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포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4.14 테일러리즘을 뚫고 피어 오른 새싹_체스터 바나드(1) (1)
  2. 2008.10.23 진정한 자본가, 워렌 버핏

1930년대 초반, 소위 테일러리즘(Taylorism)에 저항하기 위해 연구했던 메이요(Elton Mayo)의 연구작품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테일러리즘은 오히려 포드자동차에서 꽃피었습니다. 헨리 포드는 공장을 이동식 조립라인으로 만들어서 과학적 관리의 진면목을 보여주었습니다.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이루었습니다. 그리하여 포드는 1914 15, 수익금 중 1,000만 달러를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는 데 쓰겠다는 파격적인 발표를 했습니다. 당시 주급11달러에 불과하던 노동자의 임금을 하루 5달러, 주급 30달러로 올렸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사회 전체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언론에서는 대서특필했습니다.

 대부분 아낌없이 주는 관대한 행위라고 칭찬했는데, 유독 <월 스트리트 저널>산업계에서 시도된 가장 어리석은 행위라고 혹평했습니다. 포드사의 생산성 향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나중에 밝혀졌는데, 이동식 조립라인을 통해 절감된 경비는 노동자들에게 하루에 20달러, 주당 120달러를 지불할 수 있을 금액이었습니다.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 중에서 약 1,120만 달러가 주주들에게 지급된 셈이었습니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자, 포드는 매우 큰 폭의 임금을 다시 삭감해 버렸습니다. 포드는 결코 박애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테일러의 생산성 복음이 휩쓸고 있던 시절, 그러니까 193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경영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체스터 바나드(Chester Irving Barnard, 1886~1961)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별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바나드는 젊은 시절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에 필요한 졸업학점을 다 이수했습니다. 그러나, 기술계량과목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학당국으로부터 학사학위 수여를 거절당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조직에서 경영자의 기능을 밝힌 공로와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7개나 되는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을 정도로 조직과 경영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전문적인 학자로 연구한 적이 없습니다. 사기업에 입사해서 사장까지 지냈고, 공기업과 비영리단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의 통찰력은 1938년에 『경영자의 기능』(The Functions of Executive)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몇 차례 소개했습니다. 참고하세요.

2009/02/18 경영이란 무엇인가(3)_효과성과 효율성
2008/12/29 경영의 효율성과 효과성
2008/10/30
내가
읽은 가장 위대한 경영학 고전

이제 바나드의 통찰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 그의 사상이 나중에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바나드는 조직이 성립하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 공동의 목적 (common purpose)
둘째, 협력 의지(willingness to contribution)
셋째,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이 세 가지 요소는 조직의 필요충분조건으로서 모든 조직에서 볼 수 있습니다.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대로 통용될 수 있는 통찰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영자의 기능이란 이 세 가지 요소를 잘 이해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가지고 경영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란 말인가?

우선 첫째 요소부터 보겠습니다. 경영자는 조직의 공동목적을 구성원들에게 주지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직의 목적과 개인의 동기를 일치시킬 수 없기 때문에, 조직의 공동목적이 성취됨으로써 구성원의 개인적 욕구가 충족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효과성과 효율성의 개념적 분리가 나타납니다
.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효과성은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의미하고, 효율성은 그 과정에서 구성원의 동기가 충족되거나 만족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효과성이 높아도 효율성은 낮을 수 있고, 효과성이 낮아도 효율성은 높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나드는 효율성이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판단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들어, 충성심과 신뢰, 팀 스피릿, 조직목적에 대한 헌신과 같은 추상적 개념들, 즉 구성원의 태도변화와 같은 요소들은 공학적으로 다루기 힘들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바나드가 효율성이란 구성원의 동기충족이나 만족을 나타낸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의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효율성을 공학적 의미, 즉 투입량대비 산출량의 비율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숫자는 인간에게 포르노만큼이나 매혹적입니다. 숫자를 들이대면 꼼짝할 수 없습니다. 어느 경영자가 매출이 전년대비 20% 하락했다는 보고를 듣는다면 어떤 심정이겠는가? 수도권의 매출증가율이 5%로 높아졌다는 보고는 어떤가? 고객만족도가 경쟁사에 비해 2%포인트 낮다는 보고를 받았다면? …

인간이 숫자에 치명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았던 허버트 사이몬(Herbert A. Simon, 1916~2001)은 효율이라는 용어를 숫자로 대치시켜 버렸습니다. 엘톤 메이요의 엉성한 인간관계 개념과 체스터 바나드의 "경영자의 기능"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측정할 수 없는 것보다는 숫자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이몬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1945년에 『관리행동론』(Administrative Behavior)이라는 단행본으로 출판합니다. 이 책이 그의 사상에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생을 통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효율성(efficiency)이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대안 중에서 최대의 이익을 조직에게 가져다 주는 대안을 선택하게 하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리고는 주관적 가치가 제거된, 소위 매정한 효율성’(ruthless efficiency)을 계산하여 관리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제적이고도 합리적인 효율성 개념을 다양한 분야에 적용함으로써 나중에는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았습니다.

