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인간에 대해 오해했다고 말씀하셨는데, 다시 한번 짧게 정리해 주시겠습니까?

<요약> 월 스트리트의 위기는 인간에 대한 오해가 근본적인 원인이었다면, 그것에 기인한 직접적인 원인은 경영자에게 너무 높은 연봉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돈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개입되면 사태의 본질이 왜곡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 대한 잘못된 전제와 그 위에 세운 시장만능의 사상이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오늘날과 같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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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불신과 불안에서 벗어나 신뢰와 평안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 상업화와 경쟁의 논리로부터 벗어나서, 공동체적 유대감(solidarity)을 회복할 수는 없을까?

신자유주의자들에게는 매우 겁나는 화두일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서로 도와주는 것은 그들의 자활의지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말처럼, 가난은 자조노력이 부족해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국가나 사회가 도와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국가 전체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신자유주의적 발상이 정말 맞을까요?

 

이런 발상은 전혀 근거 없는 잘못된 믿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복지수준이 높은 북구의 여러 나라,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을 살펴보면, 신자유주의 이념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 넣은 이번 금융위기에서도 스칸디나비아의 노르딕 국가들은 건재합니다. 이들 국가는 국민의 세금부담율이 평균 70%를 넘습니다. 소득의 70%를 세금과 보험료의 명목으로 정부가 거두어 간다는 말입니다. 미국식 신자유주의자가 볼 때, 전체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국민을 수탈한다고도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정부가 자신을 학대하거나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갹출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의 완벽한 복지시스템이 작동합니다. 이러한 국가운영시스템과 정부에 대해 거의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뢰는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앞서 얘기한 공정성과 투명성에서 나옵니다.

 

국가운영시스템이 공정하고 투명하다면, 신뢰가 생기고 공동체 운영에 대해 안심하게 됩니다. 그러면 악을 쓰거나 속임수를 쓰면서까지 영악스럽게 경쟁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사회안전망이 탄탄하기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타인을 배려하게 됩니다. 만약 두터운 사회안전망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번 실패하면 쪽박을 차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하고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일해야 합니다. 긴장하면 자신의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실패한 사람이 재기할 기회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좌절하거나 낙심합니다. 때로는 분노하면서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됩니다. 그러므로 충분한 사회안전망은 설사 실패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다시 도전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쿠션의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조선일보의 보도를 인용합니다.

 

덴마크로 대표되는 북유럽의 높은 경쟁력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유럽은 세금 많이 내기로 유명한 지역. 높은 세금은 일하려는 인센티브를 감소시키므로 노동 공급을 줄이고 성장에도 부정적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실제로 북유럽의 노동 시간은 짧다. 그런데 왜 이들 나라의 경쟁력과 생산성은 높을까?

 

코롬자이 전 국장은 높은 세금에 기반한 탄탄한 사회안전망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해고되더라도 사회안전망이라는 비빌 언덕이 있으므로, 구성원들이 유연한 노동시장 같은 개혁을 덜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덴마크는 사회안전망이 물 흐르듯 유연한 노동시장을 만들어낸 환상적 사례라며 미국의 자동차 노조와는 확연하게 대비된다고 평했다."

(발 코롬자이 OECD 국가연구국장와의 대담, 조선일보 2009.6.13일자 C2)

 

이런 분명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이념에 세뇌된 사람들은 의심할 것입니다.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를 파괴하는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의 표면에는 성공한 사람이 보상받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이면에는 실패한 사람은 가난하게 사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라는 생각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크고 작은 실패를 하며, 또한 수많은 좌절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사회에 성공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될만한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습니다. 몇 사람을 위해 다수의 시민들이 고통 받는 사회가 과연 정의로운 사회인지 고민해 봐야 할 것입니다.


쌍용자동차에서 해고조치된 근로자들과 택배운송노조원들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시위하는 이유를 살펴야 합니다. 일부 좌빨 극렬분자들의 선동으로 보아선 안 됩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습니다. 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그들을 잘라내는 자본주의의 비인간적 폭력성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함께 더불어 살자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주장을 할 수도 있습니다. 북구모델은 꿈 같은 이야기일 뿐 우리나라 현실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퍼주기식 복지를 실현하면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으려는 무임승차자들이 생겨나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것으로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얼핏 보면,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놀고 먹는 것도 어쩌다 한두 번이지 맨날 놀고만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몰라서 하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앞서 소개한 나카타니 이와오(
中谷巖) 교수의 견해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덴마크에서는 기업이 언제나 간단한 잉여인원을 해고할 수 있다. 그렇게 해고된 노동자는 이에 대해서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해고되어도 실업보험이 넉넉히 지급되므로 생활의 불안이 없다.

