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5.26 노무현_자신을 패배시킴으로써 부활하는 아름다운 영혼 (10)
  2. 2008.12.24 하이데거와 경영 (2)

죄수 두 명과 함께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장면이 성경에는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로마 병사 둘이서 예수가 걸쳤던 옷을 제비뽑기로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리고는 예수가 죽었는지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보았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힌 채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성경을 읽으면서 곤란을 겪은 가장 힘든 구절 중에 하나입니다. 모르고 범한 죄는 용서해야 하는가? 그리고 모르고 지은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왜 예수는 자기를 죽인 저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했을까? 자신을 해코지한 사람을 어떻게 용서하란 말인가? 예수의 뜻을 따르는 기독교인들은 정말 그렇게 살아가는가?

 

합리적인 교육을 받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요즘 누가의 기록(누가복음 2334)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아름다운 영혼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순간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을 갖게 되고, 그 다음부터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사람 지나가는 것을 마치 처음 본 것처럼,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신기해 합니다. 매일 보던 풀 한 포기가 새롭게 보입니다. 이마에 스치는 바람결이 여느 때와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의미 없어집니다.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아름다운 영혼은 부활한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관심사는 인간의 정신이 역사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에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죽음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의 문제는 하이데거에게로 이어졌고, 노동의 문제는 마르크스(Karl Marx)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오늘 나는 죽음의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매 순간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을 미리 앞당겨서 현재화함으로써 매 순간의 삶이 거룩해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지젝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아름다운 영혼의 변증법이 주는 교훈이 있다. “아름다운 영혼은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자로 내몬 가혹한 세상의 조건들, 즉 자신의 선한 의도가 실현되는 것을 방해하는 조건들을 비탄해 하지 않는다. …… 나는 져야 하되 호된 시련에 부딪쳐야 한다는 것,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나의 적을 고발한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슬라보예 지젝, 박정수 옮김,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인간사랑 2004, 240~241)

 

그렇습니다. 노무현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패배시키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스스로 패배하는 길을 선택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활용했던 최후의 수단도 자기 자신을 패배시키는 방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방식으로 궁극적 승리를 쟁취한 수많은 인물들을 봅니다.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예수도 그랬습니다. 임금의 칼에 죽느니 적장의 칼에 죽겠다던 이순신이 그랬고, 무장해제한 채 영국군에 맞섰던 간디도 그랬습니다. 비열하고도 폭압적인 권력 앞에 구차한 변명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삶은 인류의 정신 속에 부활했습니다. 노무현은 우리의 정신 속에서 그렇게 부활할 것입니다.

 

 

p.s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개명한 세상에 이토록 비열하고도 폭압적인 권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런 권력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책을 온전히 읽을 수도, 글을 제대로 쓸 수도 없습니다. 마음의 평정을 잡을 수 없군요. 내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그렇게 서럽지 않았는데, …… 오늘은 글을 더 이상 쓸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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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독일의 관념적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포스트모던적인 생활세계 속의 인간존재를 드러나게 한 철학자입니다. 하이데거 자신은 실존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의 사상은, 자기 자신을 실존주의자라고 표방한 사르트르보다 더 실존주의적이었습니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철학이론을 체계화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체계화된 이론이 얼마나 생활세계와 동떨어져 있는지를 끊임없이 밝혀주려고 애썼습니다. 이론과 개념의 합리성 확보에 매몰되어 있는 학자들이 스스로 깨우치도록 전통적인 학문방법을 비판했습니다.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Consilience)이라는 책에 이오니아의 마법”(Ionian Enchantment)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기원전 6세기 이오니아 지방에 살았던 탈레스는 모든 물질이 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변화하지 않는 본질은 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이오니아학파는 변화하지 않는 만물의 근본을 탐구하려 했습니다. 그 후에 플라톤은 그것을 이데아라고 생각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라고 보았습니다. 피타고라스는 그것을 수(number)라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불변하는 본질 또는 동일성을 찾아내려는 사유의 방식은 후대의 모든 학문에 그대로 전수되었습니다. 이것을 에드워드 윌슨은 이오니아의 마법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서양사상과 학문전통은 이 마법에 걸려있습니다.

 

서양학문은 변화무쌍한 세계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서 진리를 발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현상과 존재를 넘어서는, 변화하지 않는 보편성, 동일성, 객관성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려고 애썼습니다. 그 결과, 모든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보지 못하고, 분석해 들어가서 실증해내야 하는 학문방법, 즉 실증주의적 환원주의(reductionism)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경영학도 이런 이오니아의 마법에 걸려있습니다. 최근에 공전의 히트를 친 경영관련 문헌들은 다 이 마법에 걸려있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높은 성과를 내는 보편적 원리를 발견했다고 공언했습니다. 위대한 성과를 내는 블랙박스를 해독했노라고 장담했습니다. 수십 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추출해낸 결과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성공적인 원리들을 실천한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며, 그 책에서 언급된 기업들도 몰락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벤치마킹 대상이 될만한 기업들조차 시간이 지날수록 평균 수준의 기업으로 추락합니다. 이런 전례는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80년대에 열광했던 톰 피터스의 『초우량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라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소개한 기업들 중에는 아직까지 살아남지 못한 경우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자기계발서 중에서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도 역시 이오니아의 마법에 걸린 책입니다. 여기서 제시하는 7가지 습관을 잘 익히면 성공적인 사람이 된다는 불변의 공식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어떤 보편적 법칙을 추출하여 가르치는 방식이야말로 칸트나 헤겔이 추구했던 이성중심적인 학문방법입니다. 헤겔이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듯이, 서양학문은 사물과 현상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중시했습니다. 분석적 이성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이해는 이오니아의 마법을 점점 더 강화시켜 줄 뿐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하이데거는 진리는 분석적, 추상적, 객관적, 이성적 작업을 통해 도달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일상적이고도 구체적인 생활세계 속에서, 즉 매순간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진리를 체험합니다. 추상화된 교과서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의미부여가 곧 진리인 셈입니다. 진리는 불변하는 본질이 아니라 일상에서 부딪치는 모든 것에 대한 의미부여입니다. 매순간 내 영혼을 순수하게 만드는 나 자신에 대한 정직한 고백이야말로 진리의 사건입니다. 진리를 인식하게 하는 일상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세계를 투명하게 이해하고 세계와 연결하게 됩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서양학문적 전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당연히 이오니아의 마법에 걸려있었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분석 결과를 보아야 안심했습니다. 실증적 결론을 도출해서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이런 방법이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하이데거, 키에르케고르, 사르트르, 들뢰즈, 라캉과 같은 철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서였습니다.

 

분석하고 쪼개서 그것을 추상화함으로써 변하지 않는 본질을 규명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더 근본적이고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생활체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점차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을 갖도록 인도했습니다.

 

경영은 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에 의해 좌우됩니다. 마음은 분석의 대상일 뿐 아니라 연결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도록 해야 조직이 진정한 협동체(공동체)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이오니아의 마법에 걸린, 연결 없는 조직은 무한 경쟁의 긴장과 파벌싸움의 연속일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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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