그 후의 경영학 또는 경제학에서는 소위 효율성 공학(efficiency engineering)이 각광을 받기 시작합니다. 효율성 공학에는 모든 것이 측정 가능해야 하며, 계산할 수 있는 숫자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만약 측정할 수 없는 대상이 있다면 측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형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면, 구성원의 만족감 같은 것은 조직 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측정할 수 있는 잣대가 마땅치 않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전제와 조건을 만들어서 측정 가능하도록 조작해야 합니다. 7점 스케일로 측정한다면, 가장 만족스러웠을 때를 7점에 놓고 가장 불만족스러웠을 때를 1점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만족감은 몇 점인지를 조사하여 만족수준을 계량화합니다. 5.5보다는 6.3이 더 높은 점수이므로 만족감이 더 높다고 판단합니다. 이런 방식은 오늘날 통계학의 도움으로 매우 정교한 결론을 도출해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결과의 타당성과 신뢰성을 거의 의심하지 않습니다.

많은 기업이 직원 사기나 고객만족을 설문조사기법으로 파악합니다. 여기서 얻은 숫자를 통계 처리하여 경영에 반영합니다. 정부에서도 관련부처들의 경영혁신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각종 만족도를 조사합니다. 지자체에서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을만 되면 온 나라가 만족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실무에 있을 때, 이 분야에 관여해봐서 조금 압니다만, 한 마디로 말하면 신뢰할 수 없다입니다. 왜냐? 고객만족과 같은 질적인 요소들은 워낙 주관적 요소가 많기 때문에 설문지와 모집단 구성, 그리고 샘플의 추출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합니다. 6.3 5.5의 차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숫자가 조작되어 통계 수치로 나왔다는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숫자들이 완전히 엉터리로 지어낸 가짜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숫자가 나오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전제와 가정이 깔려 있기 때문에 그 전제와 가정 중에서 한두 가지만 바뀌어도 숫자는 달라지고, 아무도 그 바뀐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측정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질적인 판단영역을 계량화함으로써 불가피하게 치르는 비용과 폐해는 그것을 통해 얻는 이득에 비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무슨 협회나 단체에서 기업들에게 만족도를 조사해 주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만족도가 높은 상태에 있으면 명예의 전당에 올려주는 장사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실 이것이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영자들이 조작적으로 수집된 통계수치에 의지해서 경영하는 것은 마치 내비게이션을 믿고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 내비게이션을 믿으면 가끔 낭패를 보게 됩니다. 인간의 주체적 삶을 숫자나 기계장치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니까, 지리에 대한 방향감각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나의 경험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경영자는 현장의 상황이나 구성원들의 태도변화를 직접 감지할 수 있는 민감한 감각을 기르고 영혼의 순수함을 유지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나드는 개인적 동기의 주관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설득에 의한 구성원들의 태도변화를 중시했습니다. 그는 이런 주관적 요소들에 대해서는,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대안이 더 효과적이라거나 더 효율적이라는 객관적 질문을 제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바나드가 오늘날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만족도를 조사하는 행태를 보면 뭐라고 할까요? 내 짐작에는 당장 집어치우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는 테일러리즘의 광기를 뚫고 피어 오른 어린 새싹이, 즉 1938년에 발표된 "경영자의 기능"이라는 바나드의 기념비적인 사상이, 포르노보다 더 강렬한 숫자 앞에서 총맞은 것처럼 스러져갔습니다.

오늘날
많은 경영자와 학자들이 숫자 앞에 무릎을 꿇고 숫자의 신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런 숫자 앞에서 눈을 돌려 과감히 무릎을 펴고 일어서야 합니다. 숫자는 항상 진실을 가리기 때문입니다이제 숫자가 아닌 사태의 진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나드 얘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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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워렌 버핏이 자신이 축적한 자본의 대부분을 친구인 빌 게이츠가 세운 재단에 기부하기로 발표함으로써,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금융위기를 맞아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된 그는 순수한 투자가로서의 일생을 살았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세계적인 부자들이 대개 기업을 창업했거나 그 후손들인데 비해 워렌 버핏의 경우는 부의 축적과정이 남달랐다는 점에서 집중조명의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단 한 권의 책도 낸 적이 없지만, 그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나왔습니다. 나는 버핏이 투자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일에 대한 그의 철학을 재조명해 보고 싶었습니다.

 

버핏의 두 가지 성공원리

월 스트리트에서 큰 부를 이룬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월 스트리트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워렌 버핏의 성공은 연구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나는 워렌 버핏의 성공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리에 근거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자신의 일을 즐겼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원리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 그 자체가 곧 일하게 하는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여 그것을 일관되게 실천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철학은 <철학으로 일군 자본주의, 워렌 버핏>에서 다룹니다.

