을 아주 명확히 한 것이 다른 투자자나 경영자들과 다르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자산배분(asset allocation)과 자본배분(capital allocation)의 구분을 매우 모호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주주와 경영자간에 이견이 발생하며, 때로는 주주의 몫인지 경영자의 몫인지 불분명해진다는 점을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복잡한 수학적 계산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버핏은 자신이 투자한 자본이 자본비용(capital cost)을 능가함으로써 주주들에게 평균이상의 수익을 줄 수 있을 때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입니다. 이 말은 곧 투자한 자본이 투자된 기업의 자본계정의 일부를 구성함으로써 그 기업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주는 그 기업이 수행하는 사업을 경영자와 함께 직접 꾸려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는 자본을 어떤 사업에 집중적으로 장기간 투자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장기투자가 좋으냐 또는 단기투자가 좋으냐의 논의는 사실상 자본주의 사회의 운영 메커니즘에 대한 인식론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주식을 샀다는 말은 그 회사의 자본계정에 투자했다는 뜻이므로 그 회사의 주인으로서 경영자와 함께 사업을 장기간 운영하는 사람이고, 단기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돈 놓고 돈 먹는 카지노 놀이를 하는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어느 기업에 투자했다는 표현하지 않고, 어느 기업을 인수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이죠. 말하자면, 사업에 투자한 것이지 주식에 투자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러한 원칙을 지켜나가는 데에, 요즘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는 복잡한 금융공학적 자본시장 이론들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고 말합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재무담당자들 중에 상당수가 기묘한 금융이론을 내세우며 그럴 듯하게 떠들고 있지만, 정작 가장 기초적인 자본배분의 원리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란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주 중심의 자본주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워렌 버핏은 사회적 통찰력을 통해 돈(자본)의 근원을 이해하고, 자산을 운용한 것이 아니라 자본을 배분함으로써 주인의식을 가지고 기업을 경영해 왔습니다. 그는 주식투자자가 아니라 경영자입니다. 워렌 버핏의 자본주의에 대한 이러한 인식체계가 그의 자본을 장기간에 걸쳐 엄청난 부로 축적 시켜 왔습니다. 작은 부는 노력에 의해 가능하지만, 큰 부는 철학이 만들어 냅니다.

인적 자원에 대한 철학

워렌 버핏이 정립한 자본배분의 철학에 이어 두 번째 철학은 인적자원의 배분에 관한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은 기업 내에서 자원의 성격을 갖기도 하지만, 기업의 궁극적 목적이기도 합니다. 기업의 현실에서 보면, 사람을 한편으로는 성과창출의 자원으로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실존적으로 평등한 인간으로서 다루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워렌 버핏은 경영자로서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을 아주 잘 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인수대상으로 고려하는 기업은 단순히 기업의 재무적 전망뿐만 아니라, 경영자가 지속적으로 실천해 왔던 활동을 통해 그의 가치관 내지 윤리적 기준을 확인합니다. 워렌 버핏 자신이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경영하는 일 자체를 즐기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에게 완벽한 투명성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런 후에 그 기업을 인수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거의 완벽하게 위임합니다. 워렌 버핏이 자회사의 경영진에게 간섭해야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자신은 인재파견업을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들의 길을 막지 않는 것뿐입니다. 만약 내가 하는 일이 골프 팀을 관리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잭 니클라우스나 아놀드 파머가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나에게서 스윙하는 법에 대해 지도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워렌 버핏은 설사 자신의 견해와 경영진의 견해가 다를 때라도, 그래서 자신의 견해가 나중에 회사를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라도 위법적이거나 비도덕적이지 않은 한 그들의 견해를 존중해 줍니다. 그래서 그를 오랫동안 관찰한 기자의 말에 의하면, 워렌은 인내심의 천재라고까지 말합니다.

