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질병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육체적 질병이 아니라 정신적 질환입니다. 하나는 자본주의적 질병이고, 다른 하나는 권위주의적 질병입니다. 이 두 가지 질병이 합병증을 일으키고 있어서 뭐가 뭔지 진맥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

 

자본주의적 질병의 원인은 우리가 정치적 경제적 질곡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서구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를 우리도 향유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야당에 투표하면 잡혀가는 줄 알던 시대에서 벗어나 우리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투표할 자유를 확보했고, 대다수 국민이 절대 빈곤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가 해방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외적 조건으로부터의 해방, 즉 정치적 해방 또는 경제적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느껴보기도 전에 우리에게 더 크고 무거운 족쇄가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이 족쇄는 인간의 내면에 채워져 있기 때문에 거추장스럽게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롭다고 생각하면서 그 무거운 내면적 짐을 항상 가지고 다닙니다.”

(최동석, 똑똑한 자들의 멍청한 짓 한국관료조직의 개혁을 위한 진단과 처방, 비봉출판사 1998, 206~207)

 

이 글은 10여년 전에 쓴 글입니다. 인간의 정신적 내면에 채워진 쇠사슬! 그것은 탐욕의 족쇄였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시장메커니즘이 우리에게 선사한 괴물입니다. 동물원에 가끔 가서 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괴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괴물입니다. 이 괴물이 우리의 잠재력을 적절히 발휘하게 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괴물때문이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있기 때문이지요.

 

인간은 욕구를 충족해야만 합니다. 욕구(need)를 충족하고 나면, 욕망(desire)이 끼어듭니다. 이 때 욕망의 확대재생산과정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면 탐욕(greed)으로 나아갑니다. 이 탐욕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자본()이고, 이것이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확대재생산 됩니다. 탐욕이라는 족쇄, 탐욕이라는 괴물앞에 인간은 무력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앓고 있는 질병입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탐욕이라는 괴물을 다룰 수 있는 적절한 통제수단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한 적절한 시스템설계를 필요로 합니다. “자유로운 시장거래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글과 관련된 글

  • 2009/04/09 미국사회의 시스템화된 탐욕이 드러나다
  • 2009/03/04 어째서 탐욕(greed)이 문제란 말인가
  • 2009/03/03 탐욕이 조직화 되다
  • 2009/03/02 탐욕은 좋은 것, 아니 위대한 것
  • 2009/02/27 돈은 인간의 정신을 왜곡한다
  • 2009/02/26 탐욕의 블랙홀에 빠진 월 스트리트
  • 2009/02/25 왜 서양식 경영이 아니라 미국식 경영이 문제인가?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미국인들이 탐욕적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깊이와 넓이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현재의 금융위기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많은 분석과 처방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기술적인 문제에 치우친 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에서 보는 인터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첫째, 폰지게임과 같은 방식으로 파생상품을 팔아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위험량을 정확히 계산할 수 없을 만큼의 독성이 큰 상품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핑크빛 포장지로 싸서 전세계에 팔았습니다. 신용평가사들의 위험 제로라는 트리플 에이(Triple-A) 딱지까지 붙여서 말입니다. 처음부터 사기를 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월 스트리트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에 부정적발당국은 뭘 하고 있었는가? FBI에서는 모기지 상품들의 사기에 의한 부정(fraud) 위험을 경고했으나 부시행정부에서는 실체도 없는 테러와의 전쟁 때문에 FBI의 인력을 보충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을 테러인력으로 전부 빼돌렸습니다. 더구나 1980년대 수백 개의 저축대부조합(Savings and Loan Associations)이 무너지는 사태를 통해 금융부정의 실태와 원인을 파악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위기사태를 예방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위기는 저축대부조합 위기의 1,000배나 더 큰 위기인데도 말입니다. 테러의 위기보다는 수천 배가 더 크겠죠.

     

    셋째, 경찰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금융감독당국에서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는가? 월 스트리트의 인물들과 감독당국의 책임자들, 그리고 정부의 고위관료들은 서로 회전문 인사를 통해 왔다갔다하고 있기 때문에 사태의 진실을 덮어버리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현재 재무장관 가이트너도 뱅커출신입니다. 가이트너는 뉴욕연준의장으로서 이번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인 모기지 대출과 그 파생상품의 부정판매에 대해 직접적인 감독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긴 꼴입니다.

     

    넷째, 감독당국은 AIG사태에서도 보았듯이, 정부보조금이 파산지경에 이른 금융기관 경영자들의 주머니로 고스란히 들어가도록 내버려두었거나 조정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월 스트리트의 사람들이 서로서로 스크럼을 짜고 '미래의 파국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로 그들이 저지른 엄청난 부정을 덮어버리려 한다는 것입니다.

     

    아래 인터뷰를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pbs.org/moyers/journal/04032009/watch.html

     

    미국이라는 나라는 탐욕 위에 세운 집과 같습니다. 겉에서는 아주 튼튼해 보이는데, 이번에 살짝 들여다 본 미국의 속내는 정말 더러웠습니다. 제대로 까보면 엄청 나겠지요. 인터뷰에 나온 윌리엄 블랙(William Black) 교수의 말대로 미국에서는 지금 사기꾼들이 얼마나 미친 짓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언제쯤 알 수 있을까요?