 

이와 동시에 덴마크에서는 임금은 철저히 동일노동 동일임금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한, 같은 회사에서 몇 년씩 근무한다고 해도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기술 승급인데, 실업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전국적으로 훌륭한 직업훈련소가 정비되어 있어서, 해고되면 무료로 즉시 직업훈련학교에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가끔 해고되는 것이 오히려 기능훈련을 할 수 있어 미래가 열린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의 이점은 노동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매크로적으로는 노동시장의 유동성이 확보된다는 이점도 있다. 이것은 기업에게도 대단히 고마운 것이다. 왜냐하면, 과잉고용으로 골치를 앓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인원이 과잉되면 즉시 해고하면 되므로, 그런 의미에서 노동비용은 당시의 경제정세에 맞추어 변화시킬 수 있는 가변비용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국가 수준에서 보아도 이런 시스템이 있으면 산업구조의 전환이 용이해진다. 경쟁력이 없어진 산업에서 고용조정이 실시되면 해고된 노동자는 직업훈련학교에서 장래에 유망한 산업에 적합한 기술을 연마할 수 있다. 기업은 새로운 산업을 시작해도 기술을 가진 노동자를 즉시 조달할 수 있으므로 산업구조의 전환이 원활해진다.”

(나타카니 이와오(中谷巖), 이남규 옮김, 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 기파랑 2009, 351~352)

 

우리도 이런 국가를 만들 수 있습니다. 덴마크 사람들이 했는데,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사회적 연대(solidarity)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잘 알다시피, 덴마크는 기독교 국가입니다. 국민의 대부분이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개신교도들입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 장로가 두 번이나 대통령을 했고 이번에는 세 번째인데, 그 때마다 나라는 점점 갈등과 불안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기독교 장로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어떤 국가를 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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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최근에 집어 든 책 중에서, 매우 설득력 있는 책을 읽었습니다. 한 권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일본의 사회제도의 개혁과 규제완화를 시도해 왔던 경제학자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는 고백서입니다. 일본사회에서 이런 양심적인 학자가 있다는 점에 감동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이론과 미국이라는 풍요로운 사회에 심취하게 된 동기, 일본 귀국후의 개혁작업, 그리고 바로 자신이 추진했던 시장경제 원리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카타니 이와오, 이남규 옮김, 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 기파랑 2009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메커니즘은 인류와 자연에 심대한 상처를 주는 '괴물'이라는 것입니다. 그 괴물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상처를 만들어 냈다고 진단했습니다.

 

첫째, 세계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둘째, 소득격차를 확대시킨다.

셋째, 지구환경을 파괴한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이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한 면만을 보는 주장임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어서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나카타니 이와오(中谷巖) 교수는 아울러 일본의 재생을 위한 여러 제언을 했습니다. 이 제언들은 우리나라의 향후 경제운용메커니즘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에도 상당한 시사점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경제란 돈에 관한 문제도 아니고 합리적인 논리의 문제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경제학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문제를 다루는 것도 아니고, 시장에서의 냉정한 경쟁우위의 문제를 다루는 것도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경제는 따듯한 인간애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경제학은 그것을 추구하는 여러 학문분야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런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따듯한 시장메커니즘을 만들 수 있음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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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자본주의에 대한 입장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자본주의를 전복시켜야 한다고 급진적으로 생각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공산진영이 붕괴되면서 자본주의적 이상이 실현되어 역사의 종말이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자본주의를 전복시킬 수도 없으며, 오늘날 인류의 경제활동양태를 자본주의의 완성된 모습으로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적절한 수준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적절히 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적절이란 그 사회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몰상식한 수준의 고삐 풀린 자본주의는 어떤 형태로든지 반드시 적절히 통제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도 운용형태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식 자본주의, 프랑스식 자본주의, 독일식 자본주의, 중국식 자본주의, 일본식 자본주의, 북구식 자본주의 등등….

