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터 바나드(Chester Irving Barnard, 1886~1961)는 조직이 성립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
, 공동의 목적
둘째, 협력의지
셋째, 커뮤니케이션

일반적으로 조직의 목적과 개인의 동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바나드는 공동의 목적을 구성원에게 주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목적 달성을 위한 경영개념이 효과성과 효율성으로 분리된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특히 효율성 개념을 공학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측정할 수 없는 많은 가치들이 제거되는 등 바나드의 사상이 심각하게 왜곡되었음을 살펴봤습니다.

이러한 왜곡이 일어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숫자가 주는 마력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1930년대부터 미국에 불기 시작한 국가기반시설의 확충정책도 그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공황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국가정책적으로 대규모 토목공사와 건축이 이루어졌습니다. 공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시기이고, 엔지니어가 가장 각광을 받고 또한 존경도 받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기업 내에서도 자연스럽게 공학적인 마인드가 중요하게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숫자로 측정하여 정답을 찾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통은 1950년대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미국은 소련의 인공위성발사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소위 스푸트니크 쇼크를 받았던 케네디 대통령은 과학기술에 국가운명을 걸 정도로 집중적으로 투자했습니다. 과학기술에의 투자는 국가적 아젠다가 되었습니다. 유능한 인재들이 과학기술 개발에 대거 참여했고, 모든 것은 숫자로 표현되었습니다. 그것이 당연시되었고, 숫자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것을 넘어 정직한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테일러의 사상에 기름을 부은 것과 같았습니다. 모든 것을 숫자로 표현하여 정확한 해답을 찾아내는 것은 거의 모든 학문영역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숫자가 서서히 이데올로기화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사회과학적 연구의 모든 주장이나 판단은 반드시 숫자나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인간의 행위도 계량화하여 숫자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계량경제학이나 계량경영학이 중요해졌습니다. 수학적 재능이 없이는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공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 학문영역은 철저하게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연구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통계숫자로 보여줘야 합니다. 이때부터 노벨 경제학상을 받으려면 인간의 행동을 수학적 모델로 설명해야만 했습니다.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게리 베커(Gary A. Becker, 1930~) 교수는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사람을 자본으로 본 것입니다. 경영자나 행정당국이 사람에 대한 교육투자와 같은 의사결정을 내릴 때 문화적 측면뿐만 아니라 투자수익률까지 아우르는 합리적 모형을 제시했습니다.

말하자면, 합리적으로 비용과 혜택을 계산해서 결정할 수 있는 수학모델을 만든 것입니다. 이 모델을 가족관계, 노동시장, 결혼시장, 이혼시장 등으로 확장하여 적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하여 논쟁에 참여했고 시끄러웠습니다. 하지만, 베커 교수가 199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음으로써 논쟁은 끝났습니다. 합리화, 계량화, 과학화, 숫자화의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합리화는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자본시장에서 인간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피셔 블랙(Fischer Black, 1938~1995),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 1941~),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 1944~). 이 위대한 세 인물이 바로 그 일을 해냈습니다. 우선, 머튼은 투자자들이 자산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배분하는지를 연구해서 소위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Capital Asset Pricing Model, CAPM)이라는 수학모델을 만들었습니다.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즈는 그 유명한 옵션가격결정모형(Options Pricing Model, OPM)을 만들었습니다. 파생상품의 가격결정메커니즘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파생상품을 포함한 주식시장의 모든 가격결정메커니즘을 수학모델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델은 이미 70년대에 만들어져서 실무에서도 활용되었고, 실증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도 유효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론들이 많은 변화를 거쳤지만 기본적인 프레임은 변함이 없습니다.