     

    파산지경에 이른 금융기관의 경영자들은 이미 천문학적인 보상을 받았으니까요. 이번 사태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미국식 경영이 멋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결국 사기꾼들이었음이 드러났죠. 미국을 건설한 밀수꾼(미국 독립선언의 대부였던 존 핸콕이 밀수꾼이었음)의 후예답습니다.

    관련된 글 :

  • 2009/03/04 어째서 탐욕(greed)이 문제란 말인가
  • 2009/03/03 탐욕이 조직화 되다
  • 2009/03/02 탐욕은 좋은 것, 아니 위대한 것
  • 2009/02/27 돈은 인간의 정신을 왜곡한다
  • 2009/02/26 탐욕의 블랙홀에 빠진 월 스트리트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기독교 사상이 오늘날과 같은 탐욕적인 자본주의 문명을 이룩하게 했느냐에 대한 논쟁은 많았습니다. 나는 기독교 사상이 자본주의 발흥에 기여했다는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대체적인 중론은 그렇다에 쏠려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기독교는 탐욕에 대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종교입니다. 이것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확합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이 명확한 기준이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특히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부터 인류의 정신적 안전망(mental safety net)이 급격히 약해졌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니(Richard Henry Tawney, 1880~1962)는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양심과 상업이 분리되었다는 점과 기독교의 가르침이 물질적 부의 추구에 복종하는 세태로 변하게 된 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이에 대해서는 토니의 책 『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 한길사 1983을 참고하세요.)

     

    기독교 사상에서 인류 최초의 탐욕 사건은 성경의 창세기 3장에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實果)를 먹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욕망(desire)으로 이어지지만, 마음속에 있는 뱀의 유혹에 이끌리면 탐욕(greed)으로 넘어갑니다. 탐욕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인간의 힘으로는 저항할 수 없습니다. 저항할 수 없는 이 탐욕이 바로 인류를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하게 한 원죄(原罪)입니다. 여자는 잉태와 출산의 고통을 겪게 되고, 남자는 얼굴에 땀이 흘러야 밥을 먹을 수 있게 됩니다.

     

    탐욕은 매우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는 점을 성경은 명확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탐욕은 파멸할 때까지 스스로 증식해 갑니다. 더 많이, 더 많이, 더 많이

     

    어떤 사람은 탐욕을 인류발전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불황의 고통은 인간의 탐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탐욕을 다루는 방식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는 그 자체로서 모순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탐욕을 제어해야 할 인간이 탐욕적이 되면 자기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낼 재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설사 제도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탐욕적 인간들이 그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탐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마음의 훈련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다스리도록 유도하는 길입니다.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욕망의 수준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서 공동체적인 삶의 가치를 어려서부터 훈련을 통해 몸에 익히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마음의 훈련으로도 제어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욕망이 탐욕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투명성입니다. 사회적으로 하는 일들이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제도화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일정 금액 이상의 거래는 신용카드와 같은 방식으로 반드시 정보시스템을 거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돈세탁이나 뇌물 수수관행을 방지하고, 사업자의 수입과 소득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둘째로 언급한 제도적 장치의 설계가 아닙니다. 마음의 훈련을 통해 자신이 코람데오(coram deo)의 정신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코람데오는 라틴어의 신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인류가 코람데오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어찌 욕망이 탐욕으로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코람데오의 사건은 성경의 창세기 39장에 나오는 사건에서 출발합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라는 말이 거듭 강조되지만, 요셉은 감옥에 갇히는 어려움과 난관에 빠집니다. 그러나 요셉은 코람데오의 정신으로 이 난관을 헤쳐나갑니다. 예를 들어, 애굽 왕의 신하인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여러 차례 동침하자는 유혹을 받지만, 다음과 같이 거절합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得罪)하리이까

     

    전지전능한 신() 앞에서 일한다는 정신, 즉 코람데오 정신(coram deo spirit)이라면 제도적 장치가 다소 허술해도 탐욕으로 인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지만, 코람데오 정신이 없다면 아무리 정교한 장치를 한다 해도 탐욕의 폐해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엔론 사태 이후에 분식회계를 막는 강력한 제도인 사베인스-옥슬리 법(Sarbanes-Oxley Act)을 만들어서 지키도록 했지만 6~7년이 지나자 그 법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금융파생상품의 위험을, 설사 불법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엉터리로 계산함으로써 온 세계인이 막심한 피해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탐욕은 인류의 발전에 좋은 것인데, 탐욕을 다루는 방식과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서 금융 붕괴현상이 나타났다는 견해는 매우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어떤 시스템도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은 오로지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 "코람데오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내가 인사실무를 하면서 배운 가장 소중한 교훈은, 인간의 마음은 결코 안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은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조직구성원들을 숭고한 목적으로 향하여 이끌고 간다는 것은 경영자로서 보람이기도 하지만, 고난의 길이기도 합니다.

