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났습니다. 어느 현직 교사가 교권이 무너진 초등학교 교실의 실상을 폭로했습니다. 그것이 신문에 기사화 되었습니다. 나는 신문기사를 읽고 그런 현상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권이 무너진 초등학교 교실의 실상을 폭로하며 '체벌 허용'을 주장한 현직 교사의 책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 서래초 영어교과 전담교사 김영화(55)씨가 쓴  『지금 6학년 교실에서는...』이다. 야단치는 교사에게 아이들이 욕하고 대들면서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하는 현실이 소설형식으로 묘사돼 있다.

 

보도가 나간 뒤 기사와 관련된 e-메일과 전화, 인터넷 댓글 등이 쏟아졌다. “잘못하면 때려야 한다” “교권은 매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는 등 체벌을 둘러싼 찬반 의견이 팽팽했다.

 

초등교사 경력 34년째라는 정모씨는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와기사 내용이 바로 내 얘기라면서정말 울고 싶고 하루빨리 학교를 떠나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또 이달 초 2년간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중학교 2학년인 딸과 함께 귀국했다는 이은주씨도 메일을 보냈다. “며칠 학교에 다녀 보더니 아이가 수업시간에 떠들고 자는 학생이 너무 많아 놀랐다고 말한다. 야단친 교사 뒤에서 교사가 들을 만한 큰 소리로 욕을 계속하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안에서 생활 태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 제일 좋은 방법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Back to the basic! (기본으로 돌아가라!)

교육은 학생들의 태도와 행동을 바람직하게 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이 어떤 경우에도 폭력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교육의 목적이 옳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체벌을 허용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주장은 오죽 했으면 그러겠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정도로 한국의 교육상황은 참담한 형편입니다. 현실적인 이유에서 체벌을 허용해야 한다면 체벌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이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벌로 다스려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인 얘기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체벌은 비인격적이고 수치심을 유발하며 정신의학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교육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학교와 사회의 경쟁지향적인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경쟁적인 상태가 되면, 이기심이 발동하여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줄어듭니다. 공감능력이 줄어들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행동을 못할 뿐 아니라 전체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지배한다는 사실을 터득하여, 자연스럽게 공격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래서 협동하며 함께 일하는 방식을 배우지 못합니다.

 

학생들의 공격성은 경쟁지향적 교육행정과 사회풍토가 만들어낸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그래서 성적에 따라 일류, 이류, 삼류 인간으로 대접 받는 상황을 만들어 냈습니다. 시험성적으로 경쟁심을 유발하게 하면, 시험성적 이외의 가치에 대해서는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학교성적은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직성(integrity)과 같은 도덕적 가치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며, 그 위에 사고력(thinking power)과 실행력(execution power)을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당연한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런 기본을 잃어버렸습니다. 교사 한두 명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선진교육을 실행한다고 인정되는 국가에서 시험성적순으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서열을 매기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면 타고난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교육의 목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교육현장의 모든 초점은 시험성적이 아니라 독특하게 타고난 각자의 재능입니다. 그래서 교육은 항상 협력과 상생의 정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에게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면서 교직사회에도 경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행태는 교육의 기본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교육행정입니다. 교육의 기본을 무시한 처사입니다.

 

교사들에게 돈으로 차별화함으로써 교육행위의 동기부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교육행정에서 나는 매춘의 냄새를 느낍니다. 나에게 이것을 해주면 나는 너에게 저것을 주겠다는, 마치 매춘부에게나 강요하는 듯한 정책으로 피폐해진 교육현장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요? 어떤 상황에 돈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개입하면 그 상황의 본질이 왜곡됩니다. 그러므로 교육에는 어떤 경우에도 돈이 개입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사들을 돈으로 경쟁시킨다고 생각해 보세요. 좋은 교육자료와 교수방법을 다른 교사들과 공유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돈으로 교사들의 교육행위를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치졸하고도 비효과적인 발상입니다. 교사들이 학생지도를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할 일이 서로 경쟁해야 할 일보다 더 많고 더 중요하고 더 결정적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훌륭한 교사들이 발휘하고 있는 역량을 추출하여 역량모형을 만들고 그것에 따라 교사들을 선발하여 배치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면, 교육계는 변화될 것입니다. 훌륭한 교사들이 많은데 어찌 교육계가 피폐해지겠습니까? 반복하거니와 돈으로 사람을 바꾸려고 하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돈이 개입되면 돈 이외의 가치는 모두 사장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이념이 인류에게 가르쳐준 교훈입니다.