 

그러나, 크게 보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사익을 거의 무제한으로 추구하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성장 발전이 가능하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식 자본주의입니다. 그것은 너무 지나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므로 어느 정도는 규제함으로써 질서를 잡아야 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소위 독일식 자본주의입니다. 무제한의 사익추구를 허용하는 방식을 신자유주의적(neoliberal) 자본주의라고 부르고, 사익추구는 사회적 맥락에서 규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질서자유주의적(Ordoliberal) 자본주의라고 합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무제한적 사익(私益)추구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질서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질서자유주의는 주로 독일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주창되었습니다. 전후에는 독일 경제발전 모델로 적용되어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독일의 경제적 질서를 만드는 데 힘썼던 사람들은 단순히 학자들만의 공헌은 아니었습니다. 학자들의 사상을 경제적 현실에 절묘하게 응용했던 정치가들의 식견도 한 몫을 했습니다.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876~1967) 초대 수상, 에어하르트(Ludwig Erhard, 1897~1977) 경제장관 등은 소위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 모델을 실천함으로써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전후 독일은 두 가지 점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인물도 고갈되었습니다. 유능한 인재들은 대부분 나치에 가담해서 전쟁범죄자로 낙인이 찍힌 상태였기 때문에, 국가경영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인재고갈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더 괴로운 것은 국내외적으로 비난하는 도덕성 문제였습니다. 인적 자원의 결핍과 도덕적 낭패감이라는 이중적 고통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독일은 사회적 시장경제모델을 적용함으로써 전후 20여 년 만에 두 가지 이슈를 깔끔하게 해결해냈습니다.

 

유럽인들은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르면서, 인간의 이기심은 무한하지만, 그것을 제약해야 할 인간의 도덕성은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회가 그런 취약한 기반 위에 형성된다면, 어떤 비극이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반성이 일었습니다. 실존주의와 탈근대적(post-modern) 사상들이 근대문명의 이성적 합리화 과정에 대한 반성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그렇게 신뢰할만한 것이 아님을 알았던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합리적 행동보다 사회적 공헌과 인간적 연합(solidarity), 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국가운영정책을 세워 실천해왔습니다.

 

유럽의 여러 대륙국가들,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과 북구의 여러 나라들은 그 나름대로의 정치적 경제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조금씩 변형된 질서자유주의를 경제정책으로 실천해왔습니다. 어떤 나라는 성과가 좋았고, 어떤 나라는 성과가 덜 좋았던 차이가 있긴 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험한 것은, 이런 나라들이 세월이 흐를수록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잘 버텼는데, 워낙 미국의 영향력이 강력해지니까, 버티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염려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철저하리만큼 신자유주의 사상에 경도되어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추종하는 신자유주의란, 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기는 행위는, 타인을 명시적으로 해코지하지 않는 한, 무제한 허용되어야 한다는 이념입니다. 오히려 욕망을 넘어선 탐욕을 바람직한 것으로 여깁니다. 미국인에게는 사회적 연대(solidarity)보다는 개인간의 계약이 더 우선하기 때문에 개인주의적 사고가 팽배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미국이 이민자들로 구성된 국가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자유로운 사익추구와 그것을 위한 기회의 평등을 지상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나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런 믿음은 우리를 배신했습니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가 남긴 교훈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금융시장이 붕괴되었다는 점

둘째, 중산층이 급격히 줄어들고 양극화 되고 있다는 점

셋째, 심각한 수준의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점

 

이들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차차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자본주의 자체가 엄청난 폐해를 가져올 것으로 예견하고 경고했던 수많은 사상가들 중에서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의 견해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자본주의를 가장 강도 높게 비판했던 사람으로 칼 마르크스가 핵심이지만, 칼 폴라니의 견해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이었던 폴라니는 미국에서 1944, 그러니까 2차 대전 중에 심혈을 기울인 자신의 책 『거대한 변환』(Great Transformation, 박현수 옮김, 민음사 1991))을 발표합니다. 문장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지만, 귀중한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핵심내용은, 결코 상품화하여 거래할 수 없는 노동, 토지, 화폐를 시장에서 자유로운 거래를 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시장메커니즘은 결국 악마의 맷돌”(Satanic Mills)로 변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악마의 맷돌에 들어갈 수 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인간이 상품화되어 거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에도,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노동시장에다 상품화하여 팔아야 먹고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토지는, 현재의 모든 인류와 앞으로 올 인류에게 귀속되는 것이어서 결코 상품화되어 거래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토지 또한 시장에서 자유로이 거래되고 투기의 대상이 됩니다. 화폐는 단순한 교환 또는 지불의 수단이어야 하는데, 이것을 상품화함으로써 금융시장에서 돈 놓고 돈 먹는잘못된 거래들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인간은, 시장만능을 지향하는 자본주의 제도를 통해 자기 자신과 자연을 악마의 맷돌속으로 집어 던지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특히 미국인들은 이런 일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해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라고 가르쳤습니다. 따르지 않는 경우에는 국제 금융기구를 통해 거의 강압적으로 밀어붙였습니다. (한국의 IMF사태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오늘날 인류는 악마의 맷돌에 갈려 온 몸과 정신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정신 속에 아주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이 어쩌다 이런 일을 앞장서서 하게 되었는지를 이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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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적절한 권력분배에 관하여 매우 상이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권력의 완전히 평등한 분배, <11>를 믿는 반면, 자본주의는 경제적 부적격자들을 경제 활동에서 축출하고 소멸시키는 것이 경제적 적격자의 의무라고 믿는다. <적자생존>과 구매력에 있어서의 불평등은 자본주의의 효율성이 추구하는 모든 것이다. 이를 좀더 엄격하게 말하면, 자본주의는 노예제도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미국 남부는 그런 제도를 2백 년 이상 동안 가졌었다. 민주주의는 노예제도와는 양립하지 못한다.”