     

    물론 잘 하면 보람이지만, 잘못하면 고난이죠. 나는 언제부턴가 경영자가 잘 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인간과 조직의 문제를 평생의 화두로 삼게 되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이 없이는 제대로 경영하기 어려울 것이고, 인간들이 모인 조직의 특성과 역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욕구(needs)를 가지고 있습니다. 욕구를 분류하는 방식은 학자마다 다르지만, 가장 많이 알려진 분류법이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Maslow, 1908~1970) 교수의 분류입니다. 그는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 안전 욕구(safety needs), 사회적 욕구(belonging needs), 존중의 욕구(esteem needs), 자기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 needs)에 이르기까지 소위 '욕구 5단계설'을 주장했습니다. 생리적 욕구나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면, 그 상위 욕구인 사회적 욕구의 결핍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식에도 부합하는 개념체계입니다. (욕구5단계설에 대해서는 매슬로우가 1943년에 쓴 논문 “A Theory of Human Motivation”, Psychological Review 50(4)(1943), 370~396쪽을 참조하세요.)

     

    그러나, 모든 경우에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는 가끔 히말라야를 등정하는 산악인들을 보면서 매슬로우가 뭐라고 생각할까 궁금해 합니다. 산악인들은 죽음을 무릅쓸 정도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즉 생리적 욕구나 안전 욕구가 충족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산을 오르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들은 하위욕구의 충족 없이도 존중의 욕구와 자기실현의 욕구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무도 히말라야로 가라고 강제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욕구와 비슷한 개념으로 동기(motive)에 대해 연구한 학자도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의 데이비드 맥클렐란드(David McClelland, 1917~1998) 교수입니다. 그는 인간은 세 가지 주요 동기, 즉 성취동기(achievement motive), 친화동기(affiliation motive), 권력동기(power motive)에 의해 행동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취동기는 더 좋은 성적을 얻으려고 밤잠을 설치는 학생들, 골프스코어를 좋게 만들려고 애를 쓰는 주말골퍼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성취동기는 자신이 설정한 높은 목표를 위해 몰입하는 정도로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는 성취동기가 좋은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면 큰 해를 끼칩니다. 물불을 안 가리고 목표를 향하여 돌진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킨 직접적인 원인은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성취동기가 지나치게 높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인생사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아무리 좋은 동기라 해도 과유불급(過猶不及)입니다
     

    친화동기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동기인데, 어떤 것을 성취하는 것보다는 타인의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배려함으로써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향을 말합니다. 아주 어려운 부탁을 해도 거절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 대부분 친화동기에서 나옵니다. 친화동기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게 만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좋은 측면이 있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우유부단해져서 아무것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권력동기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성향을 말합니다. 권력동기가 큰 사람은 조직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어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을 희생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 인도의 간디는 물레질을 하면서 인도인들뿐만 아니라 영국인에게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히틀러의 경우도 권력동기가 매우 높았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동기유형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행동은 반드시 여러 동기가 혼합되어 겉으로 드러납니다. 동일한 행동이라 해도 사람마다 다른 동기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어, 부하를 유능한 인재로 육성하려는 상사는 다음과 같이 다양한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하가 일을 잘하면 그만큼 비용이 절감될 것이다 (성취동기)

         내가 그를 육성시키면 그가 나를 좋아하고 존경하게 될 것이다 (친화동기)

         나는 부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 (권력동기)

     

    이렇게 하나의 행동에 서로 다른 의도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동기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행동을 작동시키는 심리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앞서 매슬로우가 구분했던 욕구의 수준과 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또는 환경에 따라 욕구체계와 동기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유형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심리학자들이나 실무컨설턴트들이 여러 요소를 감안하여 심리유형을 분류하기도 합니다만, 주역이나 명리학에서 말하는 사주팔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류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이 세상에는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는 점입니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얘기는, 욕구와 동기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배가 고파 라면을 하나 끓여 먹었다면 생리적 욕구를 충족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성취함으로써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면 자기실현의 욕구가 충족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인 욕구(needs)가 욕망(desire)으로 빠져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욕과 관련하여 영양과 건강을 고려하여 적당한 음식을 먹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 수준을 넘어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웨이터의 서브를 받아가면서 발음하기도 어려운 와인을 주문해서 즐기고 싶어집니다. 등산이면 충분한 것을 반드시 골프를 치고 싶어합니다. 그것도 비싼 골프클럽으로 치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골프코스를 섭렵하고 싶어집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되 돈 많고 유능하고, 게다가 잘 생긴 사람이라면 더 좋습니다. 사회에 공헌하여 자기실현의 욕구를 충족하되, 자기 이름을 딴 건물과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라면 더욱 좋습니다.

     

    이쯤 되면,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감을 잡을 수 있겠지요. 욕구를 충족하려는 본능적 행동이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면 욕망(desire)으로 빠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망이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되지 않으면, 지나친 성취동기와 지나친 권력동기를 자극함으로써 조직이나 사회 전체를 파국으로 이끌게 됩니다.