 

노동의 의미

노동을 의미하는 독일어 아르바이트(Arbeit)라는 말에는 고통스럽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한다면, 그러한 노동에는 항상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서구 자본주의가 그 틀을 갖추게 되면서부터, 즉 기업이 주식회사의 형태를 갖추고 부(wealth)의 축적이 자본(capital)의 형태로 전환되어 투자의 대상이 되면서부터, 부의 축적에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이 점차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실물경제가 금융경제를 압도하던 시대에서 거꾸로 금융경제가 실물경제를 지배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앞으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인류의 노동의 역사에서 매주 중요한 전기를 제공했습니다. 아르바이트가 더 이상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즐거움을 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운동 선수가 그 운동을 통해 큰 돈을 벌겠다고 한다면 그 운동이 고통을 수반할 수 있겠지만, 운동 그 자체가 즐거워서 하고 그 결과로 돈을 버는 것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성숙한 자본주의의 진정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노동과 노동 그 자체가 즐거워서 하는 노동은 엄청난 생산성의 차이를 나타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은 돈 버는 것이 생계를 위해서나 풍요로운 삶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돈 버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 됩니다. 워렌 버핏이 바로 그런 사람이지요.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그러한 부로 누릴 수 있는 어떠한 사치와 안락함을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부를 축적하는 세 가지 길

자본주의 시대에서 큰 부를 축적하는 방식은 세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기업가가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비즈니스의 길을 열어 창업한 헨리 포드, 앤드류 카네기, 빌 게이츠가 그런 사람입니다.

둘째, 경영자가 되는 길입니다. 기업가가 만들어 놓은 회사의 경영전문가로 활동하여 성과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음으로써 부를 축적합니다. 잭 웰치, 샌포드 웨일 등이 이 부류에 속합니다.

셋째, 투자가의 길을 걷습니다. 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했던 존 템플턴, 워렌 버핏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기업가로 출발했든, 경영자였든, 투자가였든 상관없이 이들의 공통점은 자본가로서의 철학을 분명히 했다는 점입니다. 축적된 부, 즉 자본을 가지고 있으면 자본가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출발은 다르더라도 일단 자본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 누구나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심각하게 고려합니다. 투하한 자본비용 이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곳에 재배분함으로써 자본가의 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됩니다.

 

진정한 자본가란 어떤 사람인가

이러한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자본가는 자본의 효율적 운용을 통해 보다 더 성숙한 자본주의로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사회의 장기적 발전에 쓸 수 있도록 공헌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거기에다 자신의 부를 아낌없이 쏟아 붓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밑거름이 됩니다. 이러한 밑거름을 토대로 자본의 효율적 운용메커니즘을 통해 서구 자본주의의 선순환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워렌 버핏이 기부한 금액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축적한 부, 즉 자본을 어떻게 배분했을 때 가장 효과가 클 것인가를 꼼꼼히 따져 봤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나서, 인류의 질병과 가난을 퇴치하려는 사명을 가진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것입니다. 투자가로 출발했던 워렌 버핏이 결국은 서구 자본가들이 밟았던 진정한 자본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자본가는 없고 기업가만 있는 셈인가요?

그들이 어떤 길을 갔든,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비법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평범한 상식이고 우리가 다 아는 진리를 평생 실천했던 사람들입니다.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방식을 지속한다면, 누구든지 노후를 풍족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부를 축적하는 방식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삶과 노동에 관한 철학이 필요합니다. 부의 지속적인 축적은 진실을 바라보는 시각과 진정한 노동철학이 정립되어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큰 부를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그것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생애가 끝날 때까지 그 일을 해낼 수 있었고, 그 결과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워렌 버핏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회 있을 때마다 말했듯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했고, 그것이 투자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 즉 돈 버는 방법이 그의 적성에 맞았고, 그것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을 뿐이죠.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버크셔 해서웨이를 경영하는 일을 사랑합니다. 만약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것이 오래 사는 것에 도움이 된다면, 므두셀라(노아 홍수 이전의 족장으로서 969세까지 살아 가장 오래도록 장수한 성경상의 인물)의 기록마저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즐겁게 일했기 때문에 항상 성공했는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도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투자에 여러 차례 실패해 왔습니다. 1960년대에는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섬유회사에 투자하여 경영권까지 인수했으나, 그의 고백대로 이 투자는 최악의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 회사는 후일 그가 투자하거나 회사를 인수하기 위한 지주회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변화되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구리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큰 재앙은 아니었지만 실패로 끝났고, 월 스트리트의 투자은행이었던 살로몬 브라더스의 회장으로 취임한 것도 성공적이진 못했습니다. 21세기가 되면서 달러화 약세에 베팅하는 외환투자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파생상품과 투자은행의 위기에서 그는 또 다시 막대한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큰 손실을 입었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보상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신나는 일을 계속하면서 즐거워할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진정한 자본가의 모습을 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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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