나는 70년대 CAPMOPM을 포함한 투자이론을 공부하면서 느꼈던 전율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자본시장에서 인간의 행동이 수학모델에 의해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이론들을 제대로 장악할 수 있다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재무관리를 전공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수학에 뛰어난 재능은 없었지만 투자이론의 정교함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젊은 지도교수는 투자론 교과서를 써서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일제시대 때 배운 지식으로 가르치던 교수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요즘과 같은 금융공학(financial engineering)이라는 참신한 용어도 없었지만, 투자론은 세상이 수학모델로 설명될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강의를 듣는 많은 학생들이 흥분했고, 너도나도 투자론에 빠져들었습니다. 적어도 나는 그랬습니다.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지도교수는 출판사로부터 엄청난 인세도 받았습니다. 그는 인세를 다시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투자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론과 실제를 조화시켜보려 했습니다. … 그 다음 어떻게 되었는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투자이론을 포기하고 중도에 대학원을 떠났습니다. 그리고는 한국은행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단지 나의 개인적 역사일 뿐이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투자이론에 여전히 심취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론들은 지금 금융공학이라는 용어로 더욱 정교하게 발전되어 가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그러니까 1997년 자본시장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수학모델의 기초를 세운 이 위대한 성과에 대해 스웨덴의 노벨위원회가 노벨 경제학상으로 보답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피셔 블랙은 노벨상이 수여되기 2년 전에 암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머튼과 숄즈에게만 상이 수여되었습니다.

이제 금융공학은 주식시장을 거의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대박은 따놓은 당상입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Long-Term Capital Management(LTCM)라는 헤지펀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펀드는 투자은행 살로몬 브라더스의 전설적인 채권 트레이더 메리웨더(John Meriwether, 1947~)1993년 세운 회사입니다.

노벨 경제학상에 빛나는 숄즈와 머튼, 월 스트리트 최고의 트레이더들, 그리고 하버드와 MIT 교수 등 내로라하는 대가들을 끌어들여 펀드를 운영했습니다. 펀드는 연 40%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자랑했습니다. 냉철한 머리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압하면서 월 스트리트에서 질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레버리지를 이용해서 높은 수익을 올렸습니다. 1998년도에는 자기자본(47억 달러) 2,500%나 되는 자금을 끌어들였습니다. 어마어마한 빚으로 투자거래를 계속했습니다. 이 돈을 주로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바람에 그 해 부외자산은 무려 12,500억 달러나 됐습니다.

빚은 잘 나갈 때는 대박이지만문제가 생기면 독약으로 돌변합니다이들은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와 그 이듬해 러시아의 금융위기를 전혀 예측하지 못해 엄청난 손실을 입고 파산했습니다게다가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LTCM은 불법적인 조세회피 거래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나서 기소되기도 했습니다.

 



LTCM의 성장과 파산과정은 이미 책으로도 출간되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현실이었습니다. 천재들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가는 과정이었으니까요. 두 권의 흥미진진한 책을 소개합니다. 『라이어스 포커』와 『천재들의 실패』입니다.


파산 후에도 두 명의 노벨 수상자는 우여곡절 끝에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습니다. 로버트 머튼은 2007년 금융자문회사인 Trinsum Group에 합류했습니다. 이 회사는 이번 금융위기에 다시 큰 손실을 입고 2009 1월에 파산보호신청을 냈습니다. 마이런 숄즈도 가까스로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습니다. 그는 대만계 중국인이 세운 Platinum Grove Asset Management라는 헤지펀드를 맡았는데, 이번 금융위기로 또다시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현재는 펀드가 환매중단 상태에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이 만든 합리적 계량적 과학적 모델이 세상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지성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이 세계의 본질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연구가 진전되면 인간이 만든 합리적 모델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세계는 결코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합리화 계량화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있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결코 합리화되지 않는 세계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체스터 바나드가 제시한 조직의 세 가지 요소 중에서 계량화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가려서 조직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그래야 조직이 살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위대한 선각자 체스터 바나드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개인과 조직에 도움이 되는 감각)은 사회적, 윤리적, 종교적 가치이다. 그것이 널리 보급되기 위해서는 지성(intelligence)과 영감(inspiration)이 필요하다. 지성(intelligence)은 여러 사람들이 복잡한 세계에서 그들의 기술적인 역량이 서로 얽혀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음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 그것은 정규교육보다는 오히려 협동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영감(inspiration)은 조직에 통일감을 주고 공동의 이상(ideals)을 창조하기 위해 필요하다. 구성원들이 이 이상을 지적으로 수용하기보다도 오히려 마음으로부터 수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늘날 여러 사건을 제대로 관찰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동의 이상(ideals)에 대한 신념이 구성원들의 협동을 이끌어내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이고,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것이다.”

1930년대에 이미 조직을 오늘날과 같은 경쟁체계가 아닌 협동체계로 파악했던 체스터 바나드의 혜안이 놀랍지 않은가!