     

    욕망은 진보의 원동력입니다. 인간이 단순히 욕구를 충족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인류는 지금과 같은 과학문명으로 진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짐승은 단순한 욕구충족으로 끝납니다. 밀림의 왕자인 사자가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데 무슨 우아함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욕구 충족을 넘어서는 욕망의 뜨거움이 있기에 일과 직업에 대한 강력한 몰입과 성취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적절한 통제를 자율적으로 또는 타율적으로 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욕망은 탐욕(greed)으로 나아갑니다. 욕망은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탐욕은 인류의 재앙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80년대까지는 탐욕의 실체가 보에스키와 밀켄처럼 개인적 차원에서 불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직적으로 탐욕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습니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그 탐욕의 네트워크가 꼬리를 드러냈는데, 그것이 엔론사태였습니다. 엔론의 분식회계 사건은 미국 사회에서 탐욕의 네트워크화가 뿌리 깊이, 그리고 폭넓게 진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엔론은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으로 2000년 포천 500대기업 중에서 7위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미국 전체 에너지 시장의 25%를 공급하는 회사였고, 2000년에 주당 90달러였던 주가가 2001 12월에는 26센트로 폭락했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은 엔론의 회장이었던 케네스 레이(Kenneth Lay, 1942~2006)이라는 인물에 있었지만, 엔론 사건은 탐욕과 부패와 반인륜이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일반화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침례교 목사의 아들인 레이는 자유기업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으로 자라났습니다. 레이는 정신적인 안전망(mental safety net)을 배우지도 못한 채, 미주리대학 경제학석사, 휴스턴대학 경제학박사학위를 받고 에너지 관련 분야에서 일하다가 휴스턴에 정착하면서 자기 사업을 준비했습니다.

     

    1985년 휴스턴 천연가스와 인터노스가 합명하여 엔론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탄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레이는 엔론을 전세계 2만 명의 직원이 1,0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군으로 키웠습니다. 보답으로 엔론은 레이에게 어마어마한 부를 안겨주었습니다. 레이는 엔론 초창기 친구에게 나는 단순한 부자가 아니라, 세계최고의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런 말이야 젊은 시절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는 남달리 야망이 컸습니다.

     

    엔론에서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하자, 정치에도 관심을 쏟았습니다. 조지 부시가 대통령 후보시절에는 정치헌금을 제공했고, 부시는 대통령이 되자 선거대책위원회 고문이었던 레이를 상무부 장관이나 재무부 장관으로 기용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부시행정부 내의 요직에 있는 사람 가운데 35명이나 엔론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레이의 오른팔이었던 제프리 스킬링(Jeffrey Skilling, 1953~)은 하버드 MBA출신으로 전략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서 에너지와 화학담당 컨설턴트였는데 맥킨지 역사상 최연소 파트너가 된 인물입니다. 레이의 눈에 띄어 엔론에 합류한 후 둘은 호흡을 기가 막히게 맞추었습니다. 바깥 일은 레이가, 안 살림은 스킬링이 책임졌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1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엔론을 세계적인 에너지그룹으로 키웠을까? 그들은 엔론을 단지 석유나 천연가스를 파는 회사에서 위험관리 솔류션을 파는 회사로 변모시키려 했습니다. 1997년부터 날씨에 민감한 사업주들에게 보험료를 받고 날씨위험으로부터 오는 피해를 보상해주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이 아이디어가 확장하여 날씨파생상품이라는 금융상품에서부터 금리상하한 계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파생상품을 개발해서 판매했습니다. 이런 개념을 신용위험, 금리위험, 환율위험, 강철가격, 석탄가격, 플라스틱, 펄프, 재활용신문용지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적용시켜 나갔습니다. 엔론이 세계 최대 에너지회사가 된 것은 파생상품 덕이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비즈니스모델이었습니다. 레이와 스킬링은 엔론을 에너지 기업을 넘어 투자은행으로 탈바꿈시키려는 비전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거래를 공격적으로 회계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공격적이라는 용어는 회계원칙의 허점을 교묘히 악용하여 회사에 유리하도록 조작하는 것과 다름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분식회계를 한 것입니다. 스킬링은 특히 자신의 모교인 하버드 경영대학원 MBA출신과 맥킨지 출신들을 엔론에 대거 영입했습니다. 그래서 엔론은 인재관리의 모범이 되는 것으로 언론과 학계에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엔론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사업모델을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비롯한 유수의 경영대학원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사례연구로 가르쳤고 논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하지만, 엔론 내부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텍사스대학에서 공인회계사와 관리회계사 자격을 딴 내부 회계감사인은 엔론의 회계처리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자신의 직속상사에게 말했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레이 회장에게 직접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엔론의 회계감사를 맡고 있는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Arthur Andersen)은 위장된 장부를 바로 잡아야 했지만, 그들의 탐욕은 오히려 엔론의 거래를 공격적으로 회계 처리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엔론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내부 회계감사인을 쫓아내고, 대학을 갓 졸업한 아서 앤더슨의 회계사들을 고용했습니다. 갓 입사한 회계사들에게 휴스턴 중심가의 주택과 렉서스를 제공하고, 파트너가 되는 비단 깔린 지름길을 보여주면, 그들은 알아서 공격적으로 업무처리를 했습니다.