훌륭한 교사를 선발하는 것도 시험성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성과급을 내걸고 우수교사를 뽑으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훌륭한 교사와 그렇지 못한 교사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학생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피드백하는 역량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것을 역량의 전문용어로는 타인육성(Developing Others)이라고 합니다.

글쓰기에 곤란을 겪고 있는 학생에 대한 태도와 피드백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 지 보겠습니다. 그 학생의 숙제는 3 페이지를 채워야 했지만, 겨우 한 문단만을, 그것도 기한을 넘겨 늦게 제출했습니다. 훌륭한 교사와 그렇지 못한 교사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출된 것은 겨우 한 문단이었어요. 하지만 문장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저는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애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어요. "참 짧구나. 하지만 좋은 문장이야." 그 애가 써온 문장은 통일성이 있고, 앞뒤가 잘 맞는 글이었거든요. 문법이나 문형의 문제도 없었구요.


아이들을 무조건 칭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훌륭한 교사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잠재력과 숨겨진 재능을 찾아내어 발산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여기에는 교사와 학생들간의 <연결되어 있는 마음(connectedness)>과 교사의 <깨어 있는 마음(mindfulness)>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결된 마음상태는 아이들에게 매우 편안하고 이완된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기 때문에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깨어있는 마음상태가 중요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관적인 기대를 표시하며, 자신의 불충분한 피드백 노력을 변명하는 교사도 있습니다.

그 애는 구제 불능이었죠. 그렇게 형편없는 애는 처음 봤어요. 문제해결능력이 전혀 없는, 산만하기 짝이 없는 애였어요. 번번이 저를 속이려고만 들었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같은 수법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런 극명한 차이를 시험성적이나 성과급의 차이로 변별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인재의 선발에는 <역량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훌륭한 교사를 선발하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근무하는 조건을 잘 정비해야 합니다. 학생과 교사의 수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게 한다든지, 교사에게 적정한 자율성을 교권으로 부여한다든지, 행정 잡무로부터 해방시켜 준다든지, 교육행정을 보다 효율화한다든지 하는 교육환경의 시스템적 정비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변혁적 조치들이 우리나라 공교육을 살릴 것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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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지난달 Johnson & Johnson Medical Korea(JJMK)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조촐한 특강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존슨앤존슨은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중의 하나입니다. 나는 그런 기업에 초대되어 강의할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최대한 간단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기본으로 돌아가서 경영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였습니다.

 

     연결되어 있음(connectedness)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

 

이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요즘 같은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진정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경제적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임직원들을 대거 잘라냄으로써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가는 방법에서부터 서로 마음을 연결함으로써 상한 영혼을 위로하고 서로서로 깨어있도록 독려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변화는 점진적 변화(incremental change)와 양자적 변화(quantum change)로 구분됩니다. 일상적으로는 점진적 변화를 추구해야 하지만, 위기의 상황에서는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양자적 변화(quantum change), 즉 불타는 갑판 위에서 꾸물거릴 것이 아니라 물 속으로 뛰어드는 변화를 감행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양자적 변화(quantum change)를 일으키는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불필요하게 보이는 임직원을 내보내는 구조조정? 복사지와 이면지도 아껴 쓰고 출장비를 깎는 자린고비? 더 많은 성과를 내도록 임직원을 더욱 쥐어짜기? 새로운 사업에의 진출? 신성장동력의 발굴? 가능성 없는 사업의 정비?

 

만약 이런 조치가 불가피하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조직구성원들간에 마음과 마음의 연결 없이 이런 조치를 취하면 오히려 위기를 극복한 후에 더 큰 문제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조직구성원들이 양자적 변화(quantum change)를 일으킬 수 있는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을 강조합니다.

 

위기극복을 위한 마음경영 - Johnson & Johnson Medical Korea


위 사진에서 보이듯이
, 변화의 피라미드를 구축해야 합니다. 양자적 변화는 마음의 상태를 바꿔주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타인에게 영향을 주려면 그의 마음과 몸을 이완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심신이완은 신뢰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신뢰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연결되어 있음(connectedness)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입니다.