재미 없겠지만, 바나드 얘기는 계속됩니다. 아주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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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1930년대 초반, 소위 테일러리즘(Taylorism)에 저항하기 위해 연구했던 메이요(Elton Mayo)의 연구작품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테일러리즘은 오히려 포드자동차에서 꽃피었습니다. 헨리 포드는 공장을 이동식 조립라인으로 만들어서 과학적 관리의 진면목을 보여주었습니다.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이루었습니다. 그리하여 포드는 1914 15, 수익금 중 1,000만 달러를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는 데 쓰겠다는 파격적인 발표를 했습니다. 당시 주급11달러에 불과하던 노동자의 임금을 하루 5달러, 주급 30달러로 올렸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사회 전체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언론에서는 대서특필했습니다.

 대부분 아낌없이 주는 관대한 행위라고 칭찬했는데, 유독 <월 스트리트 저널>산업계에서 시도된 가장 어리석은 행위라고 혹평했습니다. 포드사의 생산성 향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나중에 밝혀졌는데, 이동식 조립라인을 통해 절감된 경비는 노동자들에게 하루에 20달러, 주당 120달러를 지불할 수 있을 금액이었습니다.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 중에서 약 1,120만 달러가 주주들에게 지급된 셈이었습니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자, 포드는 매우 큰 폭의 임금을 다시 삭감해 버렸습니다. 포드는 결코 박애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테일러의 생산성 복음이 휩쓸고 있던 시절, 그러니까 193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경영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체스터 바나드(Chester Irving Barnard, 1886~1961)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별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바나드는 젊은 시절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에 필요한 졸업학점을 다 이수했습니다. 그러나, 기술계량과목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학당국으로부터 학사학위 수여를 거절당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조직에서 경영자의 기능을 밝힌 공로와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7개나 되는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을 정도로 조직과 경영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전문적인 학자로 연구한 적이 없습니다. 사기업에 입사해서 사장까지 지냈고, 공기업과 비영리단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의 통찰력은 1938년에 『경영자의 기능』(The Functions of Executive)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몇 차례 소개했습니다. 참고하세요.

2009/02/18 경영이란 무엇인가(3)_효과성과 효율성
2008/12/29 경영의 효율성과 효과성
2008/10/30
내가
읽은 가장 위대한 경영학 고전

이제 바나드의 통찰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 그의 사상이 나중에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바나드는 조직이 성립하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 공동의 목적 (common purpose)
둘째, 협력 의지(willingness to contribution)
셋째,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이 세 가지 요소는 조직의 필요충분조건으로서 모든 조직에서 볼 수 있습니다.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대로 통용될 수 있는 통찰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영자의 기능이란 이 세 가지 요소를 잘 이해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가지고 경영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란 말인가?

우선 첫째 요소부터 보겠습니다. 경영자는 조직의 공동목적을 구성원들에게 주지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직의 목적과 개인의 동기를 일치시킬 수 없기 때문에, 조직의 공동목적이 성취됨으로써 구성원의 개인적 욕구가 충족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효과성과 효율성의 개념적 분리가 나타납니다
.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효과성은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의미하고, 효율성은 그 과정에서 구성원의 동기가 충족되거나 만족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효과성이 높아도 효율성은 낮을 수 있고, 효과성이 낮아도 효율성은 높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나드는 효율성이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판단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들어, 충성심과 신뢰, 팀 스피릿, 조직목적에 대한 헌신과 같은 추상적 개념들, 즉 구성원의 태도변화와 같은 요소들은 공학적으로 다루기 힘들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바나드가 효율성이란 구성원의 동기충족이나 만족을 나타낸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의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효율성을 공학적 의미, 즉 투입량대비 산출량의 비율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숫자는 인간에게 포르노만큼이나 매혹적입니다. 숫자를 들이대면 꼼짝할 수 없습니다. 어느 경영자가 매출이 전년대비 20% 하락했다는 보고를 듣는다면 어떤 심정이겠는가? 수도권의 매출증가율이 5%로 높아졌다는 보고는 어떤가? 고객만족도가 경쟁사에 비해 2%포인트 낮다는 보고를 받았다면? …

인간이 숫자에 치명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았던 허버트 사이몬(Herbert A. Simon, 1916~2001)은 효율이라는 용어를 숫자로 대치시켜 버렸습니다. 엘톤 메이요의 엉성한 인간관계 개념과 체스터 바나드의 "경영자의 기능"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측정할 수 없는 것보다는 숫자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이몬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1945년에 『관리행동론』(Administrative Behavior)이라는 단행본으로 출판합니다. 이 책이 그의 사상에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생을 통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효율성(efficiency)이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대안 중에서 최대의 이익을 조직에게 가져다 주는 대안을 선택하게 하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리고는 주관적 가치가 제거된, 소위 매정한 효율성’(ruthless efficiency)을 계산하여 관리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제적이고도 합리적인 효율성 개념을 다양한 분야에 적용함으로써 나중에는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았습니다.