(레스터 써로우, 유재훈 옮김, 자본주의의 미래, 고려원 1997, 349)


 

이처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그 이념체계가 서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인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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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맥나마라는 미국사회를 온통 계량화하려고 했습니다.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했던 7년간뿐만 아니라 그 후 세계은행(World Bank)총재로 근무했던 13년간을 합치면, 그의 영향력은 그 누구보다 컸습니다.

그러나, 품질관리 전문가이자 통계학자였던 에드워즈 데밍(W. Edwards Deming, 1900~1993)은 미국경영학의 폐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 국무부 공무원들에게 미국의 경영기법을 우방 국가에 수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계량화하는 숫자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품질혁신을 위한 혁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이익이나 권력, 명예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었던 사람처럼 일생을 살았습니다. 나는 데밍을 단순한 경영학자를 뛰어 넘는 위대한 인물로 여깁니다. 내가 그를 추앙하는 이유는 그의 사상에서 단순한 통계학자가 아닌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본적인 경영사상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제로 일본산 제품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고, 이를 통해 일본이 경제부흥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는 품질이 숫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에서 나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일본 제품들이 미국 시장을 석권하자, 미국기업의 CEO들은 일본품질관리의 아버지 데밍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미국 자동차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데밍을 초대해 강연을 들었습니다.

 

노구를 이끌고 나온 데밍은 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미국이 왜 제대로 경쟁하지 못할까요? 일본의 임금수준이 낮아서도 아니고, 도요타 시티에 최신식 시설이 있어서도 아니고, 엔화 약세 때문도 아닙니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바로 여러분들, 경영진입니다!”

 

데밍은 자동차 업계의 최고위직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사장이었던 짐 맥도널드(Jim McDonald)에게 엄한 질책을 퍼부었습니다. GM이 안고 있는 품질문제의 85%는 그의 책임이라고 혹평했습니다.

 

그 후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까요? GM의 생산책임자들이 데밍을 몰래 초빙했다가는 목이 달아나는 사태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 후 자동차업계에서는 데밍이 불 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유명해졌지만, 자신의 직무를 방기하고 있던 최고경영진에 대한 질책과는 달리, 학습하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따듯한 애정을 보이곤 했습니다. 기업체의 고위직 임원들이 시스템의 변화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경우, 데밍은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날 미국 자동차 업계가 파산의 지경을 맞게 된 것은 노사문제가 아니라 경영진의 문제였습니다. 품질이 계량화를 통해 이룰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품질은 인간의 영혼과 정신으로부터 나옵니다. 제품의 품질, 기업의 품질, 조직의 품질, 국가의 품질은 지도자의 정신과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의 품질 역시 그 정신과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미국의 국가품질이 엉망이 된 것은 그들의 정신문화가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데밍은 미국 외교부 직원들에게 미국식 경영을 우방에 수출하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데밍에 관한 에피소드는 안드레아 가보, 심현식 옮김, 『자본주의 철학자들』, 황금가지 2006, 373~445쪽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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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월 스트리트에서 큰(富)를 이룬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월 스트리트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워렌 버핏의 성공은 연구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나는 워렌 버핏의 성공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리에 근거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자신의 일을 즐겼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원리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 그 자체가 곧 일하게 하는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여 그것을 일관되게 실천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일을 항상 즐거워했기 때문에 그 일을 평생토록 해왔고, 그래서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점은 <진정한 자본가, 워렌 버핏>에서 다루었으므로, 이번에는 두 번째 원리인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여 일관되게 실천해 왔다는 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워렌 버핏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수많은 문헌들이 시중에 나와 있지만, 정작 워렌 버핏은 자신의 사상을 책으로 펴낸 적이 없습니다. 매년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보내는 메모를 통해 그의 사상을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잘 알다시피, 철학이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근원적 사유를 말합니다. 이러한 근원적 사유의 틀이 형성되지 않으면, 사물이나 현상의 실재와 본질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쉽게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하고, 때로는 객관적 정보가 아닌 왜곡된 아첨에 우쭐해지기도 하며, 약간의 수익으로 천하를 얻은 것처럼 흥분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철학의 정립이 없이는 일관된 삶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미성숙한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일관성을 갖지 못하는 것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삶의 철학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버핏의 철학