 

강의가 끝난 후 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기업의 임원들이 제기한 질문을 여기에 요약해 보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직원들이 영혼의 능력을 어느 정도 발휘하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인간은 항상 완벽한 선택을 하고, 필요로 하는 자원을 무한히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여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래서 그런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직원들의 사고체계를 바꾸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의한 내용대로 또는 그런 수준으로 노력하면서 경영하는 기업은 어디인가? 또는 벤치마킹의 대상은 있는가?

     고객에게 납품해야 하는 기간이 주어져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리고 고객서비스와 고객만족도를 높여야 하는 상황에서 직원들과의 연결을 시도할 만큼의 여유가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끝으로 존슨앤존슨의 『우리의 신조』를 여기에 소개합니다. 나는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이 회사의 브로슈어에 나온 『our credo』를 읽으면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신조에 따라 명실상부하게 사업이 이루어지는 우리나라 기업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OUR CREDO

 

We believe our first responsibility is to the doctors, nurses and patients, to mothers and fathers and all others who use our products and services. In meeting their needs, everything we do must be of high quality. We must constantly strive to reduce our costs in order to maintain reasonable prices. Customers’ orders must be serviced promptly and accurately. Our suppliers and distributors must have an opportunity to make a fair profit.

 

We are responsible to our employees, the men and women who work with us throughout the world. Everyone must be considered as an individual. We must respect their dignity and recognize their merit. They must have a sense of security in their jobs. Compensation must be fair and adequate, and working conditions clean, orderly and safe. We must be mindful of ways to help our employees fulfill their family responsibilities. Employees must feel free to make suggestions and complaints. There must be equal opportunity for employment, development and advancement for those qualified. We must provide competent management, and their actions must be just and ethical.

 

We are responsible to the communities in which we live and work and to the world community as well. We must be good citizens—support good works and charities and bear our fair share of taxes. We must encourage civic improvements and better health and education. We must maintain in good order the property we are privileged to use, protecting the environment and natural resources.

 

Our final responsibility is to our stockholders. Business must make a sound profit. We must experiment with new ideas. Research must be carried on, innovative programs developed and mistakes paid for. New equipment must be purchased, new facilities provided and new products launched. Reserves must be created to provide for adverse times. When we operate according to these principles, the stockholders should realize a fair re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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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졸고 있거나 굳어있는 마음상태(mindlessness)>에서 <깨어있는 마음상태(mindfulness)>로 모드 전환을 이루려면 우선 깨어있는 마음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깨어있는 마음의 특성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은 항상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을 갖습니다.

 

첫째, 새로운 관점(perspectives) 또는 범주(category)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흔히 사물이나 현상을 자신이 편리한 범주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물이나 현상은 똑 같은 경우란 없습니다. 특성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면 새로운 범주와 관점이 생겨납니다. 까탈스러운 상사에게는 범주를 바꾸면 업무처리의 완벽을 기하려는 좋은 성향이 있다는 점이 보입니다. 칠칠맞은 여자에게서 대범함을 발견할 수 있고, 완고한 남자에게서 일관성이라는 장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관점이나 범주를 벗어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기존의 범주와 관점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둘째, 새로운 자료(data)와 정보(information)를 수용합니다. 관점이 바뀌면 전혀 다른 자료와 정보들이 눈에 띄게 됩니다. 새로운 것들이 이상하다고 또는 같잖다고 배척하지 않습니다.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은 그들을 기꺼이 수용합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자료와 정보에 생산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더 좋은 자료와 정보를 기대합니다. 이것은 다양한 관점과 범주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이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하는 것은 마치 순항하는 항공기가 주변환경과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 받아 균형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금슬 좋은 부부, 팀웍이 좋은 조직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인지심리학적 접근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의 연구는 두 가지 접근방법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 하나가 서양의 인지심리학자들에 의해 발전된 것으로 대표적인 학자가 하버드대학 심리학과의 엘렌 랑어(Ellen Langer, 1947~) 교수입니다. 그녀는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을 열린 마음, 호기심과 지각력을 충분히 갖춘 상태라고 말합니다. 오늘은 인지심리학적 접근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동양의 불교적 전통에 따른 것으로 매사추세츠대학의 존 카밧진(Jon Kabat-Zinn) 교수입니다.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이란 명상과 같은 수련을 통해 얻어지는 “지금 이 순간”(here and now)에 온전히 주의를 집중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차후의 글에서 자세히 살펴 봅니다.

