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1.02 인간이란 무엇인가(5)_존재와 실존 (1)
  2. 2008.12.30 존재와 의식
  3. 2008.10.21 비전체계_장기목표를 세워야…

지난 이야기

          인간이란 무엇인가(1)_인간을 보는 눈
          인간이란 무엇인가(2)_경영학의 인간관 문제
          인간이란 무엇인가(3)_이데올로기의 문제
          인간이란 무엇인가(4)_이데올로기와 이성적 판단능력


특정한 지배적 관념이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현실에서, 인간에 대한 지배적 관념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 마디로 인간을 뭐로 볼 것인가에 관한 얘기입니다. 서양철학은 사물의 본질(essence)을 밝히는 것이 주목적이었습니다. 인간의 본질에 관해서도 탐구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부유했지만 우울하게 일생을 보냈던 덴마크의 철학자 죄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는 인간에 대한 객관적 본질보다는 주관적 존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본질이란 실체나 대상을 구성하는 속성과 그 인과관계 또는 존재목적을 의미하기 때문에, 여타 사물에 대해서는 그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의미가 있지만, 인간에게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구성요소와 그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속성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을 확보해주는 궁극적 목적을 찾는 것도 철학적 사유로는 밝힐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질(essence)에 대한 질문을 인간의 존재(existence)에 대한 질문으로 바꿔야 했습니다.

 

독일어의 Existenz, 영어의 existence를 일본사람들은 실존(實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실제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실존과 존재의 미세한 차이,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존재는 나 자신 밖에 있는 모든 대상을 말합니다. 그 대상이란 이 우주에 있는 모든 것입니다. 여기에는 존재의 본질을 묻는 본질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본질적 사고의 특징은 요소환원주의적입니다. 어떤 것의 객관적 속성을 분석하려면, 그 대상을 분해하여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요소를 찾아내고 그 요소의 성질과 작용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과학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분석적 사고력은 필수입니다.

 

과학자들이 우주탄생의 비밀과 그 운행원리를 찾기 위해 물질은 원자, 원자핵, 전자, 쿼크 등의 소립자로 쪼개서 분석합니다. 그리고 그들간의 상호작용원리를 찾으려고 합니다. 본질(essence)을 찾아내기 위해서입니다. 본질을 찾아내는 행위는 사물의 이치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고 매우 중요합니다. 국가의 본질, 조직의 본질, 직무의 본질, 노동의 본질 등 일상에서 접하는 수많은 개념과 사물들의 본질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서 말한 이데올로기 홍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성의 날을 날카롭게 세워야 하고, 사물의 본질을 파헤치는 과학적 사고를 연마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이러한 본질적 사고가 인간 자신에게 적용되었을 때 어떻게 될까요? 인간의 본질은 아마도 업 쿼크(up quark)와 다운 쿼크(down quark) 알갱이들의 조합으로 밝혀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배우자도 쿼크량을 조사해서 최적의 쿼크 프로파일 중에서 고르게 될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쿼크 알갱이들을 조절함으로써 인간의 희로애락을 통제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나,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천재로 불리면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차드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1988) 교수의 다음과 같은 고백을 나는 지지합니다.

 

지금의 우리는 그저 확률을 계산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사실 지금이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이것은 아마도 영원히 걷어낼 수 없는 물리학의 굴레인 것 같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인간의 지적 능력에 그어진 한계가 아니라, 자연 자체에 원래부터 내재되어 있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리차드 파인만,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승산 2003, 234~235)


 

그렇습니다. 나에게는 인간의 본질을 알 수 없다고 겸손하게 말한 철학자들이 솔직해 보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과학적인 요소들이 있겠지만, 어떤 목적을 위해 그 요소들이 결합하여 인간이 탄생했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인간에게 실존적 사고가 필요했습니다.

