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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6 경영이란 무엇인가(15)_뽄떼와 쪽팔림 (6)

내가 어느 금융기관을 자문하고 있던 시절의 경험을 소개해야겠습니다. 꽤 오래 전의 일이라 사건의 경위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요지는 그 회사의 임원 중에 한 사람과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던 여인이 회사 인사부서에 찾아와서 혼인을 빙자하여 간음을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혼하여 자녀까지 있는 임원에게 그런 일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회사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당연히 나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자문을 구해왔습니다. 그리고는 즉각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나는 장문의 자문의견서를 보냈습니다. 해고를 할만한 사안은 아니며, 필요하다면 가벼운 경고로 충분하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아내를 둔 남편으로서 외도한 것을 눈감아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적 영역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저버렸다고 해서 그것을 함부로 공적 영역에서 다루려고 하면 안 된다는 점을 말한 것입니다. 부부싸움을 했다고 해서 직장에서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주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적인 문제는 공적인 일로, 사적인 문제는 사적인 일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죠.

 

내가 이런 의견을 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흉흉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기업도 기본적인 도덕과 윤리를 지켜주어야 한다고 줄곧 강조했던 사람이 파렴치범을 싸고 돈다는 것이죠.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서 뭘 얻어먹겠다고 파렴치범을 감싸고 돌겠습니까. 소문이라는 것은 무섭죠. 일단 소문이 그렇게 나면, 나는 파렴피범을 싸고 도는 사람이 돼 버립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진실을 알게 됩니다.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의 사회적 기대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경우에 한하여 공적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내 생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부부싸움이라도 사적 폭력이 가해지면 공적 영역(예를 들어 경찰)이 개입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논리를 이제 그 사건에 비추어 보면, 내연관계를 유지해 왔던 사적 관계가 회사의 공적 영역에 어떤 손실을 가져왔는지를 따져서 그 손실에 해당 되는 만큼 징계처분을 내리는 것이 적당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 손실이란 사실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회사입장에서는 금융기관의 임원이라는 자리는 막중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그리고 윤리도덕적인 흠결이 공적인 영역에서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외부인이 인사부서에 찾아와서 큰소리가 나게 했다는 사실 외에는 별로 큰 손실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직위해제라는 중징계 조치를 취했습니다. 소위 뽄떼를 보인 것이죠.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당사자가 직접 연봉을 삭감해도 좋으니 직위해제라는 불명예스런 조치는 취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회사에 했다는 점입니다. 돈보다 명예를 중시한 것이죠. 나중에 그는 직위를 회복했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명예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쪽팔림이라고 합니다.

 

지난 번에 썼던 포스트에서 한국은행의 조직개혁을 담당했던 사람들에게 당시 한은의 박철 부총재가 “돈 몇 푼 가지고 사람들을 치사하게 만들지 말라”고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정말, 돈 몇 푼 가지고 사람을 치사하게 만드는 일은 이제 삼가야 합니다. 인간의 정신이 어느 정도 성숙한 수준에 올라서면 돈보다는 명예를 중시하게 됩니다.

법과 원칙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경영하는 사람들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재판관들도 이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공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껌 하나라도 받아 씹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껌이라는 하찮은 것이라도 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멀쩡한 사람을 망신주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대신 공적으로 해악을 끼친 경우에는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전과자들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하겠지요. 껌 한 톨 받아 씹는 것도 엄청난 불명예인 줄 아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전과자라는 공적인 "쪽팔림"을 당하고도 버젓이 공적 영역에서 활개치는 사회는 분명 정신이 건강한 사회는 아닙니다.

 

끝으로,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조직 생활에서 명예가 실추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제도가 설계되어서는 안 되며, 특히 평가결과가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로 급여가 차별화 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초등학교 운동회 100미터 달리기에서 꼴찌 했어도 쪽팔리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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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