그렇다면, 도대체 워렌 버핏이 정립한 철학은 무엇이며, 그것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가? 이점에 대해서는 워렌 버핏 자신이 직접 명시적으로 이것이 내 철학이다라고 밝힌 것이 없기 때문에 여러 문헌과 언론에서 전해지는 것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빛나는 철학의 대가들도 이것이 내 철학이라고 단순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그가 한 말이나 에세이, 그리고 남긴 저술을 통해 우리가 짐작하고 있을 뿐이죠. 그런 점에서 워렌 버핏의 철학을 여기서 논하는 것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정립한 철학은 기업의 존재목적, 즉 기업은 주주의 이익추구를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라는 수단을 활용하여 이익을 보다 많이 취하기 위해 자신의 돈(자본)을 투자하는 것이 당연하지 그게 무슨 철학이란 말인가.

철학이란 원래 당연한 것이 무엇인지 따져서, 그 당연한 것을 확고하게 만들고, 그 기반 위에서 활동하려는 노력입니다. 우리나라 자본주의는 철학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기반에서 기업이론 또는 경영이론을 구성하고, 이것을 실천할 때,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당연한 것이 기업경영의 현장에서는 당연하게 운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워렌 버핏이 크게 분노했듯이 경영자들에게 부여하는 스톡옵션으로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는 예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스톡옵션 자체가 잘못된 발상이라거나 폐해를 가져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스톡옵션이 경영자들의 장기적인 성과창출의 인센티브 역할을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성과에 비해 불공정하리만큼 많은 보상이 주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국사회에서 유행하던 그 동안의 스톡옵션 관행이 어떻게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지 여기서 상세히 논의하지 않겠지만, 워렌 버핏의 계산법에 의하면 그런 관행은 무능한 경영자들의 땅 짚고 헤엄치기나 다를 바 없는 것이라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월 스트리트의 일반적인 관행이 그의 철학적 사유의 틀에서 볼 때 말도 안 되는 짓거리로 보였던 것입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기업에서 주주의 이익을 최대화 하기 위한 자원은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재무적 자원(financial resource)과 인적 자원(human resource)입니다. 이 두 가지 자원에 대해서 버핏이 어떤 철학을 지속적으로 지켜왔는지를 보겠습니다.

재무적 자원에 대한 철학

재무적 자원에 대한 그의 근원적 사유의 틀을 봅시다. 재무적 자원은 재무제표에 의해 계산됩니다. 자산은 자본과 부채를 합한 것이죠. 즉 자본은 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재무적 자원의 원천(ultimate source)은 주주들이 투자한 자본(capital)입니다. 자산이 아니라 자본이 자본주의 운영메커니즘의 핵심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워렌 버핏은 이 점을 아주 명확히 한 것이 다른 투자자나 경영자들과 다르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자산배분(asset allocation)과 자본배분(capital allocation)의 구분을 매우 모호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주주와 경영자간에 이견이 발생하며, 때로는 주주의 몫인지 경영자의 몫인지 불분명해진다는 점을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복잡한 수학적 계산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버핏은 자신이 투자한 자본이 자본비용(capital cost)을 능가함으로써 주주들에게 평균이상의 수익을 줄 수 있을 때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입니다. 이 말은 곧 투자한 자본이 투자된 기업의 자본계정의 일부를 구성함으로써 그 기업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주는 그 기업이 수행하는 사업을 경영자와 함께 직접 꾸려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는 자본을 어떤 사업에 집중적으로 장기간 투자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장기투자가 좋으냐 또는 단기투자가 좋으냐의 논의는 사실상 자본주의 사회의 운영 메커니즘에 대한 인식론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주식을 샀다는 말은 그 회사의 자본계정에 투자했다는 뜻이므로 그 회사의 주인으로서 경영자와 함께 사업을 장기간 운영하는 사람이고, 단기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돈 놓고 돈 먹는 카지노 놀이를 하는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어느 기업에 투자했다는 표현하지 않고, 어느 기업을 인수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이죠. 말하자면, 사업에 투자한 것이지 주식에 투자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러한 원칙을 지켜나가는 데에, 요즘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는 복잡한 금융공학적 자본시장 이론들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고 말합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재무담당자들 중에 상당수가 기묘한 금융이론을 내세우며 그럴 듯하게 떠들고 있지만, 정작 가장 기초적인 자본배분의 원리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란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주 중심의 자본주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워렌 버핏은 사회적 통찰력을 통해 돈(자본)의 근원을 이해하고, 자산을 운용한 것이 아니라 자본을 배분함으로써 주인의식을 가지고 기업을 경영해 왔습니다. 그는 주식투자자가 아니라 경영자입니다. 워렌 버핏의 자본주의에 대한 이러한 인식체계가 그의 자본을 장기간에 걸쳐 엄청난 부로 축적 시켜 왔습니다. 작은 부는 노력에 의해 가능하지만, 큰 부는 철학이 만들어 냅니다.