     

    잘 나갈 때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2001년부터 에너지 가격이 급락하자 그 동안 부실하게 처리했던 것들이 꼬리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10억 달러가 넘는 공격적인 회계처리가 알려지고 사태의 심각성으로 의회 청문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생길 즈음에 최고경영진은 자신이 소유한 엔론 주식을 거의 다 처분하면서, 뒷구멍으로는 직원들에게 엔론은 건재하니 주가가 떨어질 때 더 많은 자사주를 보유하도록 홍보했습니다.

     

    그러던 중 엔론 경영진의 핵심인물이었던 존 클리포드 백스터(John Clifford Baxter, 1958~2002)가 자살했습니다. 그는 회계부정의 모든 네트워크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두고 타살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사태의 진실을 알고 있는 그는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 자신의 엔론지분을 다 처분하고 회사의 위기를 경고한 뒤 퇴사했습니다. 그리고는 컨설팅 회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엔론 스캔들의 의혹이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청문회를 앞두고 자살했으니, “이탈리안식 해법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의 최명수 기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마피아들은 문제가 되는 사건이 터지면, 당사자를 자살시켜 사건을 마무리하고, 그 대신 자살한 동료의 가족을 책임지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이 짙었던 만큼 사건의 파문을 막기 위해 엔론 측에서 그런 방법을 썼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최명수, 뒤집어보는 경제 회계부정, 굿인포메이션 2003, 256) 


     

    아서 앤더슨 CEO였던 조 베라르디노가 이탈리아인었던 점을 감안할 때,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지만, 그의 죽음은 아직도 미스터리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찰의 사건보고서에는 자살한 권총의 탄알과 머리에 박힌 탄알이 다르다든지 하는 몇 가지 의문점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엔론이 그 동안 표방한 핵심가치는 존경, 정직, 소통, 탁월함이었습니다. 외부에서는 엔론이 사업구조조정의 교과서또는 ‘e-비즈니스의 총아로 알려졌습니다. 엔론은 하버드 MBA나 맥킨지 컨설팅 회사의 인물들을 스카우트해서 엄청난 연봉을 주었지만, 기존의 직원들에게는 매정한 방식으로 대우했습니다. 실제로 승진 아니면 퇴출’(up or out) 시스템을 도입했고 매년 하위 15%를 해고했습니다. 미국 언론은 엔론을 가장 혁신적인 회사’(포천), ‘새로운 미국직장의 모델’(뉴욕타임스)이라고 격찬했습니다.

     

    엔론의 법률자문회사였던 빈슨&엘킨스의 변호사들은 불법적인 거래구조에 적극적으로 자문해 주었습니다. 조작된 수치는 드러난 것만도 10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당시 뉴스데이(Newsday)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엔론이라는 집이 비틀거리기 시작하자 산업체의 탐욕과 잘못된 행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엔론은 최악의 시민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었다. 엔론은 직원을 속이고 고객을 우롱했다. 또한 엔론은 기업이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자기 주머니를 채우기에 바쁜 단체이기 때문에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대중에게 심어줌으로써 미국 산업계 전체를 배신했다.”(브라이언 크루버, 탐욕의 실체, 영진닷컴 2003, 19~20)


     

    미국인들은 엔론 사태를 엔론이 산업계를 배신한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엔론이 미국 산업계 전체를 배신했다고? 천만에요. 탐욕이 네트워크화됨으로써 생겨난, 미국 산업계를 대표한 사건입니다. 엔론과 같은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글로벌크로싱이라는 거대 초고속통신망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회사가 파산하도록 한 것도 분식회계였고, 이것을 도운 회계법인도 역시 아서 앤더슨이었습니다.

     

    미국의 장거리 통신회사였던 월드컴의 회계조작은 그 규모면에서 엔론보다 컸습니다. 여기서도 아서 앤더슨이 감사를 맡았습니다. 월드컴의 분식회계를 눈감아 줬거나 아예 엉터리 감사보고서를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복사기 제조업체인 제록스는 60억 달러의 매출이 조작되었습니다. 사상 최대의 회계부정사건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최대기록이었던 월드컴의 38억 달러를 경신했습니다. 제록스는 회계법인 KPMG에서 회계부정을 방조했습니다. 투자은행 메릴린치, 케이블TV사업자였던 아델피아, 타이코, 컴퓨터 어소시에이츠, 듀크에너지, K마트, 루슨트테크놀로지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업들이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탐욕이 조직화되어 전세계에 만연하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탐욕의 보편화를 법규정이나 시스템을 고치면 막을 수 있을까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무한경쟁의 긴장과 파벌싸움은 정신적 안전망을 잃어버린 세계의 특징입니다. 인간에게 절대적인 안전망(absolute safety net)이 없다는 것은 곧 삶의 터전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그 안전망 아래로 떨어진 인간은 이성의 힘으로 안전망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안전망은 결국 돈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돈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행복한 삶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게끔 했습니다.