 

경직된 사고 틀, 편협한 시각, 낡은 범주에 의존하는 결정, 성과에 대한 강요 등이 사람들의 에너지를 소진시킵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새로운 맥락과 사고 틀을 만들면, 새로운 에너지가 생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일터, 새로운 과제, 새로운 상황은 대개 사람들을 활기차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깨어있는 마음상태(mindfulness)란 새로운 사고의 틀을 끊임없이 창조하면서 다른 사물이나 타인과의 관계를 정상으로 회복하도록 합니다. 아주 미세한 차이라도 구별하여 그 차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마음을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성격과 습관이 달라서 서로 갈등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로 다른 부분에 의미를 부여하면 보다 새롭고도 창조적인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해산물을 좋아하는 아내와 산나물을 좋아하는 남편, 아침잠이 많은 아내와 저녁잠이 이른 남편에게는 상대방의 습관이나 취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관점과 범주를 새로 만들어내면 훨씬 더 협력할 수 있게 되고 가정의 공동선을 창출하게 됩니다.

 

이런 차이의 인정을 사회적으로 확대하면, 장애인과 정상인에 대해서도 완전히 다른 접근이 가능해집니다. 장애인을 ‘비정상’으로 분류하는 범주는 상호배타적인 ‘정상’이라는 범주가 있기 때문에 성립됩니다. ‘정상’이라는 범주는 지극히 주관적인 가치판단의 문제입니다.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비정상인지에 대한 기준과 경계를 명확하게 설정하기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절름발이, 장님, 치매노인, 뚱뚱보와 같은 말은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이상의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존재방식의 다양한 형태라는 관점에서는 그 말 자체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인간의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을 갖게 되면, 장애인에 대한 편견 없는 차이의 인식이 가능해집니다.

 

여기서 어느 교회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경험을 소개합니다. 주례사가 길었는데, 바로 앞 줄에 앉은 중학생쯤의 아이가 어머니 옆에서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고 계속 몸을 움직이면서 장난을 쳤습니다. 지루했는지 온몸에 주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가끔 어머니가 그러지 말라고 조용히 나무라며 자세를 바로 잡아 주었습니다. 아이의 버릇없는 행동이 계속되자 나는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도대체 애를 중학생이 되도록 어떻게 키웠길래 이 모양인가 하면서 말이죠. 축가가 이어질 때는 물론 예식이 거의 끝날 때까지 계속되어 나는 참을 수 없을 정도여서 주의를 주고 싶었습니다.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한다고 생각하면서 참았습니다. 예식이 끝나고 나오면서 내가 낡은 범주로만 그 사태를 보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근육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뇌성마비 아이였습니다. 나는 그 어머니가 아이를 기르면서 고생했을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결혼식 내내 아들교육을 똑바로 시키지 못한 어머니를 속으로 나무라는 우를 범했습니다.

 

우리는 사물이나 현상을 감정의 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까요? 감정이 일어났다는 말은 벌써 어떤 사태에 대해 어떤 틀에 의한 이성적 판단을 내리고 나서 그 결과로서 감정적 느낌이 나타났다는 의미입니다. 심리학적 연구에 의하면, 인간은 사태에 대한 감정을 먼저 일으키고, 그 다음에 판단을 내리기도 합니다. 아무튼 어떤 사물이나 사태에 대해 편협한 틀을 갖게 되는 것은 그 사태의 맥락(context)을 다양하게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허기(배고픔)에 관한 실험에서 개인적인 이유로 긴 시간을 굶는 사람들(A)과 돈을 받고 굶는 사람들(B)을 비교해보면, B그룹이 A그룹에 비해 허기에 따른 고통을 더 느낍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이유가 아닌 외부적인 이유, 즉 사례비를 위해 배고픔을 참는 것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집니다. 물리적 상황은 똑같지만, 어떤 맥락에 있었느냐에 따라 생리적 지표가 달라집니다.

 

알코올 실험에서도 알코올 자체의 화학적 성분보다는 어떤 맥락에서 마셨느냐, 즉 기분 좋은 상태냐 아니면 억지로 마실 수밖에 없는 상태냐에 따라 생리적 반응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또한 흡연이 완전히 금지된 상황과 흡연 가능하지만 피울 수 없도록 임시 조치한 상황에서 흡연욕구의 강도를 비교해보면, 흡연이 완벽하게 금지된 상황에서는 흡연욕구도 금단증상도 덜 일어났습니다.