많은 경영자들이 무능한 부하들을 선발해 놓고는 끊임없이 그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가르치려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항상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택시를 탄 승객이 운전기사에게 목적지는 제대로 말해 주지 않은 채 저기 담배가게 앞에서 좌회전 하시고, 오른쪽 학교 앞에서는 30km로 가시고, 다음 신호에서 우회전하시고, ……”라고 한다면, 아마도 운전기사는 제대로 운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대로 믿을만한, 때로는 경탄할만한 운전기사가 아니면 아예 고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워렌 버핏의 인사철학입니다. 그래서 수십 개의 자회사와 수십만 명의 임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에는 단 12명이 일하고 있을 뿐입니다. 워렌 버핏은 광고계의 천재였던 데이비드 오길비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보다 작은 사람을 고용하면 우리는 난쟁이 회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큰 사람을 고용한다면 우리는 거인회사가 될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자회사에서 보내온 수많은 보고서를 보면서도 오후에는 낮잠을 잘 시간이 남는다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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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이명박 후보가 수많은 의혹과 시시비비를 뒤로 한 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것은 서민 경제의 활성화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큰 기대에 초를 칠 생각은 없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입니다.

진보적 색채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개혁적 의욕이 앞서는 바람에 종종 인간의 본능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욕망의 구조를 무시합니다. 그 댓가를 이번 대선에서 톡톡히 치렀습니다. 자본은 본능적 욕망의 구조를 가장 잘 파악합니다.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은 자본과 인간의 욕망구조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장을 적절히 활용하지 않은 개혁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볼셰비키 혁명으로부터 20세기의 수많은 공산주의 혁명이 자본과 인간의 욕망구조를 무시했기 때문에 실패로 끝났습니다.

보수적인 색채를 띤 사람들은 시장의 원리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통해 기득권을 쟁취하는 법을 터득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의 욕망구조를 무시하지 않는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할 것입니다. 여기에 자본은 냄새를 맡게 됩니. 자본의 맛을 안 사람들은 도저히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자본이란 마약과 같습니다. 마약을 잘 쓰면 약이 되지만, 그것에 탐닉하면 독이 됩니다. 자본에 내재하는 부패와 비리의 속성은 카지노의 잭팟만큼이나 짜릿짜릿한 쾌감을 안겨줍니다. 이 쾌감에 일단 도취되면 그것을 끊을래야 끊을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학습된 무능력상태(learned helplessness)에 빠집니다. 수십년간 보수정권이 남긴 유산은 부패와 무능이었습니다. 외환위기는 그래서 온 것입니다. 국민이 보수정권에 신물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수도승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진보진영은 이 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욕망구조에 소구하는 시장메커니즘을 결코 무시해선 안 됩니다. 안희정은 폐족이라는 말까지 사용하고 있으나, 진보진영은 일시적 패배에 자학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와 아주 비슷한 현대사를 경험했던 독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제2차 대전 이후에 보수적인 기민당(콘라트 아데나워)의 장기집권을 무너뜨리고 진보적인 사민당(빌리 브란트) 정부가 들어서서 동서화해 무드를 조성했습니다. 간첩사건 등 정치적 이슈 때문에 다시 기민당 정부(헬무트 콜)로 넘어 가서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통일 이후에 사민당(게하르트 슈뢰더) 정부가 개혁을 시도했고, 지금은 다시 기민당(앙겔라 메르켈)이 정부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비행기와 새가 비상하려면 좌우의 날개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정부나 국가의 발전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자본이라는 마약 앞에 무기력해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보수진영으로서의 이명박 정부는 이 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시장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지만, 수도승처럼 자본의 유혹과 부패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뿐입니다.

첫째, 공정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국민적 합의하에 매력적인 국가비전을 세우고 그것을 향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떡고물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논공행상 논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합니다. 인사에서 가장 공정한 방식은 역량중심(competency-based)의 선발과 배치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투명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업무처리의 불투명성이 많은 의혹을 일으킵니다. 의혹과 부패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길은 투명성을 높이는 길밖에 없습니다.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검찰도 특검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셋째, 효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아무리 공정하고 투명해도 비효율적으로 돼서는 안 됩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되, 적은 비용으로 해내야 합니다. 사실 효율성은 투명성과 공정성으로부터 선순환하는 구조로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올라갑니다.

만약, 이 세 가지 원리를 잘 지켜내면 서구 선진국 이상의 부강한 복지국가가 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지켜낼 수 있는 구체적인 시스템은 성과관리시스템(performance management system)와 역량관리시스템(competency management system)을 구축하여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어줍잖게 시도했는데 제도를 올바로 구축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공직자들 스스로 자신이 맡고 있는 직무의 존재목적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이것이 그 원인입니다. 이명박 정부 역시 이 세가지 원리가 어느 하나라도 구부러지거나 흠결이 생기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신뢰를 잃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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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