     

    돈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신의 위치로 올라섰습니다. 돈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등과 같은 골치 아픈 명령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돈이라는 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줍니다.

     

    돈이라는 신이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돈은 곧 탐욕의 상징이 됩니다. 권력은 그 자체가 선도 악도 아니지만, 권력에는 부패가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 붙듯이, 돈도 그 자체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지만, 돈에는 항상 탐욕이 따라 붙습니다.

     

    사도 바울이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설파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탐욕을 충족시키는 것은 돈을 버는 것이며 그것은 곧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1987년 작품 <월 스트리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재계의 거물인 고든 게코 역을 맡은 마이클 더글러스는 회사의 주주총회에서 거만하지만 호소력 있게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합니다.

     

    여러분, 요컨대, 달리 좋은 말이 없으니 탐욕이라고 합시다. 탐욕은 좋은 것입니다. 탐욕은 옳은 것입니다! 추진력입니다! 탐욕은 발전적인 정신의 본질을 맑게 하여 그곳에 스며든 뒤 본질을 포착합니다. 인생, , 사랑, 지식 등 모든 탐욕은 인류의 비약을 이끌어왔습니다. 게다가 탐욕은, 바로 이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게다가 탐욕은 우리회사뿐만 아니라 형편없이 굴러가는 미국이라는 기업의 운명까지 구해줄 것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허시 골드버그, 『탐욕에 관한 진실』, 중앙M&B 1997, 226~227)


     

    연설이 끝나자 주주들로부터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습니다. 영화도 흥행에 성공합니다. 마이클 더글러스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습니다. 80년대 미국사회에 만연했던 탐욕의 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탐욕적인 미국인들을 비판하려는 의도는 오히려 탐욕을 부추기는 꼴이 됐습니다.

     

    이런 스토리는 현실에서도 그대로 재현됩니다. 월 스트리트의 주식브로커였던 이반 보에스키(Ivan Boesky, 1937~) 1985년 캘리포니아 대학교(버클리) 학생들에게 탐욕은 좋은 것입니다. 모두 약간의 탐욕은 가지고 있어야 하며, 탐욕에 대해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연설했고, 청중들로부터 갈채가 쏟아졌습니다. 다음 해에는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 졸업식에 연사로 초청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의무 가운데 하나로 부를 추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탐욕은 위대한 것입니다. 내 말 틀렸습니까? …… 부를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도덕적이고 정직하게 해야 합니다. …… 여러분이 목표를 높이 설정할 경우 부를 확보해야 이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여러분의 꿈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영향력 있는 인사 그 이상의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허시 골드버그, 『탐욕에 관한 진실』, 중앙M&B 1997, 223~224)


     

    이 연설이 있은 지 6개월 뒤에 검찰 당국으로부터 내부자거래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결국에는 3년 징역과 1억 달러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그는 벌금을 거뜬히 냈습니다. 20여 년 전의 1억 달러는 사상최대의 벌금이었습니다. 보에스키는 도대체 어떤 불법을 저질러서 얼마나 큰 돈을 긁어 모았길래 1억 달러를 낼 수 있었을까? 복역을 마친 후 그는 부인으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탐욕의 80년대는 보에스키뿐이 아니었습니다. 드렉셀 번햄 증권사의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 1946~)은 소위 정크본드의 왕이라 불렸습니다. 신용도가 낮아 회사채를 발행하기 어려운 회사에 접근하여 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도와서 투기성 채권인 정크본드(Junk Bond)를 발행한 후, 이를 다시 사들여서 높은 이익을 남깁니다. 그리고는 채권발행기업을 인수하고자 하는 M&A전문가에게 넘기는 수법을 반복함으로써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밀켄은 이런 식으로 80년대 미국의 정크본드 시장을 만들어 낸 사람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으로 선용될 수 있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좋은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증권브로커에게는 막대한 수익이 돌아갔지만, 해당기업은 엄청난 부채를 떠안아야 했습니다. 밀켄이 걸려든 것은 보에스키처럼 내부거래를 이용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범죄행위였습니다.