 

이런 실험을 통해 우리는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사태를 바라보는 맥락적 구조를 바꿈으로써 자신의 육체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엘렌 랑어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생각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정신을 어떤 상태로 이끌어낼 수 있다면 몸도 똑같이 그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맥락의 선택과 경영성과

 

노인들을 상대로 하는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양로원에서 한 그룹의 노인들에게 실내에서 기를 화초를 스스로 고르게 하고, 그에 관한 여러 가지 소소한 결정을 내리도록 했습니다. 다른 한편의 노인들에게는 간호사들이 일방적으로 그 결정을 내렸습니다. 일년 반 뒤에 조사했더니 자율권을 얻었던 노인들이 그렇지 못한 노인들보다 더 쾌활하고 더 활동적이며, 더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었고 사망률도 낮았습니다.

 

자, 이제 경영학적인 시사점을 찾아보겠습니다. 조직구성원들에게 비즈니스와 일의 맥락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설계한다면, 그들이 자율성과 창의력, 그리고 혁신은 덤으로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깨어있는 마음은 그래서 성과관리의 기본전제입니다. 그렇다면, 조직구성원들이 깨어있는 마음을 갖도록 훈련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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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내용>

강의내용 중에서 자기중심적인 지위(egocentric position)에 있는 사람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이런 사람이 부하일 경우에는 차라리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대화를 이끌어내어 내 사람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정반대의 경우, 특히 상사인 경우에는 어떤 방법을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상태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요?

 

물론 그 상사의 능력은 뛰어나고 앞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대화의 상대를 전혀 이해함이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차원이 아니라, 대화 중에도 코 앞에서 단절하고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행동만을 반복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답변내용>

 

좋은 질문입니다. 까다로운 타인에 대해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를 유지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깨어 있는 마음 상태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반성하고 근육으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음을 금방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래서 충분한 훈련을 거쳐야 합니다. 상사에 대해서는 더욱 민감한 사안이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느낄 것입니다. 상사가 오너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겠지요.

 

강의시간 중에도 강조했듯이 깨어있는 마음은 영혼의 능력이 현실에서 발휘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사람이 아닌 한, 상사든 오너든 부하든 동료든 기본원리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상사에게 깨어있는 마음상태(mindfulness)를 마음껏 표현하세요. 상사가 코앞에서 말을 자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행동만 반복하는 것이 반드시 문제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상사의 스피디한 업무처리와 확고한 자기철학에의 집착 등으로 긍정적인 해석도 가능합니다.

 

우리는 흔히 악한 행동과 선한 행동이 사전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분법적인 사고를 어려서부터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특정 행동이 반드시 나쁜 면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나쁜 행동, 즉 흡연과 같은 백해무익한 행동이라도 흡연자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 혜택(invisible benefit)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연을 하지 못합니다. 그 혜택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대체해 줄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제공할 수 있다면 금연이 가능합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반드시 긍정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어떤 상대라 하더라도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으로 인정하고 수용하고 포용해 주어야 합니다. 영혼의 능력은 인격적 성숙을 가져다 줍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으로 연결됩니다. 여기서 진정한 연결은 비굴한 충성맹세와 같은 겸손을 가장한 낮은 자세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는지의 여부는 타인과의 교감을 통해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진정한 연결의 강도를 더 두껍게 만들어 보세요. 그러면 신뢰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신뢰관계를 유지하게 되면, 상사는 부하에게 마음의 이완상태를 보입니다. 이때는 지혜롭게 충고와 조언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즉, mind program을 시행할 수 있게 되지요. 그러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간을 어느 정도로 단축시킬 것인가는 철저하게 신뢰관계의 깊이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과 직업적 생활에서 분명한 비전/목적/방향을 내면에 분명히 설정하고, 그 과정에서 지켜야 할 핵심가치 또는 신념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깨어있는 마음상태(mindfulness)라는 것도 소용없는 일이 될테니까요.

 

다시 한번 좋은 질문에 감사하고요, 혹시 추가적인 의문이 있으면 메일 주세요.