인적 자원에 대한 철학

워렌 버핏이 정립한 자본배분의 철학에 이어 두 번째 철학은 인적자원의 배분에 관한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은 기업 내에서 자원의 성격을 갖기도 하지만, 기업의 궁극적 목적이기도 합니다. 기업의 현실에서 보면, 사람을 한편으로는 성과창출의 자원으로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실존적으로 평등한 인간으로서 다루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워렌 버핏은 경영자로서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을 아주 잘 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인수대상으로 고려하는 기업은 단순히 기업의 재무적 전망뿐만 아니라, 경영자가 지속적으로 실천해 왔던 활동을 통해 그의 가치관 내지 윤리적 기준을 확인합니다. 워렌 버핏 자신이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경영하는 일 자체를 즐기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에게 완벽한 투명성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런 후에 그 기업을 인수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거의 완벽하게 위임합니다. 워렌 버핏이 자회사의 경영진에게 간섭해야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자신은 인재파견업을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들의 길을 막지 않는 것뿐입니다. 만약 내가 하는 일이 골프 팀을 관리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잭 니클라우스나 아놀드 파머가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나에게서 스윙하는 법에 대해 지도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워렌 버핏은 설사 자신의 견해와 경영진의 견해가 다를 때라도, 그래서 자신의 견해가 나중에 회사를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라도 위법적이거나 비도덕적이지 않은 한 그들의 견해를 존중해 줍니다. 그래서 그를 오랫동안 관찰한 기자의 말에 의하면, 워렌은 인내심의 천재라고까지 말합니다.

많은 경영자들이 무능한 부하들을 선발해 놓고는 끊임없이 그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가르치려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항상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택시를 탄 승객이 운전기사에게 목적지는 제대로 말해 주지 않은 채 저기 담배가게 앞에서 좌회전 하시고, 오른쪽 학교 앞에서는 30km로 가시고, 다음 신호에서 우회전하시고, ……”라고 한다면, 아마도 운전기사는 제대로 운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대로 믿을만한, 때로는 경탄할만한 운전기사가 아니면 아예 고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워렌 버핏의 인사철학입니다. 그래서 수십 개의 자회사와 수십만 명의 임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에는 단 12명이 일하고 있을 뿐입니다. 워렌 버핏은 광고계의 천재였던 데이비드 오길비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보다 작은 사람을 고용하면 우리는 난쟁이 회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큰 사람을 고용한다면 우리는 거인회사가 될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자회사에서 보내온 수많은 보고서를 보면서도 오후에는 낮잠을 잘 시간이 남는다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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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워렌 버핏이 자신이 축적한 자본의 대부분을 친구인 빌 게이츠가 세운 재단에 기부하기로 발표함으로써,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금융위기를 맞아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된 그는 순수한 투자가로서의 일생을 살았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세계적인 부자들이 대개 기업을 창업했거나 그 후손들인데 비해 워렌 버핏의 경우는 부의 축적과정이 남달랐다는 점에서 집중조명의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단 한 권의 책도 낸 적이 없지만, 그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나왔습니다. 나는 버핏이 투자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일에 대한 그의 철학을 재조명해 보고 싶었습니다.