     

    밀켄이 번 돈은 보에스키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1987년 드렉셀 번햄 증권사가 밀켄에게 지급한 보수만 5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보수였다고 썼습니다. 다른 수익까지 합치면 10억 달러가 넘는 수입을 한 해에 벌었습니다. 20세기 초에 존 록펠러(John D. Rockefeller, 1839~1937)가 연간 4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보다 많았습니다. 밀켄은 보에스키와는 달리 교도소 복역과 벌금형의 의무를 마치고 나서도 남는 돈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는 지금 그 돈으로 자선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사회는, 아니 전세계는 그들의 탐욕을 방치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알피 콘(Alfie Kohn, 1957~)이라는 교육학자는 오프리 윈프리 쇼에서 돈이 인간의 정신과 행동을 얼마나 왜곡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성과급이 일에 대한 동기부여와 흥미를 얼마나 심각하게 떨어뜨리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이것’(과제)을 하면 저것’(보상)을 받게 됩니다라는 말은 '이것' 자체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게 됩니다. 당신이 그 과제에 대한 노동과 교환할만한 어떤 다른 '저것'을 주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실험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열명의 어린이들(A집단)에게 장난감 회사에서 제공하는 퍼즐을 시험해 보는 대가로 5달러를 주기로 했습니다. 다른 열명의 어린이들(B집단)에게는 보상이 전혀 없이 그냥 퍼즐을 시험해 보도록 했습니다. 퍼즐은 아이들이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이들 모르게 숨겨진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퍼즐 시험이 끝나고, 어린이들을 각각 방에서 잠시 기다리도록 한 후, 장난감 회사 직원은 밖으로 나갔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A집단(5달러를 약속 받은)어린이들 중 아홉 명은 퍼즐을 거들떠 보지 않았습니다. B집단(아무 보상이 없었던) 어린이들 열 명 모두 그 퍼즐을 계속 가지고 놀았습니다.

     

    이렇게 돈은 인간의 원초적이고도 내재적 동기부여(intrinsic motivation)를 왜곡하거나 훼손합니다. 알피 콘은 자신의 책 『Punished by Rewards(Houghton Mifflin, 1993/1999)에서 지난 수십 년간 돈이 인간의 이성적 행동과 합리적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결과를 조사했습니다. 놀랍게도 6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돈을 포함한 보상이 인간의 동기구조를 왜곡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쏟아져 나왔음을 밝혀냈습니다.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고, 모든 경우에 보상은 높은 성과를 내는데 오히려 나쁜 영향을 끼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예외란 보상이 성과를 높여주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단순한 과제들, 즉 아무나 할 수 있고 쉽게 수량화되는 과제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편지봉투를 접는 일과 같이 아무나 할 수 있고 그 결과를 수량으로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일이라면, 보상이 더 빠르게 더 열심히 일하도록 자극함으로써 좋은 성과를 냈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생각을 해야 하거나 판단을 필요로 하는 과제에서는, 한결같이 보상이 일에 대한 동기부여를 왜곡하거나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결과가 이러할진대, 기업의 실무에서는 어째서 이런 이론들이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행동주의 심리학이 워낙 강력하게 미국인들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70년대 초 대학에서 심리학 원론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심리, 즉 마음의 이치를 배울 것으로 기대했으나, 교수님은 나의 기대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미국에서 교육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신 분이었습니다. ‘인간에게 마음이란 없다. 보이지도 않고 측정하기도 곤란하다. 인간에게는 관찰가능한 행동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심리학이란 인간의 행동을 관찰 측정해서 설명하고, 나아가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정하는 학문이다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대학의 가르침이 중고등학교와는 다르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님이 그렇다는 데 누가 감히 그 말에 도전할 수 있겠는가. 그 후에는 줄곧 심리학을 인간의 행동을 바꾸는 학문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은행에서 일하면서도 그런 생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80년대에 독일 유학 중에 심리학에 대한 내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는 경영학 중에서도 인사조직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대학의 심리학과에서 2년간이나 꼬박 심리학 과목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이때 여러 교수님들로부터 심리학이란 마음의 학문이라는 가르침을 접하면서 또 다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융의 분석심리, 펄스의 게슈탈트심리이론을 배우면서 인간의 행동은 마음의 산물임을 알았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후 실무를 하면서 점차 균형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행동은 마음의 표현이고, 마음은 행동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마음과 행동은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심리학과 독일심리학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지를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형이상학적 사유에 능했고, 미국 사람들은 형이하학적 실증을 믿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문화의 차이였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미국의 심리학자 스키너(Burrhus F. Skinner, 1904~1990)에 의해 꽃이 피었습니다. 대학을 다닌 사람 중에서 스키너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상자 속의 쥐가 지렛대를 누르는 횟수에 따라 먹이가 나오는 실험을 했습니다. 지렛대누르기와 먹이의 변화를 통해 쥐의 행동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원리를 응용하여 동물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개발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스키너 상자(Skinner’s Box)라고 불리는 가르치는 기계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에 버금가는 발견이었습니다.