그 후의 경영학 또는 경제학에서는 소위 효율성 공학(efficiency engineering)이 각광을 받기 시작합니다. 효율성 공학에는 모든 것이 측정 가능해야 하며, 계산할 수 있는 숫자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만약 측정할 수 없는 대상이 있다면 측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형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면, 구성원의 만족감 같은 것은 조직 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측정할 수 있는 잣대가 마땅치 않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전제와 조건을 만들어서 측정 가능하도록 조작해야 합니다. 7점 스케일로 측정한다면, 가장 만족스러웠을 때를 7점에 놓고 가장 불만족스러웠을 때를 1점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만족감은 몇 점인지를 조사하여 만족수준을 계량화합니다. 5.5보다는 6.3이 더 높은 점수이므로 만족감이 더 높다고 판단합니다. 이런 방식은 오늘날 통계학의 도움으로 매우 정교한 결론을 도출해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결과의 타당성과 신뢰성을 거의 의심하지 않습니다.

많은 기업이 직원 사기나 고객만족을 설문조사기법으로 파악합니다. 여기서 얻은 숫자를 통계 처리하여 경영에 반영합니다. 정부에서도 관련부처들의 경영혁신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각종 만족도를 조사합니다. 지자체에서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을만 되면 온 나라가 만족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실무에 있을 때, 이 분야에 관여해봐서 조금 압니다만, 한 마디로 말하면 신뢰할 수 없다입니다. 왜냐? 고객만족과 같은 질적인 요소들은 워낙 주관적 요소가 많기 때문에 설문지와 모집단 구성, 그리고 샘플의 추출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합니다. 6.3 5.5의 차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숫자가 조작되어 통계 수치로 나왔다는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숫자들이 완전히 엉터리로 지어낸 가짜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숫자가 나오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전제와 가정이 깔려 있기 때문에 그 전제와 가정 중에서 한두 가지만 바뀌어도 숫자는 달라지고, 아무도 그 바뀐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측정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질적인 판단영역을 계량화함으로써 불가피하게 치르는 비용과 폐해는 그것을 통해 얻는 이득에 비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무슨 협회나 단체에서 기업들에게 만족도를 조사해 주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만족도가 높은 상태에 있으면 명예의 전당에 올려주는 장사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실 이것이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영자들이 조작적으로 수집된 통계수치에 의지해서 경영하는 것은 마치 내비게이션을 믿고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 내비게이션을 믿으면 가끔 낭패를 보게 됩니다. 인간의 주체적 삶을 숫자나 기계장치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니까, 지리에 대한 방향감각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나의 경험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경영자는 현장의 상황이나 구성원들의 태도변화를 직접 감지할 수 있는 민감한 감각을 기르고 영혼의 순수함을 유지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나드는 개인적 동기의 주관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설득에 의한 구성원들의 태도변화를 중시했습니다. 그는 이런 주관적 요소들에 대해서는,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대안이 더 효과적이라거나 더 효율적이라는 객관적 질문을 제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바나드가 오늘날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만족도를 조사하는 행태를 보면 뭐라고 할까요? 내 짐작에는 당장 집어치우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는 테일러리즘의 광기를 뚫고 피어 오른 어린 새싹이, 즉 1938년에 발표된 "경영자의 기능"이라는 바나드의 기념비적인 사상이, 포르노보다 더 강렬한 숫자 앞에서 총맞은 것처럼 스러져갔습니다.