 

버핏의 두 가지 성공원리

월 스트리트에서 큰 부를 이룬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월 스트리트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워렌 버핏의 성공은 연구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나는 워렌 버핏의 성공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리에 근거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자신의 일을 즐겼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원리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 그 자체가 곧 일하게 하는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여 그것을 일관되게 실천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철학은 <철학으로 일군 자본주의, 워렌 버핏>에서 다룹니다.

 

노동의 의미

노동을 의미하는 독일어 아르바이트(Arbeit)라는 말에는 고통스럽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한다면, 그러한 노동에는 항상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서구 자본주의가 그 틀을 갖추게 되면서부터, 즉 기업이 주식회사의 형태를 갖추고 부(wealth)의 축적이 자본(capital)의 형태로 전환되어 투자의 대상이 되면서부터, 부의 축적에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이 점차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실물경제가 금융경제를 압도하던 시대에서 거꾸로 금융경제가 실물경제를 지배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앞으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인류의 노동의 역사에서 매주 중요한 전기를 제공했습니다. 아르바이트가 더 이상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즐거움을 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운동 선수가 그 운동을 통해 큰 돈을 벌겠다고 한다면 그 운동이 고통을 수반할 수 있겠지만, 운동 그 자체가 즐거워서 하고 그 결과로 돈을 버는 것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성숙한 자본주의의 진정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노동과 노동 그 자체가 즐거워서 하는 노동은 엄청난 생산성의 차이를 나타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은 돈 버는 것이 생계를 위해서나 풍요로운 삶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돈 버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 됩니다. 워렌 버핏이 바로 그런 사람이지요.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그러한 부로 누릴 수 있는 어떠한 사치와 안락함을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부를 축적하는 세 가지 길

자본주의 시대에서 큰 부를 축적하는 방식은 세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기업가가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비즈니스의 길을 열어 창업한 헨리 포드, 앤드류 카네기, 빌 게이츠가 그런 사람입니다.

둘째, 경영자가 되는 길입니다. 기업가가 만들어 놓은 회사의 경영전문가로 활동하여 성과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음으로써 부를 축적합니다. 잭 웰치, 샌포드 웨일 등이 이 부류에 속합니다.

셋째, 투자가의 길을 걷습니다. 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했던 존 템플턴, 워렌 버핏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기업가로 출발했든, 경영자였든, 투자가였든 상관없이 이들의 공통점은 자본가로서의 철학을 분명히 했다는 점입니다. 축적된 부, 즉 자본을 가지고 있으면 자본가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출발은 다르더라도 일단 자본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 누구나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심각하게 고려합니다. 투하한 자본비용 이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곳에 재배분함으로써 자본가의 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됩니다.

 

진정한 자본가란 어떤 사람인가

이러한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자본가는 자본의 효율적 운용을 통해 보다 더 성숙한 자본주의로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사회의 장기적 발전에 쓸 수 있도록 공헌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거기에다 자신의 부를 아낌없이 쏟아 붓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밑거름이 됩니다. 이러한 밑거름을 토대로 자본의 효율적 운용메커니즘을 통해 서구 자본주의의 선순환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워렌 버핏이 기부한 금액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축적한 부, 즉 자본을 어떻게 배분했을 때 가장 효과가 클 것인가를 꼼꼼히 따져 봤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나서, 인류의 질병과 가난을 퇴치하려는 사명을 가진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것입니다. 투자가로 출발했던 워렌 버핏이 결국은 서구 자본가들이 밟았던 진정한 자본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자본가는 없고 기업가만 있는 셈인가요?

그들이 어떤 길을 갔든,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비법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평범한 상식이고 우리가 다 아는 진리를 평생 실천했던 사람들입니다.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방식을 지속한다면, 누구든지 노후를 풍족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부를 축적하는 방식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삶과 노동에 관한 철학이 필요합니다. 부의 지속적인 축적은 진실을 바라보는 시각과 진정한 노동철학이 정립되어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큰 부를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그것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생애가 끝날 때까지 그 일을 해낼 수 있었고, 그 결과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워렌 버핏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회 있을 때마다 말했듯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했고, 그것이 투자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 즉 돈 버는 방법이 그의 적성에 맞았고, 그것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을 뿐이죠.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버크셔 해서웨이를 경영하는 일을 사랑합니다. 만약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것이 오래 사는 것에 도움이 된다면, 므두셀라(노아 홍수 이전의 족장으로서 969세까지 살아 가장 오래도록 장수한 성경상의 인물)의 기록마저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즐겁게 일했기 때문에 항상 성공했는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도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투자에 여러 차례 실패해 왔습니다. 1960년대에는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섬유회사에 투자하여 경영권까지 인수했으나, 그의 고백대로 이 투자는 최악의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 회사는 후일 그가 투자하거나 회사를 인수하기 위한 지주회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변화되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구리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큰 재앙은 아니었지만 실패로 끝났고, 월 스트리트의 투자은행이었던 살로몬 브라더스의 회장으로 취임한 것도 성공적이진 못했습니다. 21세기가 되면서 달러화 약세에 베팅하는 외환투자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파생상품과 투자은행의 위기에서 그는 또 다시 막대한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큰 손실을 입었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보상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신나는 일을 계속하면서 즐거워할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진정한 자본가의 모습을 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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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이명박 후보가 수많은 의혹과 시시비비를 뒤로 한 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것은 서민 경제의 활성화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큰 기대에 초를 칠 생각은 없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입니다.