 

최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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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인간은 태어나서 여러 가지 사회적 규범과 규칙, 그리고 법칙과 습속을 배우면서 성장합니다. 이것은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세상을 단순화 하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현실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갖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경험은 새로운 현상에 대해 주어진 범주(category)와 관점(viewpoint)을 고수하게 하며, 기존의 사물에 대해서도 미세한 차이를 구별하여 인식하지 못하게 합니다. 습관적으로 또는 무심코 어떤 일을 처리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태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상태도 자동적으로 드러냅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거나 키 큰 사람은 싱겁다는 일반적인 생각이 졸고 있는 마음상태’ 또는 굳어있는 마음상태(mindlessness)를 나타냅니다. Mindlessness마음놓음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사라진 상태또는 마음을 놓은 상태를 말합니다. 하버드대 심리학과의 엘렌 랑어 교수가 쓴 『마음챙김』(이양원 옮김, 동인 2008)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조직생활에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나는 이것을 깨어있는 마음상태와 대비하여 ‘굳어있는 마음상태라고 번역하기를 좋아합니다. 졸고 있거나 굳어있는 상태에서 깨어있는 마음상태로 나가려면 누군가 깨워줘야 합니다. 이때 자명종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나는 이런 웨이크업콜(Wake-up Call)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어서 이 홈페이지형 블로그도 만들었고, 지금까지의 나의 강의와 자문 서비스가 대부분 이런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굳어있는 마음상태(mindlessness)는 기존의 관점(viewpoint)이나 범주(category)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에 자신이 당면한 문제나 장애물을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하거나 없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최근 연예인들이 자살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의 관점과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가능성과 해결책이 없다고 단정해 버립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누군가 주위에서 졸고 있거나 굳어있는 마음상태에다 웨이크업콜을 넣어주었다면, 깨어있는 마음상태가 되어 이전보다 더 활기찬 신념으로 세상을 살아 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습니다.

 

여기서 졸고 있거나 굳어있는 마음상태(mindlessness)는 일상생활에서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져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다음과 같은 부작용을 낳습니다.


굳어있는 마음상태(mindlessness)의 특성
 

첫째, 편협한 자아상(自我像)을 형성합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일단 특정한 관점에 빠져 치우친 자아상을 갖게 되면,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다른 기회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특히 주부들이 자기 자신을 편협하게 정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누구의 아내, 누구누구의 엄마, 남편 좋아하는 요리를 하는 사람 정도로 규정해 버립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의 핵심목적과 업의 본질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편협한 관점으로 고정되어 시장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게 됩니다.

 

둘째, 넓은 길로 들어섭니다. 남들이 많이 하는 방식을 따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인지적 부조화를 덜 느끼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야구 좋아하면 나도 좋아해야 되는 것으로 강요 받게 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신사업 영역에 너도나도 뛰어들어 레드오션(red ocean)에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을 맞습니다.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셋째, 통제력을 상실합니다. 자신의 문제가 유전적 원인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알코올 중독자들은 자기 통제를 포기함으로써 중독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혼에 관한 연구에서도 결혼실패를 전배우자의 탓으로만 돌리는 사람은 여러 가지 원인설명과 선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비해 더 오랫동안 고통을 겪습니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경영자들이 자신의 부하직원들이 무능해서 회사가 성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우 초일류기업의 인재를 확보하면 쉽게 해결될 것처럼 한탄하지만, 정작 직면한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스스로 찾아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더 유능한 인재를 채용하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넷째, 무기력을 학습합니다. 반복적인 실패의 경험은 통제력의 상실감을 가져옵니다. 굳어있는 마음(mindlessness)의 특징은 어떤 문제상황에 직면해서 해결책을 써봐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는 쉽게 포기하도록 유도합니다. 조직의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들은 대부분 조직의 질서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구성원의 창의력과 잠재력을 억압합니다. 튀는 사람이 정 맞는다는 사실을 실제로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는 포기합니다. 그러나 일부 야망이 넘치는 사람은 조직을 떠나 창업하기도 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회사의 규정과 룰에 순응하여 해고되지 않을 정도로 일해주고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즐깁니다. 나중에는 학습된 무기력을 즐기기까지 합니다.

 

다섯째, 잠재력이 위축됩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굳어있는 마음(mindlessness)은 잠재력을 땅에 묻어두는 어리석음을 자초합니다. 유능하고 아이디어가 많지만, 꼼꼼한 상사와 함께 일하는 부하는 늘 상사의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에 맞춰 줄 뿐, 더 이상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마음이 굳어 있으면 구성원과 조직의 잠재력을 썩히게 되고, 이런 현상이 장기화되면 조직은 점점 고사됩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길은 <깨어있는 마음상태(mindfulness)>로 모드 전환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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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