 

실존적 사고는 총체성(wholeness)과 전일성(oneness)을 중시합니다. 우리는 매일 무슨 밥을 먹고 어떤 치약과 칫솔로 이를 닦고, 어떤 친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하며, 무엇 때문에 상사와 갈등하는지를 마음으로 직접 체험하면서, 그 각각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반성해 봅니다. 그 반성이 자신의 삶에 피드백(feedback) 되고 다시 피드퍼워드(feedforward)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행동을 수정합니다. 물론 이런 사고과정은 본질적 사고에 의하면, 뇌세포의 전기작용 또는 화학작용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펜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펜에서 잉크가 쏟아져 나와 종이 위를 특정한 형태로 적시고 있습니다. 이 글쓰기 작업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은 온 우주의 양전하를 띤 전자알갱이 수보다 더 많습니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난 후의 느낌도 역시 그럴 것입니다. (우주 전체에 있는 양전하를 띤 전자알갱이가 1080정도 된다면 한 사람의 뇌세포에서 시냅스전달을 위한 연결망을 구성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1,000,000정도라고 합니다. 인간의 뇌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간의 삶의 의미와 가치는 요소환원적인 본질적 사고로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실존적 사고를 통해 지금 여기 살아있음의 의미를 확인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자기자신이 선택합니다. 매 순간 자신이 선택한 의미를 담은 정보와 에너지가 내 몸에서 우주로 발산되어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실존적 사고는 자기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자신과 관계하는 모든 대상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습니다. 이것이 분석적 사고력과 더불어 실존적 사고력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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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물질문명은 존재와 의식을 갈라놓았습니다. 의식의 외부에는 객관적인 존재가 있고, 그것을 내가 의식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배웠고, 이것에 추호의 의심도 갖지 않습니다. 이처럼 존재는 절대적이어서 우리는 그것을 실재(reality)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재(reality)는 어떻게 생성될까요? 최근 신경생리학의 연구결과에서 인간의 뇌가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경험과도 일치합니다. 눈을 감고 오렌지 조각을 입안에 넣고 씹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입에 오렌지 향이 퍼지면서 침이 고일 것입니다. 상상만 했는데도 우리의 뇌는 현실처럼 인식합니다.

 

그렇다면, 실재(reality)란 무엇인가? 존재는 무엇이고 또한 의식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의식은 실재를 창조합니다. 이것은 현대물리학자들, 특히 양자이론가들이 내린 결론과 유사합니다. 물질과 그 물질을 구성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입니다. 물질은 공간에서 스스로 생성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합니다. 현대과학은 아직 그 물질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아원자(subatomic) 수준의 입자들은 관찰자의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물질은 의식의 흐름이며, 존재는 단지 그 경향성(또는 가능성 또는 잠재성)을 나타낼 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철학적 사유에서도, 특히 쇼펜하우어는 이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Die Welt ist meine Vorstellung)라고 정의했습니다. 나의 의지적 표상이 곧 세계를 구성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하이데거의 철학에서도 사물은 그냥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부여하는 의미의 연관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내가 쓰고 있는 이 PC는 글을 쓰기 위해 나의 손가락이 자판을 두드릴 수 있을 때만 존재합니다. PC는 그냥 PC로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의 두뇌와 의식에서는 PC의 성능과 사용목적, 그리고 사용법, 나아가 나의 책상과 연구실이라는 맥락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현대과학과 철학의 연구결과에서 얻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사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존재가 의식을 구성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존재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존재론과 인식론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경영자들의 사고와 현실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창조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경영자는 지금 당장 보이는 실적과 숫자에 현혹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경영자의 보이지 않는 의식의 흐름, 즉 마음의 상태가 조직의 문화를 바꾸고 경영의 성과를 창조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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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젊은이들이 재테크에 미치다니