진보적 색채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개혁적 의욕이 앞서는 바람에 종종 인간의 본능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욕망의 구조를 무시합니다. 그 댓가를 이번 대선에서 톡톡히 치렀습니다. 자본은 본능적 욕망의 구조를 가장 잘 파악합니다.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은 자본과 인간의 욕망구조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장을 적절히 활용하지 않은 개혁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볼셰비키 혁명으로부터 20세기의 수많은 공산주의 혁명이 자본과 인간의 욕망구조를 무시했기 때문에 실패로 끝났습니다.

보수적인 색채를 띤 사람들은 시장의 원리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통해 기득권을 쟁취하는 법을 터득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의 욕망구조를 무시하지 않는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할 것입니다. 여기에 자본은 냄새를 맡게 됩니. 자본의 맛을 안 사람들은 도저히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자본이란 마약과 같습니다. 마약을 잘 쓰면 약이 되지만, 그것에 탐닉하면 독이 됩니다. 자본에 내재하는 부패와 비리의 속성은 카지노의 잭팟만큼이나 짜릿짜릿한 쾌감을 안겨줍니다. 이 쾌감에 일단 도취되면 그것을 끊을래야 끊을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학습된 무능력상태(learned helplessness)에 빠집니다. 수십년간 보수정권이 남긴 유산은 부패와 무능이었습니다. 외환위기는 그래서 온 것입니다. 국민이 보수정권에 신물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수도승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진보진영은 이 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욕망구조에 소구하는 시장메커니즘을 결코 무시해선 안 됩니다. 안희정은 폐족이라는 말까지 사용하고 있으나, 진보진영은 일시적 패배에 자학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와 아주 비슷한 현대사를 경험했던 독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제2차 대전 이후에 보수적인 기민당(콘라트 아데나워)의 장기집권을 무너뜨리고 진보적인 사민당(빌리 브란트) 정부가 들어서서 동서화해 무드를 조성했습니다. 간첩사건 등 정치적 이슈 때문에 다시 기민당 정부(헬무트 콜)로 넘어 가서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통일 이후에 사민당(게하르트 슈뢰더) 정부가 개혁을 시도했고, 지금은 다시 기민당(앙겔라 메르켈)이 정부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비행기와 새가 비상하려면 좌우의 날개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정부나 국가의 발전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자본이라는 마약 앞에 무기력해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보수진영으로서의 이명박 정부는 이 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시장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지만, 수도승처럼 자본의 유혹과 부패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뿐입니다.

첫째, 공정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국민적 합의하에 매력적인 국가비전을 세우고 그것을 향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떡고물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논공행상 논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합니다. 인사에서 가장 공정한 방식은 역량중심(competency-based)의 선발과 배치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투명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업무처리의 불투명성이 많은 의혹을 일으킵니다. 의혹과 부패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길은 투명성을 높이는 길밖에 없습니다.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검찰도 특검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셋째, 효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아무리 공정하고 투명해도 비효율적으로 돼서는 안 됩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되, 적은 비용으로 해내야 합니다. 사실 효율성은 투명성과 공정성으로부터 선순환하는 구조로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올라갑니다.

만약, 이 세 가지 원리를 잘 지켜내면 서구 선진국 이상의 부강한 복지국가가 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지켜낼 수 있는 구체적인 시스템은 성과관리시스템(performance management system)와 역량관리시스템(competency management system)을 구축하여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어줍잖게 시도했는데 제도를 올바로 구축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공직자들 스스로 자신이 맡고 있는 직무의 존재목적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이것이 그 원인입니다. 이명박 정부 역시 이 세가지 원리가 어느 하나라도 구부러지거나 흠결이 생기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신뢰를 잃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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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