     

    이 상자는 비둘기에게 탁구 치는 법을 가르치고, 심지어 미사일을 유도하는 훈련도 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습니다. 이런 사상은 미국인들을 열광케 했습니다. 그들이 신세계를 개척했던 정신에 정확히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요소환원주의적인 방식으로 프로그램된 행동공학’(behavioral engineering)을 사람에게 활용한다면 인류는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비둘기에게 탁구를 치게 할 수 있는데, 사람에게 보상을 내걸고 행동을 강화할 수 있다면 무엇을 못 가르치겠는가! 이런 자신감은 미국인의 무의식 속에 아주 깊이 박혀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보상과 성과의 인과관계에 대한 뿌리깊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돈이 곧 성공이자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돈이라는 보상시스템이 신대륙의 개척정신과 청교도의 검약 정신을 심대하게 왜곡하고 있음을 미국인들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정체성이 정말 밀수꾼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미국인들은 돈과 탐욕에 깊이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우선 서양이라는 개념이 매우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서양이 공간적으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불분명할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 특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인에게는 돈이 모든 것의 중심이자 궁극적 목적으로 생각하는 정신세계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미국인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미국인들이 그 어떤 나라도 따라 할 수 없는 소비주의(consumerism)에 몰입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청교도적 검약은 허울뿐입니다. 미국인들은 절약을 모릅니다. 독일 유학 중에 알게 된 몇몇 미국인 가정에 초대받아 가서 보면, 추운 겨울에도 난방을 세게 해놓고는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지냅니다. 독일인들이 보았을 때는 기겁을 할 일입니다. 유럽사람들은 대개 겨울에도 난방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실내에서는 두툼한 옷을 입고 지내는 검약의 정신이 몸에 배어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돈이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물신숭배(fetishism)와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몸에 배어 있습니다. 미국인들의 돈에 대한 믿음은 신에 대한 믿음과 같습니다. 그들이 안락함을 위해 돈을 추구하는 것은 영혼의 평안을 위해 신에게 헌신하는 태도와 유사합니다.

     

    월 스트리트에서 헤지펀드를 운영했던 길버트에 관한 얘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그는 40대 초반의 나이에 다른 헤지펀드의 포트폴리오 운영자로 일하다가 1996년에 독립하여 자신의 헤지펀드를 차렸습니다. 1999년까지 약 5억 달러에 이르는 자본을 운영했습니다. 인터넷 붐을 타고 엄청난 수익을 올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렇게 번 돈을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이것이 미국인과 다른 세계인들을 구분 짓는 기준입니다.

     

    그는 사무실을 헤지펀드 메카라 불리는 그리니치로 옮겼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환상적인 주택가에 있는 오래된 석조저택을 대략 1,000만 달러에 구입했습니다. 그의 아내 샤론도 적극적이고 야망이 많은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고집을 부려가면서까지 진짜 스코틀랜드출신 하녀를 고용했고, 개인트레이너도 고용했습니다. 또 항공사와는 자가용비행기 임대계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무엇보다 정성과 돈을 들인 것은 새로 구입한 집이었습니다. 그녀는 현대의 모든 화려한 기술을 동원해서 이 집을 리모델링했습니다. 우선 2층 높이의 영화감상실을 만들었고, 가족이 함께할 거실에는 거대한 벽난로를 설치하고 천장을 대성당처럼 돔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하실에는 포도주 5,000병이 들어갈 포도주 저장실을 만들었습니다. 이 저장실은 12명이 앉을 수 있는 고가구 식탁을 갖춘 식당을 둘러싸도록 설계되어서 화려함이 돋보이도록 했습니다. 이 식당과 조리실 사이에는 음식을 나를 수 있는 소형 엘리베이터가 마련되었습니다. 차를 몰아 집 앞까지 들어올 때 가로수 길을 달리는 듯한 느낌을 연출하기 위해서 전나무 한 그루당 2만 달러를 들였습니다.

     

    이 사례가 특수한 어떤 인물을 가지고 미국인 전체를 과도하게 매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그런 소비가 무슨 문제냐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탐욕적인 삶을 미국인들이 동경하기 때문에 유능한 인재들은 너도나도 월 스트리트로 향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돈을 많이 번 사람이 길버트와 샤론처럼 소비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사회적으로 매장되지는 않는다 해도 왕따될 가능성은 미국보다 높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회문화가 낭비를 억제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도 길버트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구요?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겠습니다. 2000년 그의 펀드는 마이너스 15%를 기록했고, 2001년에는 기술주와 인터넷주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30%이상 깎여나갔습니다. 투자자들은 대거 빠져 나갔고, 중과실 혐의로 소송까지 당할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집에 들어가는 돈, 사무실에서 지출해야 할 돈, 은행에서 빌린 돈, 갚아야 할 돈, 마이너스 수익률…… 이 모든 것들이 길버트를 괴롭혔습니다. 끝내 아무에게도 연락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한 채 일주일간을 커튼이 쳐진 어두운 방 침대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펀드를 청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공들인 집도 처분했습니다. 갚아야 할 융자금만 남겨 놓은 채, 부부는 아예 아는 이가 없는 샌디에고로 떠났습니다. 그의 재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습니다.(좀더 상세한 이야기는 바턴 빅스의 투자전쟁을 참조하세요.)

     

    인간의 욕망이 통제되지 않으면, 탐욕이 분출합니다. 탐욕의 분출은 아무도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게 됩니다. 이때 인간의 이성은 마비됩니다. 스스로 파멸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탐욕을 부추기고 그것을 맘껏 충족하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는 탐욕이 그 시대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주장과 행동이 탐욕을 부추김으로써 사회 전체를 파멸로 이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탐욕이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미국식 경영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