나에게는 조금 걱정이 생겼습니다. 얼마전에 보니까 20대에 재테크에 미쳐야 한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니, 이건 정말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민족의 장래가 걱정입니다. 20~30대에는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공부에 쏟아도 모자랄 텐데, 재테크에 미치다니...... 재테크에 미치지 않아도 소유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전략을 세워서 철저히 실천하면 재테크에 미치는 것보다 더 큰 부()를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검증된 방법론이고 그렇게 어렵지도 않습니다. 이 방법론을 따르면 바라는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재테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천천히 그러나 확실한 비전을 세워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하면 바라는 모든 것을 생각했던 것보다 빠른 시간 내에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천천히 그 방법론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젊은이들이 재테크에 미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사고력을 기르는 공부에 미쳤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비전>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합니다. 비전체계는 핵심목적, 장기목표, 핵심가치로 구성됩니다. <핵심목적 또는 사명>은 다른 포스트에서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장기목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장기목표를 단순히 비전(vision)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하고 있죠. 먼 미래에 달성해야 할 바람직한 목표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소망을 담은 구체적인 꿈입니다. 여기서 장기를 어느 정도의 시간을 말하는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짧게는 5~10, 길게는 50년을 볼 수도 있고, 아주 길게는 다음의 몇 세대 후를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특히 환경문제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정도로 길게 봅니다. 환경이란 한번 망쳐 놓으면 회복되는 데 많은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자신의 생애 전체를 놓고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내가 죽은 후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지를 명확히 하면 자신의 최장기 목표가 설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자신의 전망을 제대로 하지 못하죠. 그래서 아주 짧은 미래를 내다 볼 뿐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정도까지의 전망만을 생각합니다. 미래를 보는 눈도 훈련하지 않으면 줄어들기 때문에 목전의 이익에 급급한 인간으로 전락합니다. 그래서 늘 훈련이 필요합니다.


소유의 목표와 존재의 목표


아무튼 장기목표는 반드시 세워야 합니다
. 장기목표에는 두 가지를 포함해야 하고, 균형 잡힌 수준에서 통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소유의 목표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둘 중에 소유의 목표에 치중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소유가 존재를 대신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부에서는 진정한 존재양식이란 소유를 배제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인류학적인 그리고 철학적인 논의가 필요하고 무소유의 공동체 사회에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실 사회에서 소유를 배제한 존재양식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소유는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육체적 편안함은 커다란 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은행계좌의 부족으로 얼마나 많은 걱정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소유가 없다면, 미래의 의식주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의 의식주조차 제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소유는 이렇게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좋은 수단입니다. 물론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존경할만한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경우이고, 일반적인 대다수 시민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부끄럽지만, 내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나는 성북구 삼선동의 산꼭대기 문간방에 250만원짜리 전세를 얻어서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집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는 잠잘만한 집 한 채를 가지지 못했을까를 생각하면서, 소유의 편안함을 갈망했었습니다. 삶의 모든 형편이 불편했습니다. 밤에 일어나서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밤중에 일어나서 19공탄을 갈아야 했고, 더운 물이 없어서 연탄불에 데워 세수를 해야 했습니다. ...

30여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은 남쪽으로 한강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남산타워가 보이는 조망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부동산 투자를 포함한 어떠한 재테크도 해본 적도 없습니다. (사실 그럴 의지도 시간도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에너지와 시간을 공부하고 일하는 데 썼으니까요), 그러나  부자는 아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소유를 성취했습니다. 그 동안 별로 고생한 것 같지도 않은데, 아내와 다 장성한 두 자녀, 그리고 부부의 노후를 걱정하지 않을 만큼의 부를 소유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죠.


소유의 목표가 가져다 준 후유증

내가 잘 아는 한 분은 자신이 소유에 집착할수록 소유의 목표가 멀어지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 분은 한 가지 사례를 들려 주었습니다. 21세기로 들어서려는 전환기에 IT벤처 붐이 일었습니다. 아는 사람들의 권유로 벤처에 투자하면 몇 배의 이익을, 아니 몇 십 배의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상당한 금액을 투자했습니다. 지금은 다 휴지조각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 투자하게 된 마음의 깊은 곳에서는 불노소득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노동의 대가가 아닌 묻지마 투자로 일확천금을 노렸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합리화했다고 합니다. 현대인으로서 시장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투자해 두는 게 좋다고 자신의 재테크를 정당화했습니다. 그 후에도 소소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합니다.