오늘날
많은 경영자와 학자들이 숫자 앞에 무릎을 꿇고 숫자의 신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런 숫자 앞에서 눈을 돌려 과감히 무릎을 펴고 일어서야 합니다. 숫자는 항상 진실을 가리기 때문입니다이제 숫자가 아닌 사태의 진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나드 얘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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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누가 나에게 지난 100년간 가장 위대한 경영학 고전을 두 개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체스터 바나드(Chester I. Barnard, 1886~1961)의 『The Functions of the Executive』(1938)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1909~2005)의 『The Practice of Management』(1954)를 들 것입니다. 후자는 이미 번역되어 나왔고 드러커는 거의 연예인만큼이나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그의 이름과 사상의 대강은 알고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바나드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체스터 바나드는 비교적 덜 알려진 인물입니다. 20세기 경영학에서 경영사상의 지축을 흔들어 놓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인데도 세간의 인기를 크게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후학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바나드 이후의 경영학자들은 대부분 그의 사상으로부터 직간접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인물은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몬(Herbert A. Simon, 1916~2001)입니다. 그의 제한적 합리성과 의사결정이론은 바나드의 사상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인물 중에는 피터 드러커를 들 수 있습니다. 드러커의 업적과 공로에 대해서는 나중에 리뷰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바나드 사상의 일면을 드러낸 『The Functions of the Executive』에 의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1938년에 출판된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문자 그대로 경영자의 기능을 정의하는 것이었습니다. 경영자는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함으로써 조직구성원의 헌신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경영자의 핵심기능을 정의하고 나니까, 경영자의 권위는 경영자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하들이 그의 권위를 마음으로부터 수용해 줘야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경영자는 부하들을 진심으로 존중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단순히 말로만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설득력과 성과급(incentives)을 적절히 활용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그는 성과급보다 마음을 사로잡는 설득의 중요성을 더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효과성(effectiveness)과 효율성(efficiency)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내가 바나드의 위대함을 보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바나드는 조직론에서 효과성과 효율성을 최초로 구분했습니다. 조직이 영속하기 위해서는 효과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개의 범주를 동시에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직의 효과성이란 명시적인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느냐에 따라 정해지며, 조직의 효율성은 조직이 구성원의 동기를 어느 정도 만족시켜주었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요즘 우리가 흔히 효율성을 단순히 투입대비 산출의 정도로 측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정의입니다. 경영학이 점차 공학으로 변해가면서 효율성의 개념과 정의도 많이 왜곡되었습니다.

 

아무튼 요즘 쓰는 용어로 표현하자면, 바나드는 조직구성원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동기를 유발하면, 즉 효율성을 높이면, 조직의 목적 또는 목표를 지속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즉 효과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진리입니다. 진리는 단순합니다.

 

“효율성을 높이면 효과성이 높아진다.” 즉,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상태를 제공하면 조직의 목적은 지속적으로 달성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지성으로 본다면, 그런 정도가 뭐 대단한 것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대공황의 처참함에서 겨우 벗어나려고 하던 미국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노동자는 넘쳐나는 데 일자리는 부족한 상황을 감안할 때, 그래서 노동자의 인권을 생각하기 어렵던 시대임을 감안할 때, 시대정신의 흐름을 뒤집어 업는 놀랄만한 발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발상은 광야에서 외치는 진리였습니다.

 

놀랍게도 바나드는 대학에서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었습니다. 상아탑에 안주하는 창백한 지식인이 아니었습니다. AT&T에 사원으로 입사해서 자회사의 사장까지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공기업을 맡아 경영한 경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학자들과 교류하고 있었을 뿐, 한번도 전문적인 연구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경영자 권위의 문제, 설득의 커뮤니케이션과 성과급 이슈, 효과성과 효율성의 명확한 구분 등과 같이 그가 보여준 통찰력은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빛날 것입니다.

 

그러나, 70년이 지난 요즘 우리 경영학계과 실무계는 바나드의 통찰을 무시한 채 인간을 “돈 버는 기계”로 생각하거나 “목적달성을 위한 자원”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사상에 너무 깊이 빠져 있습니다. 사람은 기계도 자원도 아닙니다.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싶어하는 실존적 존재입니다. 이러한 진실을 외면하면, 조직의 장기적인 효율성과 효과성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요즘, 경영자들은 바나드의 사상을 다시 한번 깊이 곱씹어 봐야 할 때입니다.(끝)

 

[참고] 이 책은 15년 전에 신한종합연구소의 기업문화팀에서 『관리자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역자들은 이 책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번역까지 하느라 많은 고생을 했을 텐데, 약간의 오역과 매끄럽지 못한 부분 등 다소간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원서를 그대로 보시면 훨씬 그 뜻을 명확히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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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