소유는 마약과 같아서 소유할수록 자꾸 더 많은 소유를 추구하게 되고, 소유 자체가 목적으로 변해 버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소유의 무서운 특성을 무시한 채, "더 많이 더 많이"를 마음으로 외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문제가 발생합니다.


가족끼리 오손도손 잘 살다가 어느 날 거액의 토지 보상금을 받은 후부터는 형제간에 갈등이 생깁니다. 그러다가 형제를 살인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 재벌 2세들의 재산 다툼을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생각하지만, 소유의 미묘한 독성을 이해한다면 형제는 고사하고 부자간에도 서로 싸움질하는 게 소유의 특성입니다. 소유에 맛들기 시작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지죠. 겉잡을 수 없이 자신의 정신세계를 황폐하게 만들어 갑니다. 자자손손 먹고 살 수 있는 재산을 소유한 사람도 더 많은 재산을 소유하려고 불법과 비리를 거침없이 저지르는 것을 보아도 소유는 인간의 마음을 좀먹는 마약과 같습니다. 성경은 그래서 모든 악의 근원이 소유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소유는 아주 잘 다루어야 할, 깨지기 쉬운 유리잔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소유를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로 살 수만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인생결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속에서 산다면 무소유가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충분히 소유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소유가 나를 소유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진정한 소유의 목표는 존재의 목표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나는 소유에 대해서도 장기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소유가 나를 소유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말입니다.
10년 후에 부장 또는 임원으로 승진하는 것도 소유입니다. 넓은 정원에 아름다운 정원수와 잔디가 깔린 전원주택이나 별장고급 승용차도 소유의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사법고시 합격이나 MBA학위 취득도 소유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소유물들을 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소유의 목표가 워낙 강력하게 마음을 끌어 당기기 때문에, 더구나 그런 것을 조장하는 각종 광고물과 언론매체와 서적들 때문에, 그리고 감성과 이목을 중시하는 풍조 때문에 존재의 목표는 최근 들어 급격히 그 가치가 저하되고 있습니다
. 소유에 의해 존재가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한 꺼풀 들춰보면
,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과는 반대로 존재가 소유를 결정합니다. 인간의 실존적 사유가 곧 소유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목표란 자기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만들어 가는 목표입니다. 영혼의 능력을 발휘하는 정신적이고도 영적인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마음의 깊이와 넓이만큼 세계를 창조하고 지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사고력 또는 해석체계를 확장하는 것만이 삶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목표를 세우세요


존재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운다면
, 사람, 자연, 시간 그리고 현상에 대한 해석체계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어린 아이와 같이 사물을 보다가 장성한 후에는 어린 아이의 생각을 점차 버리는 방식입니다. 세상을 불투명하게 보다가 보다 더 투명하게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인식체계와 해석체계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       무기력과 절망 속에 있던 모습에서 용기와 열망의 불꽃을 지피는 자신의 모습을 생생하게 바라봅니다.

-       부정적인 언어습관과 제한적 신념들이 긍정적으로 변화됩니다.

-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자존심과 질투심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과 인내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       불안과 초조감을 일으키는 환경에서도 마음의 안정과 고요한 평화를 느낍니다.

-       어떠한 소유물도 자신의 존재를 흔들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렇게 소유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존재양식으로 스스로를 바꿔 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이것이 소유의 목표를 달성해 가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소유의 목표까지 자연스럽게 성취하게 됩니다.


소유는 죄악이라는 생각과 소유는 만능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생각에서 우리는 종종 헷갈립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둘 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수도원의 수도승이 아닌 한, 소유 없는 존재가 불가능하며, 존재 없는 소유는 무가치하거나 해악을 끼칩니다. 소유의 목표와 존재의 목표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아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이렇게
 장기목표에 대한 확고한 의지는 그 목표를 향한 자신감으로 서서히 변화되어 나갈 것입니다. 존재의 목표가 분명하다면 소유의 목표는 반드시 따라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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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